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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화당
Sep 28. 2023
태항산 여행
참으로 오랜만이다.
코로나 해제 후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한 것이
세 번이었다. 출발 직전에 갈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터졌고 위약금도 많이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짧은 여행으로 출발
1주 전에 예약하여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겼다.
태항산이라 아내와 함께 트래킹화도 새로 구입하고 스틱도 넣고 캐리어를 꾸리니 오랜만의 행복감에 젖는다.
석
달 전 아내는 백양산 하산길에 넘어져 손목골절로 수술해 철심을 삽입한 상태이다.
이로서 최근 외식을 일상화하여 이번 여행에서 음식에 대한 감탄은 꽤 줄어들 것이다.
아침 햇살에
김해평야로 달리는 경전철에 낙동강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트렁크를 든 여행자들이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공항 집합장소에서 가이드와 동반자들을 만나니 단체 여행의 기대와 긴장감이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부부가 대다수이며
몇 개 여행사 연합으로 총 23명이 모였다.
하북성 석가장 공항까지
두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공항 도착 후 한 명의 입국 문제로 모두들 한 시간 이상을 지겹게 기다렸다.
따라서 오늘 예정인 조자룡 묘는 마지막 날로 미뤄졌는데, 아내의 유비와 조자룡의 관계에 얽힌 이야기로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의 세세한 기억력은
어릴 적 독서의 힘인지 정독에서 나오는 집중력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공항을 빠져나와 점심을 먹고 태항산이 있는 하남성 임주로 4시간여 버스로 이동하였다.
이번 여행은 노팁 노옵션을 택했는데 얼마나 가이드의 간섭이 줄어들지는 지내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가이드는 애당초 없었던 내일 일정의 옵션(최근 개발된 팔리구폭포 관광) 하나를 추가하니 저녁 식사시간에 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 식당에서 가이드의 60달러짜리 옵션을 두고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니, 패키지여행팀이란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이 한 공간에서 한시적으로 자치 능력을 발휘하여 만들어가는 소 부족처럼 볼 수 있지
않을는지.
그들 최상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며, 소외자가 생겨서는 안 될 그러한 집단으로~
여행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가이드와의 경비 협상과 관계 설정은 중요할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여행의 참 맛은 빛을 잃게 되리라.
각 개인의 사고와 전체 여론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먼저 침묵을 깨고 싱글로 온 남자가 운을 뗀다.
"예전에도 중국에 많이 와 봤지만, 5일간 좋은 분위기로 있으려면 가이드 말을
따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곧바로 울산서 온 자매 중 언니가 툭 던진다.
"좀
깎아야지 뭐, 그대로 다 줄 수가 있나요, 뭐"
어쩜 그렇게 내 생각과 같은지 나도 거들었다.
"그렇지요. 가이드가 원칙을 깼으니 우리도 원하는 바를 요구해야지요. 가장 현실적인 생각입니다. 어머니께서 협상해
보시는 게 어떤지요."
자매 중 동생이 한마디 덧붙인다.
"경비는 협상하더라도, 실시 여부는 개인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다만 협상용으로 최대한 많이
참가토록 하겠다,라고 하면서요."
자매 중 언니가 또 말을 이어갔다.
"사전에 옵션비용을 다 지불했기에
여윳돈을 안 가져왔다고 할 것이며, 제시한 60달러를 우리 돈 4~5만으로 협상해 볼게요."
언니가 가이드를 만나러 나갔다가 되돌아왔다.
가이드가
6만 원 이하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전한다. 분위기는 다시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다.
마침 그때 가이드가 발갛게 얼굴이 상기되어 들어오길래, 언니가
애교 섞인 말투로 공개적인 협상으로 마감을 고한다.
"가이드님은 6만원, 나는 5만원을 제시했으니, 마~ 이제, 5만5천원으로 결정하입시다~ㅎ"
모두 박수를 치고, 가이드는 계면쩍게
웃어넘긴다. 조금 있으니 가이드가 서비스한 맥주와 빼갈이 들어오고 즐거운 식사를 하며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패키지여행의
즐거움도 이러한 인간관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다양한 사회관계에서 존재하는 정치적 현상들이 우리의 흥미를 유발하는 게 아닐는지.
그리고 함께 온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며 느끼는 감정을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새로이 눈을 떠가는 배움의 연속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지인, 친구와의
여행과 또다른
패키지여행의 재미와 유익함을 꼽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팔리구 폭포는 기대 이상이었다. 천계산 계단을 오르내렸고, 만선산 터널의 질주, 왕망령, 팔천협 계곡을 걸었고, 통천협과 대협곡을
둘러보았다. 웅장하고 광활한 아름다움이었다.
우리의 추석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큰 명절인 춘절을 앞 둔 대목이라 이렇게 멋진 관광지가 고요하기
그지없어서 더욱 좋았다.
낮에는 산행으로
땀 흘리고 저녁마다 맥주와 빼갈로 피로를 씻어 내었다. 조선족 가이드는 키가 작아도 통이 크고 위트 있고 이야기가 통했다.
가이드로서 치명적인 실수도 있었다.
많지도 않은 23명 인원 파악을 잘못해 제주 부부만 호텔 앞에 두고서 모두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팔천협에 와 버렸던 것이다. 그때사 이 부부의 전화를 받고 지인의 자가용을 호텔에 보내 해결하였지만~
(아침 호텔에서 나오니 버스와 사람들은 오간데 없고 가이드는 1시간 동안 전화도
안 받는 그 순간에, 이 부부는 얼마나 외롭고 막막했을까~ㅎ)
우리는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때가 있다', '대범하여 최고의 가이드가 될 소질이 있다' 며 격려도 했지만 참으로 많이 웃었던 시간이었다.
울산에서 온 언니는 탁월한 협상가였다.
옵션 합의 후에도 '오늘 빼갈은 냄새가 난다. 어제
빨간 병 보다 못하더라', '우리는 없었던 옵션비 내느라 돈이 없다, 망고 맛 좀 보여달라', '마사지를 4만원에 해달라' 며 모두를 웃겨가며 유쾌한 압박을 계속했다.
즐거운 날은 금방 지나갔다.
울산 언니는 가이드와 협상토록
지지해 준 내게 고맙다고 전하기에, 나도 어머니 덕분에 많이 웃고 즐거웠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해운대서 온 부부는 저녁마다 빼갈, 맥주와 망고를 사 준 가이드에게 돈을 모아 팁을 조금 줘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다수의 의견은 자연스러운 이별을 택했다.
대구에서 온 남편은 카톡을 만들어 연락을 취하겠다며, 나와 남지에서 온 남편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대구 남편은 나보다
네 살 연상임에도 더 강인하고 주량도 많았다. 나와 동갑인 남지 남편은 늘 부인 10m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르며 셔터를 눌러 준 애처가였고~)
개성이 뚜렷한 동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오래도록 아내와 함께 미소 머금을 여행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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