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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Jul 07. 2021

동생의 일일 웨딩플래너가 되었다(1)

소소일기

 우리 집은 네 자매다. 나는 그 중의 장녀이고 네 명 중 유일하게 결혼 경험이 있다. 결혼을 하며 생각한 건 결혼하기는 아주 어렵고 이혼은 아주 쉽다는 거다. 이건 내가 결혼하기 전 생각한 것과는 아주 반대이다. 결혼하기 전엔 결혼은 아주 쉽고 이혼은 아주 어려운 줄로만 알았다.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완벽한 결혼을 위해서는 아주 분주히 해야만 한다. 오늘은 12월경 결혼하는 동생의 부탁으로 나, 엄마, 동생, 동생의 남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언니, 오늘 우리 가야할 곳이 총 5개야”


한 가지 일정으로도 벅차하는 예민파 나는 오늘 5개의 일정을 소화한다니 처음부터 조금은 걱정이었다.

어린이집에 아이가 다니기 시작해서 적응을 하는 중이라 아침 7시부터 그에 맞춰 움직인터라 친정에 도착한 다음에 나는 거의 기진맥진이었다. 게다가 오늘 먹어야 할 갑상선 약도 빼먹었고. 아무튼 이리저리 피곤 만빵이라 걱정이 앞섰다.


첫 일정은 ‘한복’이었다. 동생 부부와 나, 엄마가 결혼식 때 입을 한복을 입어보러 갔다. 각자의 치수를 재고 한복을 피팅해보는데 동생 부부가 참 예뻤다.


흰색 당의와 핑크색 치마, 핑크 저고리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깔의 한복들이 동생의 결혼을 축복하듯 자리를 빛내주었다. 피팅을 도와주시는 원장님이 참 친절했다. 다섯 자매중 둘째라는 원장님은 네 자매 중 둘째인 동생의 옷을 입혀보며 역시 둘째가 살림밑천이지 않냐며 반가워했다.

자두같은 신랑과 귀여운 내 덩생ㅋ

하늘색 쾌자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동생 남편을 보고는 ‘얼굴이 자두같이 잘 익었다’며 귀여운 부부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동생부부것만 계약을 하고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두번째는 메이크업샵이었다. 정신없는 건물의 좁은 엘레베이터를 지나 누드 메이크업을 잘한다는 메이크업샵으로 갔다. 우리는 앉아서 결혼식날 어떻게 어떤 화장을 해야할지 길게 의논했다. 남편 분 머리는 이렇게 쉼표식이구요, 신부님 머리는 피스를 붙여야하고요. 뿌리염색은 0달 전에 하시고요 머리커트는 15일전쯤 하셔야 자연스럽고 어쩌구저쩌구…



아, 하루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이렇게나 많고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거의 3개월만에 번갯불 콩구워먹듯 결혼을 빨리해서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빨리빨리 되는 대로 급하게 마음에 드는 메이크업샵에서 화장을 하기로 했는데 그런 정성스러운 상담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번째부터는 드디어 드레스투어가 시작됐다.

첫번째 샵은 아주 짧게 커트머리를 친 멋진 디자이너가 직접 설명해주는 샵이었다.


 동생의 남편에게는 미리 연기를 잘 하라고 일러두었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 모두 여자 주인공의 웨딩드레스 자태를 보고나서 무언가 슬로모션으로 화면이 느려지고, 눈은 반짝거리는. 그런 연기를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것이기에.


동생 남편은 긴장한듯해보였다. 첫번째 샵에서 야심차게 두근두근하며 첫 드레스를 입고 커튼을 젖혔다.


“너무 예쁘다!!!!!!!!”


엄마와 나, 동생 남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화려함의 극치로 비즈를 아낌없이 때려넣은 드레스를 무리없이 소화한 동생이 너무 예뻐서 깜짝놀랐다. 내 동생은 평소 상비(상체비만)라고 우리들 사이에서 팔뚝살을 그리 걱정해왔는데 드레스가 참 커버를 잘하는지 전혀 뚱뚱해보이지 않았다. 필라테스의 힘인가. 젊음의 힘인가. 사랑의 힘인가. 어떤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동생은 내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예뻤다.  



