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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 Jan 08. 2024

사랑의 깊이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관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세상이다. 거미줄 세상 속에서, 마주하는 인연들과 같은 순간에 마음을 맞댄다는 것만큼 소중하면서도 기적 같은 일이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다." 예전에 다니던 도장의 관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존경하는 분의 말이라 고이 간직해 둔 말인데, 몇 년이 흐른 후에야 내 몸과 마음이 이 말을 서서히 받아들인다. 



한 때 마음을 맞댔던 인연들이 지나간 자리를 되짚어 보며, 그들이 준 따뜻한 마음과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에 마음이 끓어오를 때가 있다. 나와 소중한 시절을 함께 해주었던 친구들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럴 때면, 그때의 내가 다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렇게 10년간 간절함만 간직한 채, 더욱 연락하기 어려워진 지금이 왔다. 




☘️ 자신의 아픈 부분을 먼저 말할 수 있는 우정


초등학교 시절, 새 학년 새 학기마다 하는 활동이 있었다. 가족 신문 만들기.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채워 넣는 아빠라는 자리. 나는 채울 수 없던 자리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가족 신문 만들기는 자연스레 사라졌고, 나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고학년 때 친해졌던 친구들은 아빠의 부재에 대해 알지 못했고,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친한 친구들과 문구점의 입구에서 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우리 반 친구였던 한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 무리의 끈끈한 우정을 부러워했고,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친해지는 방식이 독특하게도 우리 무리를 갈라놓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평소 그 친구가 다가오면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우리 사이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 친구를 대했다. 이번에는 내가 타깃이었나 보다. "너 아빠 없지?" "아니야... 나 완전 행복한데?" 지금 생각하면 참 터무니없는 대답이었지만, 그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낼 수 있는 답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그저 침묵했다. 며칠이 흐른 후, 한 친구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논 적이 있다. 갑자기 친구들이 자기 집안의 속 사정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 난폭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 그런 얘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고 있는 친구들. 나는 친구들의 마음을 알았다. 집안사정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은 먼저 자신들의 아픈 부분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집안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캐묻지 않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든든히 내 곁에 있어줬다.  



☘️ 움츠려져 있는 나를 끄집어 내준 우정


나는 스무 살 전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거의 쓰러지다시피 낡은 집이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을 오고 싶어 할 때 면, 나는 그 상황을 피하려 했다. 내가 사는 집은 친구들이 사는 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초라했고, 그런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우리 집을 우르르 찾아왔다. 아니 어떻게 알고 우리 집을 찾아왔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런 나를 아량곳하지 않은 채, 친구들은 천연덕스럽게 우리 집 마루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야~왜 놀러 가자고 해도 안 나오냐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셔가려고 찾아왔잖아. 근데 재희집 좋다~이렇게 누울 수도 있고. 이내 당황스러웠던 나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투박하지만 나를 위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이 나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집을 보여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들의 방식으로 표현해 줬다. 너무 신이 났던 걸까? 나는 저금통으로 쓰고 있던 홍삼통을 과감하게 열어 동전을 한 움큼 집어든 채, 친구들과 시내로 나섰다. 



☘️ 나에게 아기자기한 하루들을 선물해 줬던 짝꿍들


고등학교 1학년 짝꿍이었던 친구가 생각난다. 이국적으로 생긴 외모에, 시원 털털한 성격을 지닌 친구였다. 그 친구는 매일 아침, 내 책상에 딸기우유와 빵을 놓아주었다. 표현이 서툰 나는 그저 부끄러워하며 고맙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나의 생일이 오기 며칠 전부터 그 친구는 열심히 옆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부풀어진 풍선의 겉면에 신문 조각들을 덕지덕지 붙인 후, 마지막에 풍선을 터뜨리면 신문 조각으로 이루어진 멋진 통이 만들어진다. 쉬는 시간마다 또는 야자 시간마다 친구는 열심히 그 통을 만들었다. 내 생일날, 친구는 그 통에 과자와 학용품 등을 잔뜩 담아서 나에게 선물로 줬다. 한 시간 한 시간 공부하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라 생각했던 나였기에, 그 친구의 선물은 내가 생각지 못한 물결로 다가와 감동을 줬다. 그렇게 그 친구와는 대학교 초까지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떨어진 거리와 쌓여가는 시간만큼 서서히 우리는 서로의 오늘을 모른 채 살게 됐다. 고맙다는 말 외에는 그 친구에게 해 준 게 없는 나였다.  



어릴 때 나는 어머니께서 힘들게 번 돈을 쓰는데 죄책감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음식, 패션, 그리고 오락에는 돈을 잘 쓰지 않았고, 받은 용돈은 홍삼통에 모아뒀다. 어버이날이 되면, 모아둔 돈을 하얀 봉투에 담아 어머니께 드리곤 했다. 그게 나에게는 더 행복한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나는 교내 매점을 잘 가지 않았다. 한창 식욕이 왕성한 시기라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매점에 달려갔다. 나는 그들의 지나간 자리를 따라 자유롭게 널브러진 교실을 지키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짝꿍이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체육을 잘하고, 흥도 많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지닌 친구였다. 그런 만큼 식욕도 좋았기에, 쉬는 시간에 매점을 가는 일이 잦았던 친구다. 매점에서 돌아올 때면 나에게 줄 간식도 함께 사서 나눠줬다. 나는 그저 고맙다고 말하며 받아먹었다. 내 생일이 올 때면 직접 자신의 사진에 하트를 그려 넣어 나에게 보내주곤 했다. 자신과 다르게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던 나와도 함께 웃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친구다.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나를 진실되게 대해주던 친구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겁이 많고, 부끄러움도 많고, 표현도 잘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그럼에도 그런 나에게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얼굴을 묻으며, 또는 나를 감싸 안으며 애정을 표현해 줬던 친구들이다. 겉으로는 무디지만 툭 건드리면 바스러질 거 같은 나의 성정(性情)을. 그 성정을 그들은 알아챘고, 바스러지지 않도록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고 지켜주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들의 사랑이 참 순수하고 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의 깊이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황혼기에 접어든 어르신들은 노을처럼 이쁘게 익어가는 성숙하고 깊이 있는 사랑을 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호수처럼 세상을 담는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순수하고 깊이 있는 사랑을 했다.



언젠가 다시 연이 닿아 그들을 만난다면, 나는 혼자 오랫동안 간직해 온 고마운 마음들을 꼭 전하고 싶다. 그때보다 훨씬 더 다부진 마음을 갖게 된 나이기에, 이제는 그들에게 내 사랑을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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