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Korea
해군 부사관 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해군에 입대했다. 기왕 해군에 입대했으니 순항훈련이나 파병 둘 중 하나는 가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순항훈련에 가는 대청함에 승조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충무공 이순신함이라는 멋진 구축함에 타고 싶어 지원했는데, 뜬금없이 '갑판병의 지옥'이라 불리는 대청함에 가게 되 약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대청함에 들어가면 전역할 때까지 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훈련소 때부터 유명했는데, 교관들이 말하는 '가면 개고생 하는 배' 1,2위를 다투던 배다.
특히 대청함을 눈으로 직관했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거대한 기름호스는 마치 영화 속 악당들이 타는 배처럼 보였다. 게다가 순항 전 수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출항 전까지 배를 거의 새것처럼 만들어야만 했다. 참고로 대청함은 나보다 2살이나 많은 배다.
힘든 일정 이외에도 고립된 함 생활 특성상 나의 군 생활이 전반적으로 평안했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즐겁고 감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왜 그때는 불평이 그리도 많았을까 약간의 후회도 남지만, 지나간 시간이기에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유독 아쉬움이 남는 것은 견시를 더 즐기지 못한 것이다. 고된 당직이기는 하지만 그때가 가장 신선놀음의 순간이 아니었나? 떠올려본다. 커피 한잔과 태평양의 노을이라니... 사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일장춘몽처럼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눈에 담아둘걸 그랬다.
잠들기 전에는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과 경험들을 일기장에 적었는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글쓰기를 즐겨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끄적끄적 적었다. 적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어 궁금증을 유발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 그렇게 차츰 논리를 구사하는 법을 배웠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지만, 사고의 폭이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이 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나 혼자가 아닌 여러 동료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독일에서 뤼넨 부르크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사실상 내 모든 이야기는 함께한 사람들과의 유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에 관하여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해도 결국 누구와 함께 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대략 30년 전 아버지의 사진이다.
신기한 건 아버지도 진해기지사령부에서 근무하셨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같은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하단에 보이는 충무공 이순신함에 타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대청함에 타게 되었는데, 미우나 고우나 나에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준 함선이다.
사진을 보면 위에 본문에서 말한 내용이 이해가 될 것이다.
군대에서 좋은 선임을 만난다는 건 매우 복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주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정말 힘들 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위로가 되었다.
특히 위 사진 중 가장 잘생긴 선임이 있는데, 전역 이후 스위스로 유학 갈 준비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유학은 불발되었지만, 그때 받은 응원과 격려는 지금의 내가 만들어짐에 있어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위 사진은 30년 전의 아버지와 30년 뒤의 아들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합성한 사진이다.
해군에서의 청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