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뒷산 산책로 어귀에 텃밭이 있다. 사 년 차쯤 되었다. 명목은 운동을 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로 시작했다. 마음은 있으나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데 그곳에 텃밭이 있으면 아무래도 날씨 핑계 등 운동 안 가고 싶은 걸 이겨내고 운동을 나가게 될 거라는 아주 심오한 계산이 있었다. 그래서 텃밭러가 되었다.
텃밭은 한 해 한 해가 거듭될수록 면적이 넓어졌다. 콩도 수확하면 한 그릇은 족히 나올 것이고 고구마는 매년 딱 한 번 쪄먹고 다음 해 씨앗으로 쓸 정도로 수확하고 대파, 토란은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을 정도로 수확하고 고추 열 그루 가지 다섯 그루 깻잎도 장아찌를 두 번씩이나 담가 먹었고 상추는 원껏 먹을 정도로 그리고 양파도 그러다가 겨우 열무 정도 심었던걸 이번에 처음으로 김장용 배추 모종을 사서 오늘 심었다.
아침 일찍 텃밭엘 갔다. 토요일 아침은 텃밭러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날이다. 화기애애하게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누구네 밭의 씨앗이 싹이 텄다고 우르르 구경을 다니면서 함께 기뻐하곤 한다. 때론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면 따라 구입하고 씨앗을 뿌리다 좀 많다 싶으면 나눠 뿌리기도 하고 모종도 서로 나누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보낸다.
아무 준비 없이 맨발로 텃밭엘 갔다. 텃밭은 핑계고 휴일이 고하여 본론은 운동이라 맨발로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자 나갔다. 이곳 텃밭의 영주 같은 분이 내게 갑자기 배추 모종을 사러 시장엘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흔쾌히 따라 나가 모종을 사 왔다. 그때부터 땡볕에서 썩은 깻묵을 뿌려 밭을 일구고 배추 모종을 심고 한랭사라는 작은 하우스를 씌우고 덤으로 사 온 부추 모종을 심고 물을 줬다.
아침은 물론 점심 식사도 못한 상태로 땡볕에 텃밭에서 고군분투하였기에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집을 향해 하산을 해야 되는데 어지러움증에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겨우 그늘을 찾아 박스를 깔고 누웠다. 우글거리는 개미가 발을 물어뜯었고 모기는 임자 만났다고 먹잇감을 향해 원껏 빨대를 꽂았다. 그들을 쫒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대로 휴식이 필요했다. 조금 쉬고 기운을 차려 집엘 왔다.
완전 방전 상태였다. 텃밭을 시작하고 몇 번의 같은 경험을 했다. 운동? 글쎄? 텃밭은 잘못된 선택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말벌에 물려서 생전 처음으로 앰뷸런스차를 불러 타고 응급실을 찾은 적도 있었다. 아침마다 때론 퇴근 후에도 찾아가서 모기며 온갖 곤충들의 식량이 되어주는 이 길이 계속되어야 하는지 힘듦의 끝을 경험하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안 하면 안 했지 뭘 하면 끝을 본다. 죽기야 하겠나, 뭐 그런 생각으로 하는 성격(?), 또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그 불편함을 안고 지내기가 싫어서 해버리고 편하려고 하는 성격(?) 그것 때문에 녹초가 되곤 한다. 그래서 완전 방전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 것과 또 상반된 성격(?)이 있다. 휴대전화든 태블릿이든 충전해서 사용하는 기기들은 70% 이하로 되어있는 꼴을 못 본다. 뭐든 미리 준비해 둬야 마음이 편해서 못 먹고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좀 쟁여놓고 사는 스타일이다.
작은 습관이나 모습들이 모여서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 같다. 자타가 성격이라고 치부하는 모습들이 알고 보면 극한의 힘듦을 이겨내는 인내고 의지다. 작든 크든 뭔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일상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거라 생각한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편안해 보이고 안전해 보일지라도 나름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업이 아닌 취미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은 경우도 있다. 쉬어야 할 시간엔 쉬는 것 또한 꼭 필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