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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 Dec 27. 2023

어슴푸레한 빛 속 찬란했던 삶들에게





최근 일주일 동안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동유럽 나라 몇 군데를 여행했다. 지난 12월 2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체코 프라하로 이동했다. 숙소에 짐을 푼 후 프라하 시내로 나가려던 참에, 폴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두 시간 전 프라하 시내에서 총기 사고가 났다는 걱정 어린 문자였다. 평화로운 도시라 여겼던 프라하에서, 그리고 내가 있는 장소에서 총기 사고가 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관련 뉴스들을 봤다. 범인은 사고를 일으킨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심스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가봤다. 사람들은 총기 사고와는 별개로 각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활기 속에 사람들은 여기저기 북적거렸다. 아기자기한 색채를 입고 우아한 지붕을 쓴 건물들이 거리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세찬 물살과 잔잔한 물결이 어우러져 흐르는 볼타 강은 다른 강들과는 다른 벅찬 울림을 자아냈다. 언뜻 바라본 프라하 속 삶들은 비슷한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그려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프라하 밤을 거니는 동안, 내 머리와 마음속은 사고로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나는 프라하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살짝 걷어내고 이 도시가 담고 있는 여러 삶들을 더 깊이 바라봤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니는 커플들, 막히는 도로 속 경적을 울려 대는 운전자들, 퇴근길 버스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마켓의 온기 속에서 정겨운 음식들을 나눠 먹는 사람들, 에너지를 끌어 모아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낭만을 만드는 도시.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되어 특별한 낭만이 없는 도시.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로 가득한 도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외로움과 슬픔, 또는 분노로 가득 찬 도시. 그 도시의 어슴푸레하면서도 찬란한 빛 속,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순간과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양한 삶들을 바라보자니 문득 ≪골든아워≫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주대학교 외과의사이신 이국종 교수님께서 맞서야 했던 대한민국의 열악한 의료 현실들을 담아낸 책이다. 하루하루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그 죽음의 모습은 저마다의 삶처럼 다른 모습을 지녔다. 



멀리서 바라보면 어슴푸레하게 번지는 빛과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기 다른 삶과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닌 모든 삶들이 찬란한 빛을 품고 있다. 그 찬란한 빛들이 하루아침에 어슴푸레하게 흩뿌려지고 만다는 것이 서글펐다. 



사고가 일어난 카렐 대학교 철학과 건물 앞에는 기자들과, 경찰들, 그리고 추모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이었다. 떠난 이들이 못 다 흘린 눈물을 하늘에서 대신 흘려주는 것만 같았다. 추모 행렬 속에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나는 이 생에서 그들이 가졌던 이야기들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모든 이야기들을 다 감싸 안아주고 싶었다. 어슴푸레한 빛을 따라 사라져 버린 그들이 빛의 저편에서 평온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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