"굽히지 마라. 희석하지 마라. 애써 논리적으로 만들지 마라. 영혼을 유행에 맞춰 수정하지 마라. 자신에게 제일 강렬한 집착을 가차 없이 따르라." -프란츠 카프카(가 말을 했다고 추정)
아무리 구글을 해봐도, 카프카가 어느 소설에서 혹은 어느 누구에게 이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실제 그가 이 말을 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카프카의 잠언집에 수록된 문장은 맞는데, 그 잠언집 속 문장들은 과연 누가, 어떻게, 그로부터 얻어내어 소유를 말미암아 출판과 번역과 유통을 하여 이 나라, 내 손아귀까지 전해져 온 것인가. 구글 속 숱한 정보가 그가 말한 것이라 주장만 할 뿐 정확한 출처는 나오지 않는다. 알려면 그가 살았던 독일에 가야 하나보다. 혹시나 아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좀 궁금합니다.
구태여 출처를 알고자 하는 건, "영혼을 유행에 맞춰 수정하지 마라." 이 문장 속 서브 텍스트가 심히 궁금하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왜 하필 영혼이라는 단어를, 하필 유행이라는 단어를, 또 하필 수정하지 마라고 권고했을까. 그의 삶, 어느 맥락에서 이 말을 했을까. 우연히 잡지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는데, 굽히지 마라, 희석하지 마라~뭐 이런 말은 일반적인 잠언형 글귀에 불과하지만 이 문장은 뭐랄까. 읽자마자 몸에 깊게 박힌 느낌이다. 영혼을 유행에 맞춰 수정한다는 것. 그것을 하지 마라는 것이.
영혼은 무엇일까. 생각? 마음? 의식? 혹시 성령님? 당신인가요? 갑작스럽지만 이제 나는 나의 영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신은 하필, 내 브런치에 들어왔고,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공간에서 탐구할 대상은 오직 me, 나다. 말해줄 것도 오직 나이고, 당신이 알아갈 수 있는 것도 나이며, 읽다가 지루해서 그만 읽게끔 하는 것도, 실망하거나, 욕하거나, 혹은 웃기게 만드는 것도 나다. 지금 알려줄 '나'는, 일상, 거주, 일, 가족 등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의 영혼에 대해서다.
방 꾸미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고려하여, 영혼을 8평짜리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이라고 치겠음.
우리 영혼(집)에 온 걸 환영해요. 전 카프카입니다. 기메리의 영혼을 설명하려고 잠시 환생했어요. 먼저 현관부터 봅시다. 스웨덴 핵벙커와 동일한 두께 50cm로 두터운 철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자동문입니다. 혹시 인간이신가요? Ai가 아닌 당신! 프리패스! 축하합니다. 눈치챘겠지만 이 방의 또 다른 이름은 김관심종자 입니다. 찜찜하게 현관에 들어온 당신은 아주 놀라고 만다. 우선은 방이 매우 더럽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언가 음악처럼 들리는 것이 테일즈런너 죠스맵에 나오는 두두두두둥둥둥 BGM이기 때문이다.
아, 이곳에선 뭐든 게임처럼 행동해야 하는 룰이 있어요. 어떠한 변수와 장애물이 있어야 보일러가 가동이 됩니다. 반면 지루하거나 틀에 박힌 일상은 내벽에 균열이 갈 정도로 못 버티죠. 킁킁. 어디선가 맡아지는 곰팡이 냄새. 당신은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묻는다. 어디서 이런 썩은 내가 나죠? 방구석에 13살 초딩이 썩은 편지를 든 채 서있다. 아, 인사하세요. 이 소녀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때부터 6학년 1학기까지 한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다 편지로 고백을 했어요. 그 당시는 카톡도 없었는데 어찌 알고 그 남자아이는 읽씹을 했어요. 이후에 소녀는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여태 출입한 모든 사랑은 이 썩은 편지 냄새에 영향을 받습니다. 카프카는 잠시 머뭇거리며 불그레한 웃음을 띤다.
카프카는 한때 약혼과 파혼을 반복한 자신의 연인, 바우어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혼도 이젠 소녀를 내보낼 사랑을 발견했을까요?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카프카가 묻는다. 뿌에에엑! 당신은 코를 막고 화장실로 뛰쳐간다. 화장실에서 코를 푼 당신은, 세면대가 잘 내려가지 않음을 발견한다. 세면대가 막혔어요! 아아, 그 세면대 잘 막혀요. 카프카가 익숙하다는 듯 타이른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시원하게 배수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아까 뿌엑거려서 약간 삐쳤나 보네요. 시간 지나면 내려가요. 머쓱해하며 당신은 화장실에서 나온다. 참 쪼잔한 방이네요. 두리번 거리던 당신은 이윽고 창가로 눈길을 돌리곤 말한다. 그런데 창밖에 눈이 내려요. 벌써 겨울인가요? 아, 작년부터 창밖은 겨울이었어요. 가족들이 많이 아픕니다. 스물여덟번 겨울을 경험했는데, 여태 경험한 겨울 가운데 가장 가혹한 계절을 보내고 있어요.
당신은 창밖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멍하니 보다가 부르르 어깨를 떤다. 이와 대비되게 발바닥으로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당신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그래도 방엔 불이 켜져 있고 바닥은 따뜻한걸요? 카프카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밖의 차가운 눈보라가 방안까지 휘몰아치진 않아요. 영혼은 수정되지 않아요.
며칠 전 제게 전화를 해주신 NGO학과 교수님. 몇 년 만에 교수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반갑고 죄송했습니다. 제 소식을 들으시고는 가슴이 먹먹하다고 문자도 주셨는데, 말씀은 못 드렸지만 사실 괜찮습니다. 정확하게는 제 영혼만은 괜찮습니다. 이 계절 또한 지나가리란 것을 이제는 압니다. 부디 교수님께서도 따뜻하게 겨울 나시고 제 글에 하트 하나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