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파친코》
《파친코》는 어두운 시대 속 처절한 삶을 담아낸 다소 씁쓸한 책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슬픔과 여러 부조리함을 글로 담아냈다. 사람들은 조선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무려 몇 세대 전의 일이라도 생일마다 손에 인주를 묻혀야 하는 등 억압받고 눈치를 보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속에서 어떻게 각자 살아갔는지,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무던하게, 삶을 이어나갔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한 이후에 집필된 책이라 그 생동감이 단순히 책의 글자로 그치지 않는다.
길이는 꽤 긴 편에 속하지만 막힘없이 읽히는 책이었다. 상황에 대한 묘사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적당하게 이루어져서 거부감 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방대한 세계를 기획하고 풀어냈다는 것에 감탄했다. 심지어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그 인물들의 입체성을 구축하여 이를 통해 몇 백 페이지짜리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경이로움에 가깝다고 느꼈다. 다만 전개 속도가 빠를 때는 너무 빨라 인물의 감정을 세세하게 느낄 틈이 없었고, 느릴 때는 너무 느려서 단조롭게 느껴졌다. 여유를 갖고 곱씹으면서 읽는다면 더 세심하게 책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제강점기 때의 아픔을 담아낸 책을 읽었으니 당연하게 그 시절에 대한 글을 늘어놓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질문에 대해 생각을 펼쳐보고 싶다.
이 책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김창호가 일본을 떠나 조선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경희에게 마음이 있던 김창호는 같이 떠나자고 설득한다. 그녀의 남편인 백이삭은 중상을 입은 후 침상에 누워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김창호는 자신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한다. 하지만 경희는 앓아누은 남편을 두고 새로운 남자와 만날 수 없다고, 본인의 감정과 별개로 이러한 행동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을 말하며 완강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그가 집을 떠난 뒤에, 경희는 앞으로 그와 함께하지 못하며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슬픔에 눈물을 보이고 만다.
돌이켜보면 이 책에는 신념이 인물의 사고에 개입하는 부분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한수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지 않은 선자는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과는 이성의 관계로 같이 살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선자에게서 독립한 노아는 조선인으로 취급당하기 싫다는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에 따라 선자가 찾아간 직후 자살을 행했다. 책 전체를 통틀어 관계 상에서의 신념,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의한 신념이 여럿 등장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신념을 갖는 것은 자유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행동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념을 제외하고 보면, 독자의 관점에서는 이들의 행동에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느껴졌다. 선자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한수와 같이 일본으로 넘어갔거나 나중에라도 결혼했더라면 더욱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테다. 하숙집으로 그나마 하루를 벌고 버티던 어려운 삶에 아이까지 밴 상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결과적으로는 선자의 삶 또한 부족한 부분이 없었지만, 처음의 상황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선자는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본인의 뜻대로 행동했다.
신념은 우리에게 정신적 포만감을 준다. 신념은 어찌 보면 나 자신과의 무언의 약속이다.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면 좋아하듯이, 스스로의 약속 또한 그것을 지켰을 때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는 자신만의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지기에 더욱 견고하고 확고한 자아를 형성하게 만든다. 그렇게 스스로의 인정과 자존감 상승의 선순환이 성립되고, 그렇게 신념에 대한 믿음은 이어져간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선순환은 악순환으로 변하게 된다. 신념에 대한 믿음이 강력해진 나머지, 그것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외적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념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자신에게 실질적인 - 물리적 혹은 경제적 - 피해가 올 것이 명확하고 자신이 그것을 감내할 만큼의 준비와 의지가 확실한지 모름에도 말이다. 아무리 정신적인 좋음에 만족한다고 하지만, 무작정 신념만을 앞세워 행동하다가 나중에 현실을 자각하고 후회하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여러 생각을 해본 끝에 도달한 나름대로의 결론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겠다.
신념을 따르는 것은 항상 유의해야 한다. 물론 가치판단에 따라 신념을 따르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충분하고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친 이후에 결정되는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는 비단 정치적 사상과 같은 거창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념은 영어로 belief, 즉 내가 믿은 모든 것은 신념이라 볼 수 있다. "살찌는 습관이나 행동은 안 된다", "나보다는 남을 우선으로 한다" 등의 문장 또한 신념에 해당된다. 무시하기 쉬운 부분들까지 인지하고 경계해야 한다.
결론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 사례를 보여주며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고 말하는데, 이는 지구의 낮을 보여주며 지구는 항상 환하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본인에게 있어서 신념이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신념을 시행할 때에는 그것에 너무 깊게 빠져있지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가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내 신념을 깨부수려는 행동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신념의 내용에 반감을 가질 생각은 없다. 앞서 말했듯 신념은 자유이고 개인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다만 신념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뿐이다. 신념이란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