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살롱드 콘서트 후기
김윤아 솔로 콘서트에 다녀왔다. 락앤롤 자우림 콘서트와 달리 재즈풍의 노래로 관객을 들어다 놨다.
자우림 노래는 어린 시절부터 들었다. 하지만 김윤아 단독 앨범은 20살이 돼서 듣기 시작했다. 부산에 대학을 다니기 전에 창원에서 대학을 다닌 적이 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들어간 대학에는 막상 활동할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반포기 상태에 접어들 때 우연히 선배들이 총여학생회에 놀러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페미니즘 의제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새내기였으나 배우고자 했던 의지만큼은 돋보였는지 선배들이 조직차장으로 자리를 줬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함께 배우며 실천하며 문화에 관심이 많은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생시절까지 주변에 누구도 영화든 예술 등에 관심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 나 또한 다채롭지 않고 단조로웠다. 대학에 와서는 이런 단조로움을 탈피하고자 음악과 영화를 닥치는 대로 봤다. 하지만 무조건 많이 본다고 사람이 다채로운 문화적 소향을 가진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전략은 주변에 멋있는 선배들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창원에서 만난 선배는 나에게 우상이었다. 사회적 문제에도 자신의 시선을 갖고 있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과 영화에 대해서도 자신의 감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줬다. 맨날 선배의 CD플레이어에는 김윤아 솔로 2집이 꽂혀있었다. 김윤아 2집은 지금 들어도 20년 전 음악 같지 않다. 사랑이나 인생의 굴곡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슴이 아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음반이다. 하지만 20살 당시 단조롭고 무뚝뚝한 내가 그 감정을 어떻게 알겠니. 연애의 감정도 인생의 뼈아픈 기억도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내가 말이다.
다채롭고 문화적 소향을 갖고 싶다는 내 욕망이 김윤아 솔로 2집을 구매하게 만들었다. 최근 김윤아 앨범이 사랑노래로 가득한데 사랑의 감정을 갖기 위해 영화와 드라마를 봤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김윤아는 실제로 사랑의 감정이 느껴져 곡이 술술 써졌다는 이야기를 한적 있다. 나 또한 사랑이든 사람들의 깊은 감정을 쥐뿔도 모르는데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봄이 오면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봄 맞으러 갈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환상에 젖기에 딱 좋았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녁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오면 - 김윤아 2집>
하지만 그 후 자우림 음반은 자주 들었지만 김윤아 단독앨범은 직접 CD를 구매해서 듣지는 않았다. 20살 나의 삶은 연애 혹은 사람들의 감정을 돌아보는 대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학생운동에 참여해서 구조적 모순에 함께 맞설 수 있을까가 화두였으나 깐 말이다.
다시 김윤아 노래를 만난 것은 2016년이다.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활동을 했던 노동당으로 돌아와 박근혜 퇴진 운동에 전력투구했던 시간이다. 하지만 전력투구 했던 것에 비해 그 성과는 민주당으로 향했고 진보정당은 해가 갈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집권 한 민주당은 최저임금 산입법을 통과시키며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그 외 민생문제에 대해 촛불정신을 계승하지 못했다. 나는 불안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그리고 박근혜가 물러가면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벗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이어갈지 몰랐다.
그때 김윤아가 드라마 시그널 OST에 참여하여 부른 '길'이라는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시그널이라는 드라마는 미제사건으로 묻힌 사건의 행방을 쫓는 형사에 대한 이야기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지만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험난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드라마다. '길'이라는 노래도 드라마의 의미를 잘 담았다. 활동을 하면서 갈 길이 보이지 않고 과연 나의 선택이 맞는지 늘 불안할 때마 이 곡을 듣는다. 불안을 표현하는 김윤아의 떨리는 음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는 묵직한 가사가 불안한 나를 다잡아줬다.
가르쳐줘 내 가려진 두려움
이 길이 끝나면 다른 길이 있는지
두 발에 뒤엉킨 이 매듭 끝을 풀기엔
내 무뎌진 손이 더 아프게 조여와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저 해를 삼킨 어둠이 오기 전에
긴 벽에 갇힌 나의 길을 찾아야만 하겠지
<길- 김윤아>
이번 콘서트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불안은 늘 우리 주위를 맴돈다는 것이다. 김윤아는 어린 시절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으며 음악이 자신을 끌어안아 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뮤지션이 돼서는 팬들을 통해서 스스로의 불안함을 조금씩 털어냈다고 표현했다. 불안감이 들 때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결국 불안은 나를 흔들기도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넌지시 알게 했다.
엔딩곡은 5집의 '해피엔딩'이다. 이 곡은 김윤아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설거지를 하며 갑자기 눈물을 터트린 기억을 가지고 쓴 곡이다. 누구나 연애라는 감정의 결실은 결혼이라고 한다. 결혼을 하면 행복한 일만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진다. 하지만 '해피엔딩'이라는 곡을 통해서 김윤아는 해피엔딩 이후에도 삶은 흘러간다고 말한다.
달그락달그락 설거지 통에 손을 담그면
주르륵주르륵주르륵주르륵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해피엔딩 이후에도 삶은 흘러가고
해피엔딩 이후에도 내가 여기 있어
<해피엔딩-김윤아 5집>
마지막 김윤아는 "콘서트는 끝이고 나가면 현실이야 조심해"라고 말하고 공연을 마무리했다. 우리가 돌아갈 현실이 녹녹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현실의 벽 앞에 불안한 내가 깨지지 않게 스스로 잘 대해주라고 말하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다. 음주를 허용하는 공연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술이 딱 깼다. 다음주가 휴가 끝이 라는 사실을 김윤아가 깨닫게 하니 점점 공연장을 떠나기 싫었다.
내년 초에는 자우림 신규 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콘서트는 빠짐없이 가야겠다.
PS) 김윤아를 알게 한 창원 총여학생회에서 만난 선배는 요즘에도 <두 번째 페미니스트> 등과 같은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책도 쓰며 열심히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다. 20년 전 그리고 6개월 남짓 알고 지낸 사이라 그분은 날 기억 못 할 것 같다. 부산에 북콘서트를 빌미로 한 번 초빙해서 김윤아를 알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