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석 Dec 27. 2021

당신 뒤에 있을게요, 항상

정승환, 《눈사람》


《키다리아저씨》라는 책을 아시나요? 고아인 한 아이가 '키다리아저씨'라고 부르는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대학교에 진학하고 문장력을 갈고닦아 소설가로 성장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어릴 때의 자신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두 인물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키다리아저씨'는 누군가를 대가 없이 헌신적으로 돕는 따뜻함과 꾸준함을 가지고 있고, 아이는 이에 배신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꿈꿔왔던 삶을 살아냄과 동시에 '키다리아저씨'의 바람도 이뤄냅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완벽한 조화가 만들어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줄거리입니다.


'키다리아저씨'는 단순히 소설에만 그치는 인물이 아닙니다. 뉴스를 보면 수십 년간 모은 거액의 돈을 기부하는 사람도 있고, 매달 돈을 보내주는 꾸준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빈곤이나 혹독한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펼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이로 하여금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노래와 이야기


제 주변에도 '키다리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제게는 위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그 은혜를 제가 입은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고 누군가는 또 알아줬으면 하는 괜한 마음에 소개하려 합니다.


'아저씨'(앞으로 많이 등장하니 키다리아저씨를 줄여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겠습니다)는 소소한 일이라도 베풀기를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일상 속에서든 자신이 맡은 직책 내에서든, 본인의 능력이라는 범위 속에서 돈과 속세에 휘둘리지 않고 남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을 돕던  중,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춥고 힘든 훈련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편한 환경으로 옮겨졌습니다. 따뜻하고 몸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살아가던 중,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누군가 자신에게 준 것임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아저씨'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에게 베풀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한편, 본인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나갈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아저씨'답했습니다.


" 야간대학을 다녀라. 돈과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 그리하여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떳떳한 삶을 살아라. 그것을 보고 내가 박수를 칠 때, 그때가 당신이 내 은혜를 갚게 되는 순간이다. "


그렇게 그 사람은 학업에 몰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의 아픔은 잊고 현재의 걱정들은 잠시 뒤로 한채 앞에 있는 것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성취의 계단을 하나씩 아 올라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남들이 부러워할 자격증을 따고 전문직이라는 직장을 얻어냈습니다. 안정적인 생활과 경제력에 화목한 가정은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삶을 이뤄낸 것입니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생각이 날 때마다 '아저씨'를 찾아가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아저씨'도 모든 인간의 종착역이라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무거움이 짙게 깔려있던 그의 병상에 한 젊은이가 찾아옵니다. 바로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본인도 몸이 편찮아 직접 갈 수 없었지만 꼭 감사함을 마지막으로 표현하고 싶었기에, 아들을 대신하여 보낸 것입니다.


'아저씨'는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몸은 움직이지 못했기에 고개만 돌려 푸른 하늘과 넓게 펼쳐진 평야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젊은이는 '아저씨'의 명상을 깨고 싶지 않아, 그의 손을 부드럽게 둘러쌌습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젊은이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치켜떴습니다. 비록 잘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직감으로 그이의 아들임을 알아챘을 겁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젊은이의 손을 아주 미세하지만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습니다.


젊은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저씨'께서 계셨기에 저의 아버지가 계시고 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은혜를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희 부자의 인생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고는 힘겹게, 어눌하지만 그 기세만큼은 또랑한 말투로 입을 여셨습니다.


"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내게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돕고 살아야 해. 언젠가 복으로 돌아올 거야. 당장 아프고 쓸쓸한 나를 당신이 찾아와 준 것도 행운이니까. "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다시 한번 이어가셨다.


" 그러니, 도움을 베푸면서 살아.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 사람들도 똑같은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하렴. 그것이 나를 위해, 진정으로 은혜를 갚는 방법이란다. "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잠시 '아저씨'를 바라본다. 자신들을 이렇게까지 도와준 '아저씨'에게 다시 한번 경외심이 느껴진다. 자신도 아닌 타인의 삶을 위해, 어떻게 그런 도움을 줄 생각을 했을까. 자식으로도 충분히 벅찼을 텐데... 문득 '아저씨' 얼굴의 주름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주름 중에서 목에 잡혀있는 주름, 이마에 선명하게 나있는 주름.  이 중 하나에는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를 향한 끝없는 믿음이 들어있겠지.


