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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ul 02. 2022

5월 꽃 축제

백수가 과로 한다고 아침부터 바빴다.

은행 개점 시간에 맞춰 새로 총무를 맡은 모임 계좌를 개설하고, D병원에서 아내의 검사 결과를 함께 본 후 함안의 '강나루 둑방길'을 향해 출발하였다.


아직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은 도처에 늘려 있었다.

진영휴게소에서 '뚝배기 갈비찜' 하나를 나눠 먹었을 때 정오가 채 되지 않았다.


함안 IC로 내려와 법수면 '강나루 둑방길' 마을에 주차를 했다. 둑을 향해 걸으니  무지갯빛 7가지 색연필 모양의 팔랑개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빨간 풍차가 보이는 둑 위에 오르니 넓은 고수부지 위에 꽃밭이 펼쳐져 있다. 멀리 강물과 둑이 보이고 바로 앞에 경비행기와 활주로, 원두막도 있다.


탄성이 나왔다. 예상치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다. 초록의 골프장처럼 시야가 확 트이고 산뜻하다.


우리는 곧장 내려가 꽃밭 사잇길을 걸으며 감탄사를 연방 질러대면서 사진을 찍었다.


양귀비꽃과 메리골드, 금계국, 수레국화 외 이름 모를 꽃들이 거대한 화원을 만들어 놓았다. 시든 안개꽃도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위에 적은 꽃은 내가 아닌 아내가 이름을 말한 꽃이다. 나는 양귀비 외 아는 게 없다.

5개씩이나 맞추는 아내가 대단해 보인다.


5월의 햇살은 뜨거웠다. 우리는 원두막에 앉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고향마을 뒤 개천의 둑 길이 떠 오른다. 어릴 적 폭염 속에 멱 감으러 가던 길 옆 야생화와 염소들, 이곳과는 달리 뜨거운 돌멩이밖에 없는 강변이지만, 발가벗고 헤엄치던 그때 그 아이들이 그립다.


강변의 돌멩이로 만든 고향의 둑 길이다.


저 편 강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아마도 '악양 생태공원' 이란다. 아내는 그곳에 황금 빛깔의 금계국 꽃 무더기가 있다면서 가자고 한다.


눈에 보이는 직선거리는 500m 정도이다. 하지만 그늘 한점 없는 땡볕 길이다.


"난 도저히 지쳐서 못 걸어가겠다."


"그럼 할 수 없지예! 차를 타고 가볼까요!"


금계국 꽃 덤불을 보고 싶은 아내의 의지는 강했다.


자동차로 3km쯤의 거리를 알려준다. 우리는 금방 도착했다. 걸어왔다면 강을 넘는 다리가 없어서 더위에 헛 걸음을 칠 뻔했다.

나의 왕짜증이 때로는 선견지명이 되기도 한다.

 

정말 이 편 둑은 금계국으로 활짝 피었다.  우리는 금계국이 200m 줄지어 핀 둑길을 걸었다. 사이사이에 수레국화도 많았으며 벌과 나비가 무수히 날아들었다.


둑 길이 끝나고 함안천이 구비구비 휘감아 도는 멋진 곳에 악양루가 표시되어 있다.


많이 들어본 악양루, 인터넷을 찾아보니 두보가 외로움의 시를 적은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가 검색된다.


우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악양루까지 데크길을 걸었다. 누각은 절벽에 딱 붙어 강을 내려다보기에 좋은 위치이다.

할머니들이 선점해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후덥지근할 뿐 가뭄이 계속된다. 지금 비라도 내린다면 시원하게 여기에 선채로 맞고 싶어 진다.

꽃밭에 물을 주는 인부의 고단함이 내게로 전해져 나도 급 피로감이 느껴진다.


이젠 오늘의 꽃구경 임무를 완수했으리라!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귀가하려는데, 아내는 또다시 '강나루 생태공원'으로 가 보는 게 어떠하냐고 묻는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머~ 무엇이라~ 또 생태공원이 있다고!'


나는 이미 더위를 먹었다. 아침부터 바쁜 시간에, 얼마나 걸었는지 주저앉고 싶다.


아내는 언제부터 꽃 아가씨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조금도 지칠 줄을 모르고 전진 또 전진이다.


'강나루 생태공원'을 내비로 검색하니 칠서면에 있다. 부산과는 반대 방향이다.


"함안군수란 유별난 작자가 각 면마다 생태공원을 조성하라고 한 거 같은데, 얼추 다 비슷하겠지 뭐 볼 게 있겠나요!"


(이 세상의 소중한 평화를 깨트리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니 당신은 막상 가보면 늘 좋아하면서, '뭐 볼 게 있겠나요'가 항상 십팔번이더라!"


나이 들면 누구나 감성이 메말라 간다는데, 꽃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 아내를 오히려 긍정적이고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저녁 6시 동창회에 늦어서 안된다며 그곳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우리는 서둘러 귀가하기로 합의했다.


아, 이제 5월의 꽃 축제는 막을 내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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