 동생의 남편은 어떤 연기를 준비해왔는지 내가 통찰력있게 살펴보려했는데 내가 본 동생 남편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놀란 눈치였다.


저 공손한 몸짓을 보시라, 우러러보는 동생의 남편과 왕비같은 동생


 신기한 건 첫번째 드레스는 신부 느낌보다는 왕비 느낌이 짙었는데 웅장하게 제일 멋진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동생을 동생남편은 우러러봤다.


‘우와. 정말 예쁘다…’ 키가 큰 단상위에 오른 동생을 우러러보며 멍하니 쳐다보는데 나는 잠깐 봤다.


동생 남편의 눈에 잠깐 맺혀있던 눈물.


아름다운 걸 보면 가끔 눈물이 난다는데 오늘은 내 동생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맺혔나. 아니면 그런 동생이 이젠 정말 자기 것이 된다는 게 감격적이라 눈물이 났나.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동생을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언니로서 고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엄마는

“야, 이제 가는게 실감이 난다. 드레스 입으니까.”

했다.


엄마의 슬픔과 서운함을 잠시 느낀 뒤 나는

“엄마 나를 봐, 얼마나 자주와 지금도 여깄잖아.”

나는 청승맞은 슬픔을 감추려고 재빨리 감정을 잘라냈다.


내가 결혼할 때는 그렇게 질질 울고 애틋함에 미친듯 몸서리치며 결혼을 무서워했는데 사실 하고보니 어디 멀리 떠나지 않고서야 결혼 후에도 가족의 끈은 끊어지지는 않는 거였다.


엄마 아빠는 더 지겹게 볼 수 있고 우리의 인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서 나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동생은 그 이후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드레스를 소화했다. 너무 예뻐서 촬영 금지 표시를 보고도 무음카메라로 몇 컷을 찍었는데 (죄송합니다…) 디자이너에게 걸려서 멋쩍었다. 찍지 말걸. (죄송합니다...)


.

우리 셋은 각자 역할을 맡았다. 나는 영상으로 우리의 반응을 메모했고 동생의 남편은 그림스케치를 가져와서 거기에 평점과 느낌, 별점, 디테일 등을 기록했다. 엄마는 보자마자 10초. ‘신부 예쁘네’하는 데 걸린다는 그 10초의 시간을 온전히 느껴 드레스를 골라보기로 했다.

동생 남편의 드레스 그림… 성실하기 그지없는 기록들


2번샵에서도 동생은 예뻤다. 너무 마른 게 아니라 조금은 살집이 있는 게 드레스 입는 데 좋구나 깨달았다. 어깨가 넓은건 안좋은게 아니라 드레스의 무게를 잡아주며 부티가 나게 만드는 참 좋은 특성이었다. 목이 올라오면 올라온 대로 파이면 파인 대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동생은 빛났다.


엄마가 열번 쯤 반복해서 말했다.

 

“난 다은이가 이렇게 예쁜지 몰랐어.”

“나도. 나도 진짜 몰랐어.”


“쟤 왜저렇게 이쁘대?”

몰라 나도”


나는 동생이 예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예쁜 줄은 몰랐다. 내 동생은 항상 후드티에 청바지. 벙버짐한 티셔츠나 남방. 프리하게 입는 걸 참 좋아했고 간호사로 살아남기 위해 어느 날은 머리를 감지 않고 나가기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무 옷이나 주워입은 채 일하러 나갈 때도 많았다. 아주 추운 겨울 날 ‘데이’ 근무를 나가는 길이 얼마나 추운 줄 아냐며 거의 이불처럼 온 몸을 감싸는 검은 롱패딩을 주구장창 입고다니는 그런 생존형 캐주얼 거적데기 패션.


 하늘하늘 나풀나풀 옷은 동생에게 사치인듯. 그렇게 일터에서 생존하기 위해 내 동생은 캐주얼 룩을 항상 고수했다. 평생을 그리 캐주얼하게 입었던 동생이 이런 여성스러운 스타일에 미모가 꽃 필 줄이야.


역시나 여자는 꾸미기 나름인지. 이렇게 예쁜 내동생을 그 동안 몰라본 게 아쉬워 다소 억울한 마음도 일었다.


