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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혜 Sep 23. 2023

(  )가 되는 꿈

그림책 큐레이션


  좋은 기회로 9월 9일 토요일 수원시 일월 도서관에서 열린 그림책 공연에 큐레이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FROM310 밴드가 주관한 <가족이 함께 보는 그림책 콘서트>는 그림책을 보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자리였다. 사실 그래서 음악에 관련된 책 몇 권을 필수로 포함시켜야 했는데, 모두 좋은 작품이긴 했으나 어떻게 하나의 주제로 묶을지가 난관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총 10권의 책을 선정했다.



  

  


  큐레이션을 할 때 내가 신경 썼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작품성은 기본이니 제외하고)

  1) 주제의 흐름 2) 출판사의 다양성 3) 그림체의 다양성




  내 큐레이션에는 스토리가 있어 순서대로 소개하겠다.(물론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첫 번째는 프랭크 태슐린의 <곰이라고요, 곰!>과 <네모의 꿈>이다.


  


  처음은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스스로를 인지하고,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는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책들로 먼저 포문을 열어보았다.

  먼저 <곰이라고요, 곰!>은 요르크 슈타이너와 요르크 뮐러의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의 원작이다. 사실 비룡소에서 나온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가 먼저 번역이 되어 들어오기도 했고, 유명해서 처음 <곰이라고요, 곰!>을 읽었을 때 나는 당연히 이게 리메이크작일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 반대였는데!

  아무튼 이 책에서 사람들은 주인공 곰을 "수염도 깎지 않고 더러운 털옷을 입은 멍청이"라고 부르며 곰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한 곰은 자신이 진짜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네모의 꿈>은 공연과 관련된 책 중 하나였는데, 너무 유명한 노래라 패스... 는 아니고, 외계인 '네모'가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었다는 SF적인(?) 이야기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신선했다. 그 말을 들으니 네모에게 더 정이 가는 느낌?

  추가로 <네모의 꿈>과 함께 보기를 추천하는 글이 있는데, 오스카 작가가 쓴 <네모바지 스폰지밥>에 대한 비평이다. 이 글을 읽은 후, 노래를 들으면 <네모바지 스폰지밥>이 떠오르게 되었다는 tmi...


  [비평 링크는 여기 -> <네모바지 스폰지밥>, 광기의 이면 (brunch.co.kr)]

  

  이렇게 자신은 네모이고, 세상도 전부 네모난 것들로 가득한데, 주변 어른들은 모두 세상을 둥글게 살라고 말을 하는 <네모의 꿈>과 자꾸 게으르고 더러운 노동자 취급을 받는 <곰이라고요, 곰!>, 이 두 권의 책을 가장 앞에 둔 것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진짜 지금 꾸고 있는 것이 내 것이 맞는지, 남들이 꾸라고 해서 꿨던 꿈은 아닌지,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내 모습,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환기해보았으면 하는 이유였다.




  다음 책은 루시드 폴 노래를 그림책으로 만든 <문수의 비밀>이다. 이 책 역시 공연 음악과 관련되어 선정된 책으로 솔직히 좀... 애매했다. 작품은 너무 좋지만, 그와 별개로 어떻게 '꿈'이라는 주제에 녹일지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책이었다.


  강아지 '문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사랑스럽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이야기이다. 혼자 책도 보고, 이메일도 쓰고, 티비도 보는 강아지와 그것을 전혀 모르는 주인. 나는 이 이야기를 정말 사랑하는 사이에도 온전히 서로를 알 수는 없다고 해석하며 다음 책과 연결 지었는데, 바로 그림책 <꼬마 거미 당당이>이다.




  유명금 작가의 <꼬마 거미 당당이>는 자신의 집을 짓는 시기가 된 거미 당당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당이는 아직 조금 어설프고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하려고 하는 자립심이 강한 아이이다. 그런데 온 가족이 나서서 당당이의 집을 대신 지어주려는 것이 아닌가.


  <문수의 비밀>에서는 서로 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줬다면, <꼬마 거미 당당이>에서는 혼자 해결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간섭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후 선정한 책들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해보았다.




