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일기
그렇게 예쁜 공주놀이가 끝나고 동생 남편이 데려간 아귀찜집에서 우리는 8시가 다되어 저녁을 먹었다.
나는 참 피곤하게도 청각이 심하게 예민하고, 귀가 참 밝다. 먹는 내내 뒷 테이블과 우리 테이블이 너무 가까워 아귀찜과 그들의 걸걸하고 야한 담화를 함께 먹었다. 참 거슬렸다. 그 사람들도 그리 사랑해서 결혼이란 걸 한 걸텐데 나누는 농담지거리가 그와는 너무 멀어보였다.
“그래도 ~ 사모님 그렇게 무서워하시고 신경쓰시는 걸 보면 아직 마음이 남아있는거예요.”
자리의 유일한 여자가 말했다.
남자가 말했다.
“뭐? 그걸 말이라고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드~~러워서 피하지, 시발”
“진짜 정으로 산다. 시~발”
‘드~~러워서’ 그 부분을 참 정떨어지게 표현을 했는데 그게 맛깔나서 ‘아 저 사람은 정말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야기 말고도 자기가 부인을 어찌나 사랑하지 않는지 부인이 어찌나 질리는 여자인지, 얼마나 결혼이 싫은지를 자랑이자 농담처럼 내뱉어내던 시간들.
왜 남자들은 부인이 없는 자리에서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자랑처럼 우스개소리로 떠들어대는 걸까.
그 사람도 우리처럼 드레스 투어를 하고 드레스를 고르고 결혼을 준비하고 빛나던 사랑의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 대화들이 어쩌면 퇴색될 대로 퇴색된 결혼의 미래 모습같아 씁쓸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하루동안 그 많은 일정을 거치며 결혼 준비를 하는데 그 많은 준비에서 남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없었다.
그 말인 즉슨, 결혼식의 주인공이자 꽃은 신부라는 거다.
왜 신부의 결혼을 이토록 축하하는 것일까.
왜 신부는 결혼식에 그리 아름답게 빛나야하는 것일까.
결혼해보니 여자는 결혼으로 인해 많은 것을 감내하고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변화들을 과감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남자 또한 그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무게. 아이를 낳고난 뒤에는 생계를 이어가야하므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고 가계를 꾸리기 위한 생산활동을 꾸준히 해야만 한다. 육아에 던져지며 자신을 위한 취미를 즐길 수도 없어진다.
여자의 변화는 보다 가시적인 것들이다. 우선 생리적으로 눈에 띄게 몸이 바뀐다. 임신을 하게 되면 배가 끝없이 나오고 뱃살부터 골반, 가슴. 등등 몸의 여러 부분이 처녀때와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전에는 전혀 해 보지 못한 새 경험들을 줄줄이 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고 그 일을 기존의 일과 병행하고 시댁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모든 것들이 ‘여자’가 해야할 과업에서 ‘엄마’가 해야할 과업으로 새로이 주어진다.
홑몸으로 사랑많이 받고 자란 연약한 여자에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강인한 희생의 여성상으로의 변모.
실질적으로 급격히 바뀌는 것들을 온전히 감내하며 기존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하는 그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는지가 여성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축이 된다.
그러니 결혼이란 이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그 변화의 시작을 어떻게든 축복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찬란하게 기억하고자 하는 게 결혼의 꾸밈노동이 아닐까.
‘앞으로 많은 일이 닥칠거야. 그때, 이 빛나던 아름다움을 잊지마.’
여자로서의 최고의 꽃을 피우고 우리는 각자 가정에서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되짚어보며 그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채로 살아가겠지.
아, 멋지지만 조금 서글프고, 서글프지만 조금 멋지다.
오늘 하루 드레스투어 때문에 나와 엄마, 동생 모두 외출을 한 터라 아기는 우리 아빠가 봐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지고 일해서 어깨가 아픈 아빠가 아이를 잘 못 안을까봐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중간 중간 아빠가 아기 사진을 보내줬는데 그게 너무 귀엽고 웃겨서 우리는 몇번이고 돌려봤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엄마 보고 싶다며 현관에 서서 신발을 잡고있는 귀여운 모습. 아빠가 안마기 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는지 자기도 편안히 앉아 안마받는 모습.
