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심리스 Jul 31. 2021

그 부부가 사는 집

그 집은 뭔가 특별하다.

친한 친구 부부가 있다. 우리들 중 가장 빠르게 결혼한 친구 부부. 키가 크고 미남형인 남편과, 촉새같지만 치명적인 눈웃음을 날릴 줄아는 매력형의 예쁜 부인.

그 둘은 아주 꽃다운 나이 24, 26에 결혼했다. 예상치 않게 찾아온 예쁜 아가를 그렇게 받아들이며 둘은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렸고 그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앞서가는, 그런 부부가 되었다.


 친구네 부부는 남편의 고향에서 살다가 어떤 사정으로 서울로 오게되었다. 남편은 연고지없는 서울살이가 힘들었지만 이악물고 버티며 남편의 고향에서 역시 외로웠을 부인을 생각했다. 역시 서울살이에서 남편은 외로웠겠지만 고맙게도 그 외로움을 우리와 함께 나눴다.



그들 부부가 가정을 꾸렸을 때, 젊은 나이였던 철없던 친구들에게 그 집은 거의 아지트가 되었다. 00동의 00아파트. 좁지만 아늑한 그 곳에서 우리는 그들 부부 덕에 많은 추억을 쌓았다. 스스럼없이 불편하지 않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부부는 공간을 제공했고 함께 놀았다. 술을 먹고, tv를 함께 보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비오는 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은 채 무섭다고 꺅갹대며 무서운 영화를 보기도 했다. 가끔은 남편이 데려온 친구와 부인이 데려온 친구가 만나 전혀 새로운 인연이 만나는 기회도 주어졌다. 그 모든 자리에는 항상 부부의 어린 아기가 함께했다. 아기도 우리의 귀중한 어린 친구가 되었다. 묘한 애착과 사랑이 아이에게 생겨나 애틋한 마음이 생겨났고, 아이와 그 아이를 사랑하는 여러명의 이모 군단이 그 집에 함께했다.

왜 웃었는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세세하게 전부의 이야기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부부가 사는 그 집은 그렇게 항상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하도 친구들이 와대서 친구 아기가 어느 날인가 거실에 신문지를 폈더니 말했다.


“오늘도 이모들 와?”


신문지=이모들 오는 날의 공식이 형성될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그 집 문지방이 닳게 놀러 갔다.



너무도 고맙고 따뜻한, 존맛탱 상차림.

 부부 중 남편의 음식솜씨는 참으로 뛰어났다. 내가 아는 남자 중에서 백종원 다음으로 요리를 잘하는 그 남편은 그렇게 매번 정성스레 맛있는 음식을 상에 내놓았다.  어느 날은 통영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을 다듬어 내주었고, 어느 날은 완벽하게 맛있는 찌개를 끓여 뚝배기에 소담히 담아 내주었다. 연두색의 아주 큰 접시에 해물찜을 담아 내놓았을 때 그건 거의 신의 경지였다.


특이하게 그 집은 식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스불이 딸린 상이 있었다. 손님이 하도 오니 하나 샀다며 웃으며 부부는 그 상을 폈다. 이런 것도 집에 있다며 처음에는 놀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집과 참 잘 어울리는 상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 상에서 우리는 고기를 구워먹었다. 식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돌솥고기판도 있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먹는 고기는 거의 웰빙 맛집 수준이었다. 어느 날은 미나리를 함께 구워먹으며 고기와 이게 이렇게 궁합이 좋을지 몰랐다며 놀랐다.


남편의 시댁에서 공수한 싱싱한 장어를 먹기도 했다. 나는 그 집에서 꼼장어를 처음 맛봤는데 생긴건 그리 징그러운 게 그리 맛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고기에는 시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김치와 반찬이 가끔 곁들여졌는데 그것도 참 맛있었다. 나는 애벌레처럼 생긴 초석잠이라는 반찬이 맛있어서 반찬 가게에 가서 그걸 사먹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그 집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나나보다. 그렇게 그 부부는 지겹도록 놀러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미각을 선물해줬다.


새로운 미각을 선물해준 집. 그 집엔 맛있는 기운이 흐른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집을 가지게 되니 손님을 집에 들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지저분한 것들을 하나라도 더 치워야하고, 하나라도 더 신경써야하고 무엇을 먹일지 고민하고. 신경 쓰이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또 예민해서 손님을 초대한 날이면 나의 미각은 거의 없어지는 거였다. 친구도 그랬을까. 잘 먹어대는 모습을 보면 나만큼은 아니었겠으나 손님이 간 뒤에남아있을 너저분한 흔적이 남아있는 게 싫은 건 친구도 나와 비슷한 듯했다.



