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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혜 Feb 26. 2023

윤가은 영화가 제시하는 성장하는 현실 속의 소녀들

<우리들>(2016), <우리집>(2019) 영화 비평


※ 읽기 전 일러두기

-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를 원하지 않으신 분들은 살포시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당장' 감상하기를 권해드립니다.

- 2019년에 작성한 글로, 지금 견해와 크게 충돌되지 않아 업로드합니다.

- 최근 동화, 동시 업로드를 못하고 있는 죄책감에 올리는 글이... 맞습니다.

- 영화 비평이 아닌, 쓸데없이 긴 팬레터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윤가은 영화 <우리들>(2016), <우리집>(2019) 포스터


  <우리들>과 <우리집>. 얼핏 들으면 같은 영화인가 싶은 두 작품은 꾸준히 아이들의 세계를 담아내고 있는 윤가은 감독의 장편영화이다. 팬들은 두 영화 사이의 공통된 세계관을 ‘윤가은 유니버스’라고 이름 붙이며 윤가은 영화세계의 확장을 반기고 있다. 

  

  두 영화는 모두 소녀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우리들>은 친구관계, <우리집>은 가족관계에 무게를 두고 아이들의 성장통을 그려낸다. 이 영화들에서 눈여겨볼 점은 단순히 아이들이 등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내려가 그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일상을 포착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대중문화에서 ‘소녀’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생각해 보면 윤가은 감독의 따뜻하고 정확한 통찰은 더없이 반갑게 느껴진다.              


사진 순서대로 <우리들> 첫 장면 <우리집> 첫 장면

  

  두 작품은 첫 시퀀스에서부터 누구에게 집중할 것인지 명징하게 드러낸다. <우리들>에서는 학교에서 피구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때 카메라는 선(최수인)의 표정만을 비춘다. 어떤 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밀려나는 선의 상황은 소리를 통해 충분히 전달된다. <우리집>의 첫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싸우는 사이에서 흔들리는 하나(김나연)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철저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관객들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장면을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했다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대사는 대부분 가공된 것이 아닌 날 것이다. 상황을 던져주고 장면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해 내며 찍은 이 작품은 가짜가 아닌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결과물인 것이다.

  

  이처럼 시선을 낮춰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는 이 날 것의 작품은 소녀들의 ‘일상’ 그 자체이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소녀의 이미지는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어 왔다. ‘국민 첫사랑’, ‘국민 여동생’, ‘청순가련’과 같은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 혹은 ‘롤리타’와 같이 노골적인 성적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그곳에 현실의 소녀는 없다. 기득권 남성권력이 만들어놓은 판타지를 덧입혀놓은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망은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욕망일 뿐이며, 때문에 그들에게 주체성이란 없었다. 윤가은 감독은 소녀의 고통과 성장을 진정으로 들여다보며 그들에게 진짜 주체성을 불어넣고 있다. 


  판타지 속 소녀들은 순수하거나 타락했다. 그러나 현실의 소녀들은 순수하지만도 않으며 그렇다고 타락한 천사들도 아니다. 지독한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 주체일 뿐이다. <우리들>에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의 비밀을 발설한다. 지아(설혜인)는 선의 아빠가 알코올중독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선은 지아의 엄마가 사실은 영국에 없다는 것과 이전 학교에서 지아 역시 왕따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 사이에서 관계를 주도하는 인물 보라(이서연)는 선과 지아를 적절히 이용하고 따돌린다. 이 모든 행동들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외롭고 싶지 않은 소녀들의 힘겨루기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마냥 순수하고 착한 존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의 정치세계와 닮아있기도 하다. 


  <우리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나는 가정을 다시 접합시키기 위해 가족여행을 소망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집안일을 하거나 아빠의 내연 사실을 숨기는가 하면 오빠의 연애를 들추어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유미(김시아)와 유진(주예림) 자매의 집도 지켜 내리라 마음먹는데, 유미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나쁜 인상을 심어주어 집이 팔리지 못하게 막아내고, 유미의 부모를 찾으러 다 함께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집>의 아이들 역시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이 작품들에서 소녀들의 욕망은 남성의 욕망을 경유하지 않고 있거나 사회에서 부과한 욕망이더라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깨부수며 나아간다. 그간 여성의 욕망은 남성을 매개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통해 이야기한 성장은 오로지 남성의 것이었고, 그 이론에는 여성의 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주체가 될 수 있지만, 여성은 이미 거세된 존재로 계속 결핍된 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녀들은 성숙한 존재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인가. 윤가은의 영화에서 아이들은 분명한 성장을 이뤄내며 그 질문에 완벽한 펀치를 날린다. <우리들>은 그들만의 긴밀하고 단단한 유대를 통해, <우리집>은 기존질서를 깨부수는 방식으로 그들의 주체성을 발견해내고 있다.        