잠시지만 아침에 예쁘게 묶어줬던 머리가 다 풀어지며 엄마 없는 태가 났다.
우리 아빠는 어찌나 예뻐하며 귀중하게 우리 아가를 돌봐줬을까. 아빠의 모습이 상상돼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다.
아빠는 우리 네자매의 머리를 항상 묶어줬는데
드레스 투어 중에 그 얘기도 나왔다.
아빠는 아침이면 항상 차례로 우리 네 자매의 길고 긴 머리를 꽈배기 끈으로 묶어줬다. 아빠는 힘이 세서 머리를 좌악좌악 모아서 꽈배기 끈을 최대로 늘이며 거의 다섯번을 꽉 꽉 묶었고 그래서 머리를 묶었을 뿐인데 두피가 늘어나 눈이 뱁새눈처럼 찢어져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면 우리는 너무 살살 조심스러운 엄마의 손길에 이상하게 머리 묶은 느낌이 안나고 아빠가 꽉꽉 묶으며 아파하던 게 그리워지기도 했었다.
아빠가 아기를 봐주고 사진을 보내는데 머리 묶던 추억이 생각나 둘째와 웃었다.
‘아빠같은 사람 없다.’
간혹 아빠에게 잔소리를 퍼부어대지만 이런 매력때문에 우리는 아빠를 미워하려야 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와서 동생이 얼마나 예뻤는지 재잘재잘 떠들었다.
첫번째에서 몰래찍은 영상을 잠시 돌려봤다.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모습의 동생.
우리는 예쁘다며 정신없이 웃으며 텔레비전을 보며 떠드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 웃음 속 둘째의 드레스 사진을 보며
아빠가 울었다.
결혼한 딸을 이제 보낸다는 게 실감이 났는지 아빠의 눈은 붉게 익었고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아빠, 울어?”
“어머머 네 아빠 우나봐. 웬일이니.”
이제는 엄마보다 아빠가 여성호르몬이 많아진 게 확실하다.
“아빠, 왜 울어”
"아빠 운다."
네자매가 한마디씩 거들어 아빠가 운다는 사실을 되짚었다. 나는 결혼 후에도 그렇게 자주 오고, 심지어 오늘도 아빠 옆에 앉아있는데도 아빠는 동생이 시집가는게 싫은지 울었다.
아빠한테는 왜 우냐고 했지만 실은 그런 아빠가 애틋해 나도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아빠는 드레스 입은 내 동생을 보며 둘째의 결혼을 실감했고 그래서 아쉽고 슬펐나보다.
나는 생각했다.
일단 ‘시집간다’는 결혼 대체어의 명칭자체부터가 글러먹었다.
‘여자가 시집가다’라 하지 말고 처음부터 ‘남자가 친정오다.’ 이런 걸로 지었으면 좋았는데 시집가는게 자꾸 가는 걸로 느껴져서 여자 쪽은 항상 슬픈 느낌인게 싫다. 우리도 사위를 들인다는 느낌이면 좋겠는데. 그에 맞는 결혼 대체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에게도
“너 언제 친정가?”
“응 나 이번에 12월에 친정가~” 하면 안되나
“야! 너 친정간다고? 축하한다. 드디어 친정가네.”
여자에게는
“너 언제 시집가?”
“응 나 이번에 12월에 시집가~”
“야! 너 시집간다고? 축하한다. 드디어 시집가네.”하듯이 말이다.
아무튼 보내는 것도 아니고 보내기 싫은 마음이 들어 나는 이 시집간다는 단어를 어떻게 바꾸면 안되나 말도안되는 생각을 한다.
오늘 하루, 나는 동생의 일일플래너로 강남 결혼 상업 지역을 샅샅이 뒤져 방문해보며 이런저런 새로운 생각을 했다.
드레스 샵을 잘 정하고 예쁜 하루를 성공적으로 만들어가길 빌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동생을 도와야지.
오늘 내가 본 어떤 모습보다 예뻤던 동생의 찬란한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삶에 있을 변화의 시작점.
그 결혼식이 나는 참 기대된다.
아빠는 과연 울까 안 울까.
그것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