이렇게 예뻤는데 그렇게 고되게 일하느라,

너를 몰랐어.


 꾸밈 노동에 과하게 몰입하고 있는 이 사회에 조금은 반감을 갖고는 있지만 결혼식의 그 하루를 완벽히 꾸미기 위해 이렇게 정성스레 자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일은 그래도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2번 샵은 화려함이 컨셉이었는데 그래서 나오는 모든 드레스에 비즈와 레이스 디테일들이 아주 많았다. 드레스를 입고 나올 때마다 탄성이 이어졌고 실장님은 불을 켰다 껐다 돌았다 반만 뒤돌았다 하며 드레스의 매력을 뽐내주었다. 2번부터는 너무 예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2번샵에 와서 두 벌인가를 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엄마가 말했다.


“… 다슬아, 그 디자이너 참 멋있었어. 그치?”

“응 엄마, 진짜 멋있더라.”


1번 샵의 나이 지긋한 디자이너에 엄마는 마음이 동한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2번샵인데 아직 마음을 그 곳에 놓고 온 듯했다.


젊은 시절 남대문에서 옷을 디자인하던 엄마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그 디자이너를 바라봤다.


곱슬곱슬한 아주 짧은 숏컷 머리, 확신있고 차분한 말투, 단순한 블랙 옷이지만 어깨에 달아 포인트를 준 코사지, 손목에 차고 있던 꽃모양 시침핀 꽂이.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확신이 돋보이는 그 여자는 어두운 샵 안에서 멋진 에너지를 발산했고. 그건 나만 느낀건 아니었나보다.


우리 넷을 낳으며 산전수전 겪으며 키우느라, 디자인 일을 그만하고 주부가 된 엄마는 그 디자이너를 떠올리며


“엄마도 계속 했으면, 저랬을까.” 했다.


난 그런 엄마가 안타까워 잠시 슬퍼졌다.


‘엄마도 계속 했으면 저것보다 더 멋있었을거야.’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로 인해 엄마가 계속 일한 엄마의 모습을 더 상상하며 나래를 펴면 왠지 더 슬퍼할 것 같아 그 말은 참았다.


엄마는 잠시 후 덧붙였다.


“에이 느이 아빠 만나서 다 망했지 뭐. 호호”


누군가로 인해 내 인생이 망했다는 얘기를 호호 두 마디 웃음을 덧붙일 정도로 말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야 하는 걸까.


망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기에 오히려 호호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인지. 이미 망해서 후련한 것인지.


엄마의 고생사를 또 훤히 아는 나는

‘엄마 그래도 우리가 있잖아.’ 하려다 우리가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물들이라는 자신이 없어져 그냥 같이 호호 웃었다.






자. 이제 마지막 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어찌어찌 버텼는데 두번째샵이 예쁜 바람에 이미 1번샵은 다 잊었고 과도한 몰입과 집중, 감탄과 사유. 그런 것들을 통해 많이 지쳤다. 내가 입어봤을 때는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보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샵에서는 체력이 다해 예쁜지 안 예쁜지 잘 살펴볼 자신이 없었는데 여.기.서.도 동생은 새로운 드레스를 나오는 족족 잘 소화했고 아름다웠다.


이 곳은 뻔하지 않은 특이한 디테일이 특징이엇는데 그래서 더 엣지 있고 예뻤다. 수입 레이스는 청순했고 스퀘어넥의 오간자 실크도 아름다웠다. 화려한 비즈 드레스도 참 예뻤는데 팔 쪽 디테일이 약간 뱀같아서 나는 싫었지만 엄마는 이게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다.


 엄마는 청순보다 항상 화려 쪽인데. 인생 한 번 결혼인데 최고 화려한 걸 입어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평소 파스텔톤보다 강력한 블랙! 레드! 블루!를 선호하는 엄마는 야시시하고 드레시한 게 최고다라는 생각으로 항상 우리에게 총천연색의 옷을 선보였다.  내 동생은 30 평생 수수하게 옷을 입고 살아왔는데 오늘 비로소 엄마와 비슷하게 화려한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려한 드레스를 예쁘게 소화하고 그 드레스 장식에 압도되지 않는 엄청난 기운.


그걸 내 동생이 가지고 있었다.(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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