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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Mar 28. 2024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에밀리 디킨슨의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걸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머리맡에는 별

발밑에는 바다가 있는 것 같이.     


나는 몰랐다 ㅡ 다음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될는지 ㅡ

누군가는 경험이라 부르지만

도무지 불안한 내 걸음걸음




우리 삶에서 실수가 용납되는가?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는가?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프로페셔널로 돈 받고 하는 일에선 용납되지 않는 게 실수이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공든 탑이 무너지고 나락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렇다 보니 어떤 직업군이든 다음 행보가 조심스럽고 매사에 널빤지를 걷는 것처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직을 포함한 서비스직군은 고객(수강생) 평가가 인사 평가에 반영되고 회사원도 동료 평가, 상사의 평가 등 다양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교적 자유롭다는 예술직군도 독자나 관객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단 생계수단인 직업에서만 널빤지를 걷는 것 같은 위태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이러한 널빤지를 걸어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불교의 경전에 안수정등(岸樹井騰)이라는 설화가 있다고 한다. 한 나그네가 허허벌판을 걷고 있는데 들불이 일어났다. 나그네는 불을 피해 걷고 있는데 굶주린 코끼리가 나그네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는 겁에 질려 도망을 가다 우물을 발견하고 우물로 뻗은 등나무 넝쿨을 잡은 채 우물로 내려갔다. 우물 바닥에는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나그네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나그네는 우물 위로 다시 올라가려 했지만 우물 위에는 굶주린 코끼리가 여전히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상가상 나그네가 생명줄로 알고 움켜잡은 등나무 넝쿨은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갉아먹고 있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때 등나무에 매달린 벌집에서 달콤한 꿀이 떨어지자 나그네는 그 꿀을 받아먹느라 정신이 팔려 자신이 위태로운 상황인 것도 잊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렇다는 비유이다.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조심스레 발을 옮기지 않으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해 죽을지도 모르는 게 우리의 삶이다. 잠시 우리가 그러한 위태로움을 잊은 채 세상에서 제공하는 재미와 향락에 취해 살아가고 있을 뿐 본시 우리의 삶이란 위기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가 부여잡고 있는 등나무 넝쿨은 끊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유한하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언제든 펼쳐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널빤지에서 떨어져 곧장 바다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널빤지 위에서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다. 위험할지라도 다음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설혹 다음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된다고 해도. 살아 있기에 멈춰 설 순 없다.



<덧글>

작가님들이 응원하기로 금전적 지원을 하시면 저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기 때문에 늘 감사한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먼저 표현해 주시니 저도 금전적 후원을 해야 하고 상호 간 품앗이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가 없이 순수한 의도로 저를 후원해 주신 것은 잘 알고 있지만요^^ 글쓰기 공간을 마련해 준 브런치에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제 돈을 내면서까지 글 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응원하기를 누르면 40%가 카카오 수수료와 세금으로 나가고 60%만 작가에게 입금됩니다) 추후 저에게 금전적 응원을 하시더라도 저는 더 이상 금전적 응원은 하지 않겠습니다. 작가들끼리 금전적으로 서로를 응원하기보다 독자님의 응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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