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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의 한 줄, 한 사회의 단면

공익광고의 한 장면, 미국 사회의 시선, 한국인에게 전해진 말버릇

by 딥닷컴

공익광고, 버스 안에서 시선이 멈춘 자리

어릴 적 처음 광고기획자를 장래희망으로 택하게 된 계기는 공익광고였다. 한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단 하나의 함축적인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 모두가 한눈에 보고 '아 그렇지' 하며 끄덕일 수 있도록, 길거리에서 문제의식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것. 나는 이러한 공익광고의 설득의 힘에 매료되어, 상업광고보다도 본질적인 광고 그 메커니즘 자체에 끌리게 되었다. 공익광고는 대체로 가장 많은 유동인구와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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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샌디에고 다운타운에서 출퇴근하며 멍하니 버스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저 이미지 하나에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것이 결국 사회의 한 단면이구나. 커뮤니케이션 문화, 위기의 사회문제, 그리고 결국 사람들 한 명 한 명 내재된 문화적 차이까지. 이번 글에서는 공익광고를 통해 각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역추적해보려고 한다.


공익광고가 비추는 두 사회
- ‘나’를 지키자 vs ‘우리’를 위하여


미국,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익광고는 단연 'Stop the Human Trafficking'이었다. 처음에 무슨 말인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그 단어의 뜻은 생각보다도 더 무서웠다. — 인신매매. 한국이었다면 이 자리에 자살 예방, 불법촬영, 금연 캠페인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자리의 공익광고 하나는, 그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다루는 사회문제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고,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배경이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는 국경 인접성과 이민자 밀집 지역이라는 특성상 인신매매 발생률이 가장 높은 주 중 하나다. 총기나 마약 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이곳에서 인신매매는 인권 문제로서 더욱 직접적이고 시급한 인식 아래 다뤄지고 있다. 특히 자살, 불법촬영, 인신매매는 다른 사회문제보다도 “모두가 노출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즉, 이 문제들은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마주하는 대중교통에 부착된다. 그리고 이 공익광고들은 단순한 인식개선을 넘어, 실질적으로 도움 요청과 제보를 유도하는 기능적 목적을 띤다.

Screenshot 2025-04-16 at 21.55.06.png 샌디에고는 멕시코 국경 지역이라 항상 스페인어와 같이 기재되어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익광고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지에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인신매매 공익광고는 말한다:

“Know your rights.”
“Do you want to get out of the life?”

피해자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묻고, ‘나’를 구할 수 있는 주체 역시 ‘나’ 임을 상기시킨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인신매매의 범위에 노동 착취까지 포함되는데, 공익광고의 메시지는 업무 환경과 일상 속에서의 자기 권리를 되짚어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한국의 자살 예방 공익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혼자가 아닙니다.” “귀를 기울여주세요."

자살 생각을 하는 누군가에게는 '우리'라는 존재를, 그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우리의 관심과 배려'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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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붙어 있는 공익광고 단 한 장의 이미지는, 나에게 많은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메시지에 잠겨 있었다.



대중교통 에티켓이 비추는 두 사회
- ‘나’의 안전 vs ‘우리’의 책임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공익광고 옆에는 항상 대중교통 이용에 관한 에티켓 광고가 자리 잡고 있다. 기본적인 공공장소 규칙은 나라를 막론하고 비슷하겠지만, 버스에 부착된 한 장의 에티켓 이미지는 그 사회가 어떤 행동을 더 '먼저' 주의 깊게 요구하는 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부착된 에티켓 공익광고에서 확실히 한국과 미국에서의 차이를 포착했다.


샌디에고의 버스에는 다음의 네 가지 에티켓이 부착되어 있다:

Don't Chase a Moving Vehicle

Stay Awake

Remain Seated

Always Hold on

Screenshot 2025-04-16 at 21.52.26.png 샌디에고 버스에서 강조되는 네 가지 에티켓

그리고 샌디에고 트롤리 (지상열차) 에티켓 공익영상에서는 다음의 내용이 강조된다:

Be Mindful of Volume - 스피커 사용 자제

Don't Be a Blockhead - 사회적 약자석 배려를 위해 주위 신경 쓰기

Have your fare ready - 탑승 전 요금 준비

Clean Transit, Clean Stormwater - 쓰레기 주의, 더 나아가 환경보호에도 동참! (빗물 배수 시스템 오염을 막기 때문)

Don’t Ride Jam Packed, Be mindful of personal space 다른 사람들의 개인공간을 위해 과밀 탑승 피하기

Don’t Be a Seat Hog Keep your belongings and yourself to one seat. - 한자리만 차지하기

Avoid Eating or Drinking On Vehicles - 음식물 섭취 자제하기

한국인인 내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에티켓도 있었고, 같은 에티켓이어도 그 이유와 어조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한국에서는 사회적 금기처럼 여겨지는 행동들이 여기선 그저 ‘가급적 자제해 주세요’ 정도의 권고사항으로 제시된다는 점이었다. (스피커 사용 자제? 음식물 섭취도 그냥 ‘자제’? 금지가 아니라고?)

Screenshot 2025-04-16 at 21.58.13.png 스피커 사용금지는 고사하고, 지하철에서 통화도 하면 안되는 거 아니었나?


