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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장 May 14. 2024

직장도 찾고, 나도 찾습니다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할 '나'를 위해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나는 현재 이직 준비중이다. 한마디로 백수다. 직장을 다닐 때는 그렇게 회사에 있는 것이 곤욕이더니, 지금은 직장에 못 들어가 안달이다. 직장을 다시 구하는 이 시점에 시간이 많이 생겼으니 취미가 있다면 마음껏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하고 싶었던 게 많았다면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면서 시간을 보냈을꺼다. 하지만 딱히 취미랄 게 없는 난 그저 막연한 불안함 속에서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물론 이 때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못가봤던 유럽여행도 가고, 늦잠도 실컷 자고, 책도 읽는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긴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하는 단 하나. 그것은 나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내 안의 다른 내가 너무도 많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내면의 나도 있기 때문이다. 꼭 거창한 자아 인식의 목표를 들지 않더라도 이직 과정에서의 불안함을 포함한 내면의 감정과 자아를 파악해서 이 시기를 잘 대처하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고, 집단상담도 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어느 정도는 파악해갔다. 나도 나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억지로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죽을 때까지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할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여러 상담과정과 나름의 생각들을 통해 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관계의 소통과 인정을 통해서 존재의 긍정성을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나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사람인 줄 알았었다. 그게 아니었다. 기질적으로 관계를 잘 맺고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탁월함이 내재되어 있음을 서로 다른 검사와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확인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딱히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항상 소속된 집단마다 친한 사람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게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말이다. 관계지향적이고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대체적인 관계가 수월했다. 물론 남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덜 인지하거나 충족하지 못하는 단점도 존재한다. 어쨌든 난 이직하는 이 시간에 나를 알아가며 관계 추구 성향과 친밀성의 기질을 발견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 욕구가 크고 나에게 무척이나 의미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어차피 퇴사하고 이직하는 현재의 과정에서 생기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 필요가 있다. 이직하는 지금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나를 알아가고, 나와 친해지고, 나를 위로하는 시간은 단언컨대 만들기 어려웠다. 이전 직장을 다니는 동안 엄청난 프로페셔널은 아니더라도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야근은 물론이고 쓸떼없는 애정까지 쏟으며 업무와 회사를 나름 챙겼다. 정작 난 곯아가고 있었다. 퇴근 후 방전은 기본이요, 스트레스로 인한 염증반응이 심해져서 질병까지 얻었다. 그렇게 사람 좋아하는 내가 주말엔 아무도 만나기 싫어하고 주위에 짜증과 분노를 자주 표출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직장이 주는 안락함과 그 속에서의 관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스트레스와 여러 감정에 뒤덮힌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의 1시간동안 아무 생각과 감정이 없는 그야말로 '띵~'한 상태가 엄습했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챙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대체적으로 직장은 버틸 수 있으면 버티는 게 좋다. 특히 내가 다녔던 곳처럼 보통 정년이 보장되며 남들이 인정까지 해주는 직장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만약에 이직하지 않고 계속 이전 직장을 다녔지만 난 돈은 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잃어버린 채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100세 시대에 나 자신을 명징하게 알아가고 나를 챙기는 이 시간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단순히 이직을 위한 공백기라고 여기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몸 건강을 챙기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정신건강을 챙겨야 한다. 이제는 너무 잘 먹어서 살을 빼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는 세상이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살기는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세태다. 내 자신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을 둘러봐도 겉만 멀쩡하지 속은 멍들어 있거나 썩어있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이라면 꼭 퇴사를 해서 시간을 일부러 확보해야만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을 영위하면서 중간중간 나를 어떻게든 챙기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일에 매몰되어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그 때가 위험하다.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모두를 잃어버린다. 나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기 전 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할 것이다.


언젠가 이직은 하겠지. 그 때까지 나름대로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이왕이면 관계에서 삶의 긍정성과 의미를 발견하는 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어내면서. 현재의 이 시기가 나를 분명히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중요하고 가치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주체는 오로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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