  당당이의 가족들에게 권해주고 싶어 선택한 이주미 작가의 <네가 크면 말이야>는 아쉽게도 현재 절판 상태이다.(좋은 책이 절판되고 있는 속상한 현실...ㅠㅠ)

  <네가 크면 말이야>의 화자는 아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믿어주고 있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관점에서 상상을 하고 있는데, 그보다 좋았던 것은 상상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주로 꿈을 물어보면 명사로 답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명사 안에서도 직업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명사로 꿈을 꾸면 결국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 명사는 단정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고 나면 다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사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다음이 존재한다. 직업은 꿈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며, 설령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꿈에 다가설 수 있기에 '동사'로 꿈을 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네가 크면 말이야>는 그림 기법도 신선하고 훌륭하지만, 절판됐음에도 목록 안에 넣고 싶었던 것은 '동사'로 꿈을 꾸는 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책을 기점으로 꿈을 응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고 있는 책들을 소개하겠다.

    


  김주경 작가의 <다시 그려도 괜찮아>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다정한 그림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다정하다는 이유만으로 고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경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아동 인권, 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혼란을 겪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도 늘 문학과 교육의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경계하는데, 이 책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다시 그려도 괜찮아>에서 주인공 아이는 처음에 누군가 그려놓은 선 위를 걷는다. 그 선 위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나중에는 그 선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때 작가는 언제든 자기만의 선을 새롭게 그려도 좋다고 말해준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에게 알아서 자신의 선을 그려보라고 할 수는 없다. 먼저 경험한 어른들이 기준을 알려주고,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점점 자아가 생기고 자신만의 색이 생긴 아이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 그림책처럼 스스로 기준을 잡을 때가 되면 아이가 스스로 자신만의 선을 그릴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스스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면,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본격적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작은 눈덩이의 꿈>은 둥글고 커다란 눈덩이처럼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작은 눈덩이'의 이야기이다. 작은 눈덩이는 어디가 목표지점인지 알지 못하면서 꿋꿋이 나아간다. 그 길에 만난 이들은 꿈을 응원해 주는 친구도 있지만 대개는 친절하지 않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던지거나 꿈에 초를 치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눈덩이는 주변 다른 이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계속해서 굴러간다.


  나는 사실 '작은 눈덩이'와 비슷해서 우직하게 한 길만 팠지만, 이 이야기 하나만 있으면 독자들이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그림책도 함께 보여 주고 싶었다.



  <두 갈래 길>은 우리가 언제 어떻게 어떤 길을 만날지 모른다는 것을 담백한 그림으로 잘 전해주고 있는 그림책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그렇게 포용적인 사회는 되지 못해서 꿈을 정확하게 정하지 못하거나,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한참 후에 길을 틀어 다른 목표를 세우면 한심해하거나 안쓰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꿈은, 우리의 삶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작은 눈덩이'의 꿈을 방해한 인물들이 한 말들처럼 영양가 없는 조언에 휘둘리느라 경로를 바꾼 게 아니라면 그런 선택도 응원해 줄 수 있지 않을까?(당연히 피해를 주지 않는 합법적인 선에서)



  그러니까, 나는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그림책 <삶의 모든 색>. 말 그대로 삶의 흐름을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부 사정으로 아쉽게도 현장에서는 빠졌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이미 유명하지만 더 유명해졌으면...)

 


  그런데 왜 주제도서는 <물이 되는 꿈>이냐. 그냥... 편안하라고?

  '꿈'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어느새 '노력해서 무조건 이뤄내야만 하는 숙제' 같은 것이 되어 버려서 단어를 듣기만 해도 속이 뜨겁고 답답한 느낌이었다. 명사로 꾸는 꿈만 꿈이고, 그걸 이루지 못하면 실패자, 낙오자가 되는 현실이 너무 속상했다.

  때문에 치열한 경쟁 속의 꿈이 아니라, 평화롭고 잔잔한 꿈도 꾸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물이 되는 꿈>을 주제도서로 내세우고 싶었다.



  그러니까 (  )가 되는 꿈에서 (  )는 비워두도록 하자. 언제든 새로운 단어가 채워질 수 있도록.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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