잠긴 목소리로 젊은이가 작게 내뱉는다.

" 알겠습니다... 꼭 그러겠습니다... "


말을 내뱉으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아버지와 자신은 어땠을까. 멋진 동산이 보이는 아파트가 아닌 주소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자기는 지구라는 세상 자체에 대해 모른 채 어둠 속을 유영하고 있었을 수 있다. 다시 한번 그 고마움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크게만 느껴진다.


" 자주 찾아올게요... 열심히... 베풀며 살게요 "

젊은이는 노인의 주름지고 못생겼지만 세월이 깃들어있고 멋스러운 손을 주무르며 창 밖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잊지 않을게요..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가 살아온 삶을...' 머릿속에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지만, 한 마디만 계속 되뇐다.


당신은 제게, 아버지에게, 모두에게 영웅이자 위인입니다.




노래에 대하여,


정승환이 부른 《눈사람》을 듣고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할 수 있다. 한 번쯤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노래에서 눈사람이 마치 '키다리아저씨'와 같기 때문이다.


가사 속에서 눈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속절없기 기다린다. 그이가 무엇을 하더라도 여기 있을 것을 약속하고, 언제나 든든한 존재가 되어줄 것이라 다짐한다. 그리고 나를 잊더라도 행복하라고 말한다. 조건 없이, 대가 없이. 그렇게 눈사람은 애절하면서도 소위 '찌질하게까지' 그이가 행복해지기를 응원한다.


그러다 눈사람은 '키다리아저씨'에게는 보이지 않던, 어쩌면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잔잔하게 응원을 하다가 갑자기 외친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끝나간다고. 나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억해달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려 했지만, 쓸쓸함을 이기지 못해 그 마지막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며 간곡하고 애절하게 부탁한다.


시와도 같은 이 가사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겉으로는 항상 응원한다며,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 너 갈 길 가면서 행복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 속은 어찌할 수 없는 본능적인 외로움으로 쓸쓸한 상태일 것이다. 이것을 참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응원한다는 것은 더욱 대단한 일이고, '키다리아저씨'는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좋은 인물이다.


이 글을 마치며,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누굴까?

한 번씩 주위를 둘러보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응원, 배려, 은혜를 생각해보자. 부모님부터 친구, 애인까지 다양할 것이다. 당연한 것에 위와 같은 슬픔과 쓸쓸함이 있음을 상기하며, 그 응원에 관심을 가지고 고맙다는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이들을 역으로 응원해주자. 눈사람이 마지막에 애타게 외친 말을 떠올리며,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운을 던져주자.


그리고 한 발짝 나아가,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다른 이에게도 베푸는 사람이 되어보. 물론 쓸쓸하고 힘든 일이겠지만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내가 바라던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거라고 상상하자. 내 난로에 불을 지펴 주변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온화한 사람.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보는 것, 해볼만하지 않은가?







가사

멀리 배웅하던 길

여전히 나는 그곳에 서서

그대가 사랑한

이 계절의 오고 감을 봅니다


아무 노력 말아요

버거울 땐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어요


꽃잎이 번지면

당신께도 새로운 봄이 오겠죠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그다음 말은 이젠

내가 해줄 수 없어서

마음속에만 둘게요


꽃잎이 번지면

그럼에도 새로운 봄이 오겠죠

한참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끝눈이 와요

혹시 그대 보고 있나요

슬퍼지도록 시리던

우리의 그 계절이 가요


마지막으로 날

떠올려 준다면 안 되나요

다시 한번 더 같은 마음이고 싶어


우릴 보내기 전에

몹시 사랑한 날들

영원히 나는 이 자리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먼지 쌓여버린 그 시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