<우리들>의 장면. 선이 지아에게 팔찌를 주는 장면과 봉숭아 물들이는 장면


  친구관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우리들>에서 소녀들은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겪으며 성장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타인을 좋아하게 됐을 때, 그 관계가 틀어지면서 오는 감정의 상흔”**을 경험하며 소녀들은 거울단계를 지나 상징계로 들어서게 된다. 같은 팔찌를 차고, 같이 봉숭아물을 들이지만 그럼에도 어긋나게 되는 지점을 발견하면서 타인을 인식하고 비로소 자아를 인지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밀어내고 상처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선이 지아를 옹호하는 장면을 통해 한 뼘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선과 지아의 욕망과 성장은 남성의 욕망을 경유하지 않은 본연의 것이다.           


<우리들>의 마지막 장면
<우리집>의 한 장면. 하나가 계란 요리를 하다가 계란이 깨지는 장면


<우리집>의 장면. 종이집을 만드는 장면과 종이집을 부수는 장면

                

  <우리집>으로 가면 감독은 좀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다룬다. 아이들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판타지에 자신들을 끼워 맞추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것은 ‘판타지’ 일뿐이므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영화 내내 계란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리를 만드는 하나의 방학숙제의 음식들도 대부분 계란을 이용한 것이며, 종이집을 만들 때 지붕을 이루는 것 역시 계란판이다. 금방이라도 깨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환상’ 임을 이미지로써 알려준다. 결국 아이들은 가족여행의 환상을 품은 장소이자 유미네 부모가 있는 장소인 바다에서 자신들이 만든 종이집을 스스로 부숴버린다. 또한 영화 초반, 유미네 가족이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유미는 많은 시간 부모와 떨어져 지내기 때문에 영화가 진행되면서 앞선 유미네 가족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를 통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환상성이 더욱 부각되어 나타난다.         


<우리집>의 한 장면. 유미, 유진 가족의 여행 장면


  아이들은 여행을 통해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살면 그것이 ‘가족’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나, 유미, 유진은 초라한 텐트 안에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찾고 그들만의 ‘우리집’을 구축한다. 기존질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에 상처받고 눈물 흘리지만 마침내는 아이들 스스로의 기준을 찾아낸다. 이는 <우리들>에서 상징계로 넘어왔던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실재계를 꿈꾸는 성장까지 이뤄낸 것이다. 

  

  그동안 소녀의 대한 환상성은 그들을 세계 밖으로 내쫓고 있었지만 윤가은 감독은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소녀들을 다시 현실세계로 돌려놓았다. 그 소녀들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주체로서의 아이가 삶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소설은 많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종종 대상화”***되는 것에 회의감이 들어 아이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작품은 아이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놓고 있다. 


  감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해답 역시 아이들에게서 찾아낸다. 두 작품에는 모두 현자(賢者)가 등장한다. <우리들>에서는 선의 동생 윤(강민준)이, <우리집>에서는 유미의 동생 유진이 그 역할을 맡았다. 윤은 계속 싸우기만 하면 “그럼 언제 놀아?”라고 반문하면서 선에게 해답을 제공해 주고, 유진은 바닷소리를 제일 먼저 듣고 하나와 유미의 싸움을 멈추게 한다. 윤과 유진은 가장 어린 존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방식으로 그 누구보다 현명하게 시선을 환기시킨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소녀들 이야기는 멈추고 싶지 않다. 10대든 20대든 소녀들, 아가씨들,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이 자기 삶에서 주체가 되고 용기를 얻는, ‘괜찮아, 살아볼 만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포부가 감사하다. 앞으로도 소녀들의 눈으로 세상의 진실을 직면할 감독의 차기작을 응원한다.



*박주연, “[인터뷰] 천연의 아이들을 관찰하는 재미 <우리집> 윤가은 감독”, 스타포커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3800369&memberNo=40748030&vType=VERTICAL 참고.


**이주현, “[스페셜] 발견! 소녀들의 세계 그린 윤가은 감독의 데뷔작 <우리들>”, 씨네21, 2016.06.16,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4422 참고. 


***전혜원, “모든 장면이 우리의 이야기, [우리들] 윤가은 감독”, 시사in, 2016.07.14.,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451 참고.


****위와 같은 기사.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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