이런 차이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에티켓 공익광고다. 2024년 에티켓 공익광고 영상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

전화 소음주의 - "반가운 전화가 오더라도 조금만 소리를 낮춰주세요."

백팩 앞으로 메기 - "가방의 위치를 바꾸니, 작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지하철에서 보행 중 음료 & 스마트폰 주의하기 - "조심하고, 배려하면 모두가 미소 짓는 하루가 될 수 있습니다"


Screenshot 2025-04-16 at 22.02.11.png 출처 | 서울교통공사, 지하철에티켓 (2024)

이외에도, 한국에서 대중교통을 매일같이 이용하며 최근에 유독 자주 마주했던 에티켓 캠페인들이 있다.

교통약자석 /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버스에서는 테이크아웃 음료반입이 금지

모두가 내리고 타기

초기 임산부가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안전하게 앉아 갈 수 있게 배려하기 위해.

음료를 실수로 쏟거나, 냄새로 인해 타인에게 끼칠 불쾌함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꺼번에 몰려 내리는 승객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Screenshot 2025-04-16 at 22.04.56.png 출처 | 서울교통공사, 임산부 배려석 캠페인 (2023)

두 문화 모두 ‘공공장소에서는 매너를 지키자’는 대전제를 공유하지만, 그 행동을 유도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주체가 사뭇 다르다.

한국의 에티켓은 ‘우리 다 같이 배려하며’ 만들어가는 시민의식 태도공동체적 책임감에 방점이 찍혀있다.

반면, 미국의 에티켓은 ‘개개인이 올바르게 행동하며’ 각자의 안전과 공간을 존중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버스와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에티켓 공익광고는 이처럼 두 사회의 문화적 차이를 조용히 드러내고 있다.



공익광고는 우리 사회의 말버릇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Edward T. Hall)은 그의 저서 <침묵의 언어(The Silent Language)>에서 이러한 표현 방식의 차이를 고맥락(high-context) vs. 저맥락(low-context) 문화로 설명했다. 고맥락 문화는 함축적이고 간접적인 메시지로 의사소통하고, 저맥락 문화는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의사소통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맥락 문화권에, 미국은 저맥락 문화권에 속한다. 실제로 앞선 공익광고들에서 전달하는 미국과 한국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를 살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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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트롤리 에티켓 공익광고 중 한 문구는 이렇게 말한다.

"Don’t Be a Blockhead - ICYMI, those little blue signs above seats closest to the doors on buses and Trolleys are marked at ‘Priority Seating’ for seniors and riders with disabilities."

출처 | SDMTS 공식 홈페이지 - <Respect the Ride>

(*ICYMI = In Case You Missed It)

우리말로 치면, “혹시 못 봤을까 봐 알려줄게. 빈자리에 그냥 앉는 게 편하다는 거 알지만, 되도록이면 다른 승객이 필요로 한다고 요청받기 전에 먼저 양보해 주면 좋겠어.” 의 어감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처럼 미국의 에티켓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하지만 위트 있게 행동강령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개인공간 보장을 위해 다른 사람과 떨어져 앉자는 행동강령도 인상적이다.


반면, 한국의 약자석 배려 캠페인은 조금 다르다. 공익광고 영상에서는 임산부의 남편이나 엄마의 시선으로 일상을 담아내며, 다음과 같은 카피를 내세운다.

"비워두신 배려석에서 여러분의 따뜻함을 느낍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더 안전한 시간"

출처 | 서울교통공사 공식 유튜브 - <임산부 배려석 캠페인>

이를테면, 한국의 에티켓 메시지는 간접적으로 지시하되, 공감을 유도하여 감정적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에티켓에서 '우리 모두 웃기 위해'등의 공동체의 감정을 위한 개인의 배려를 이끌어낸다.

이처럼, 공익광고는 단순히 휘발되는 안내문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를 단번에 보여주는 말버릇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축적된 말버릇으로, 그 사람들의 문화를 읽어낸다.





그래서, 광고는 사회 흐름의 이정표


공익을 위한 광고, 공익광고는 봉사활동과 '비영리성'이라는 성격을 공유한다. 즉, 아무런 대가 없이, 그것도 특정 타깃 없이 범국민적으로 모두를 설득시켜야 하는 소통 매체다. 그렇기에 늘 이런 질문이 끝에 남는다. “왜 이런 광고를 하지?” “정말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나?” "짧고 순간적인 문장이 과연 사회에 유의미할까?" 그럼에도, 필요하다. 단지 한 사람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더라도, 공익광고는 그 사회의 단면을 단번에 보여주는 작지만 강한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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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의 한 줄, 지하철에서의 한 이미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듯, 나 역시 언젠가 그 한 명 누군가의 반복되는 일상 속 한 장면에 생각을 남길 수만 있다면. 그 고민의 연장선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평생의 질문처럼 안고 마케터로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어릴 적 처음 적어냈던 '공익광고 기획자'라는 장래희망과 다르게, 지금의 나는 소비를 촉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본질은 여전히 같다. 언젠가 나도, 한 사회를 담아내는 짧은 한 줄. 이정표 한 점을 남기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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