손님을 초대할 때 해야하는 여러가지 일들과 힘든 잡일들. 그런 일들은 그렇게 00동 00아파트를 뻔질나게 찾아댈 때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항상 거리낌없이 우리를 맞아줬고 반겨줬으며 그 시간을 우리는 참으로 재미나게 보냈다.  


젊은 혈기가 묻어난 추억의 장소.

그 부부가 열어준 오픈 하우스 덕에 우리는 그곳을 젊음으로 기억한다. 20대 초중후반과 30초반, 몇 년이 지나며 그 추억을 곱씹으며 웃는다.



나는 그 곳에서 소주를 퍼먹다 많이 취해서 렌즈를 빼야한다며 렌즈통에 침을 뱉었다. 어떤 애는 춤을 췄고 어떤 애는 울었고 어떤 애는 웃었고 어떤 애는 노래를 했다.  그렇게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하며 그 집과 함께 우리는 자랐고 나이들었다.


어릴 때는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래서 어땠다며 연애이야기를 늘어놓았고 힘든 일얘기를 늘어놓았다. 이직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냥 아는 사람 이야기도 있었고. 신기하게 그집과 그 부부와 우리가 나이들어가며 대화의 소재도 나이들어갔다. 결혼 뒤에는 시댁과 육아, 남편과의 갈등 등등으로 깊은 공감과 질타가 공존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고 또 아쉬움없이 웃어제낀다.



얼마전 부부의 집에 가서 추억했다.


“니네, 우리 아이스버킷챌린지 하던 거 기억나나?”

젊은 날의 혈기로 우스운 일을 하던 그 때가 떠올라 우리는 다같이 깔깔 웃었다.


유명인들이 sns상에서 하던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하나도 안 유명한 우리들은 누가 지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끼리 했었다. 활동적이거나 충동적이거나 왁자지껄과 거리가 먼 나도 어찌어찌 등에 떠밀려 머리에 얼음물을 쓰고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했던 게 기억났다. 늘 조심성있고 경직된 내가 그런 자유로운 행동을 한 건 아마도 부부의 에너지와 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그 집은 내게 너무도 색다른 새 경험도 선물해줬다.






부부는 몇 년 전 새 보금자리를 얻어 이사했다. 작고 조금은 낡았던 젊음의 아파트. 그 전세 아파트를 벗어나 그보다 좋은 곳으로 이사한 친구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좋아보였다. 젊음이 얼룩 덜룩 묻어있던 그 집을 떠나는 건 아쉬웠지만 새로운 좋은 기회가 친구 부부에게 주어졌으니 그건 너무도 좋은 일이었다.


그 때보다 안정되게 살아가는 친구 부부는 그 집에도 우리를 초대했고, 그 새로운 집에 우리는 뻔질나게 또 드나들었다.  그 작았던 아가는 벌써 자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그 사이 예쁜 둘째 아이도 태어났고 우리는 그 아이를 또 내 자식처럼 예뻐하며 그 집을 드나들었다.  


그 사이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 이모 군단들은 하나하나씩 자기 가정을 꾸렸다. 아이를 하나씩 낳아 그 집에 아이를 데려가기도 하고. 이제는 훌쩍자라 이모들의 아이도 소중히 돌봐주는 친구의 아이. 그 아이는 이제 아이축에 끼는 것보다 이모축에 껴야 더 자연스러울 만큼 성장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그 때 친구 부부가 느꼈을 감정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깨달아간다.

그들이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들은 어리고 미숙해서 느낀 감정들이 아니며 그래서 했던 부부싸움이 아니라는 것. 어떤 시기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슷하다는 것. 그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이가 어려서 맞게되는 여러 갈등들에 부부의 모습이 스치며 그 때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생각하고 문득 놀란다. 부부와 같은 단계를 거쳐서 아이가 자라고 우리가 나이드는구나. 느낀다.


20 초반 꽃다운 나이에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친구가 겪었던 외로움과 박탈감이 무엇이었을지 지금 비로소 깊이 와닿는다. 나에 비하면 그들은 아주 양반이었다는 생각도 스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그들이 보여준 것처럼 무던히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아이가 있는 집에 그리 오랜 시간 머물고 노는 일이 엄청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30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은 많은 고난을 이기고 흐뭇하게 웃어보이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우리는, 친구의 여유와 무던함을 동경하며 우러러보는 처지에 놓여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집에서 잘 버티며, 또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를 부르며 함께 웃어제껴주는 친구가 있어 기쁘다. 그 부부의 초대로 풍성해진 20대와 30대를 보내게 되었기에 한번쯤 이야기하고 싶다.


고맙고 또 고맙다고. 덕분에 너무도 행복했다고.

그 집에 넘치는 웃음이 그리워 휴대폰을 열어 다시 한번 친구를 불러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생의 일일 웨딩플래너가 되었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