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낼 때마다 매우 재밌게 보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 이번에 일본 편이 나왔다고 해서 봤는데 같은 아시아권이라서 그런지 나는 다른 국가 버전들보다 훨씬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블라인드 러브를 보고 느낀 감상을 슬쩍 적어보고자 한다.
정말 사랑에 눈이 멀까요?
블라인드 러브는 포트라는 곳 안에서 두 남녀가 서로 얼굴은 못 본 채로 오로지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면 그때서야 마주할 수 있는 연애 실험이다. 그 후에 3주 동안 함께 동거를 하며 포트가 아닌 현실에서 서로를 느끼게 되는데이 과정에서 얼굴도 안 보고 결혼을 약속한 처음 그대로의 감정으로 결혼을 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포기할 것인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는 참가자들이 포트 안에서 이상적인 사랑을 맹세할 때와 서로를 마주한 뒤 현실적인 사고로 흘러가며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인데 이 변화가 씁쓸하면서도 매우 이해 가기 때문에 몰입해서 볼 수 있다.
#01.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진심 또는 착각
참가자들에게 왜 이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연애할 때의 중요한 디폴트가 '겉모습'이었고 거기서 오는 공허함과 진실성에 지쳐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아닌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참가하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포트 안에서 서로 얼굴은 모른채 오로지 대화만으로 상대를 사랑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이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이 말들에 매우 공감했다. 항상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판단당하고 하는 것들이 질렸기 때문에, 나도 포트에서 얼굴을 몰라도 상대와 나의 가치관이나 사상이 잘 맞으면 사랑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이 전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포트에서 나오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할 때뿐이다. 왜냐하면 결국엔 두 눈을 시퍼렇게 뜬 현실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말 사랑에 빠질까?
#02. 누구세요?
포트 안에서는 상대방의 외모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목소리에 담긴 가치관들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지만, 보이는 순간부터 집중력은 분산된다. 서로의 내면만 보고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이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순간 반갑게 서로를 끌어안으며 환호하지만 그건 찰나일 뿐이고 인터뷰에선 '...음...누구세요?' 하는 표정들이 역력해진다. 몇몇은 기대보다 상대방의 외모가 출중하다며 만족하지만, 대부분 포트 안에서 본인이 상상한 상대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매칭이 안되어 당황해한다. 마치 상대의 외면을 멋대로 상상했다가실망해 버린 것처럼.
실망의 검을 뺀 것 같은 느낌
이 단계에서 서로의 외모가 맘에 들어도 맘에 들지 않아도 이미 눈이 멀었던 사랑은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시각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 반복된다. 포트 안에서는 분명 서로의 내면에 반해 나이차가 얼마나 나건 서로가 어떤 스타일을 하고 있건 전혀 상관없다고 했지만, 막상 서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포트 안에서는 눈이 멀었던 무언가가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03. 그(그녀)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현실적인 연애를 다룬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He's Just Not That into You> 라는 영화가 있다. 여러 상황의 커플들이 나오지만 공통점은 여자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
제삼자 입장에서 볼 때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갖고 노는 쓰레기 일뿐이라 영화에 나오는 그녀들의 주변 친구들도 이 사실을 말하지만 주인공들은 "아니야, 그는 나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이런 거뿐이야." 하고 넘길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그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블라인드 러브에서도 포트 안에선 '사랑'했다고 '착각'했던 참가자들이 삐그덕 대기 시작하고 끝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하나 둘 결혼을 포기해 버린다. 벽을 넘지 못한 이유도 참가자들마다 여러 가지인데, 포트 안에서는 시원시원하다 매력을 느꼈던 직설적인 말투가 현실에서는 본인을 찌르는 비수로 느껴진다던거나 포트에서는 정말 상관없었던 나이차가 막상 보니 너무 체감되어 미래를 함께 그려가기가 꺼려진다던가...
정말 서로에게 눈이 멀었을까?
이 좁히지 못하는 서로의 간극이 지극히 인간적이라 참가자들 마음이 다 공감이 갔다. 그들이 분명 포트 안에서 느꼈던 마음에 진심이 있었겠지만 그 진심만으로 삶을 살아가기엔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그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겪으면서'그(그녀)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또는 '나는 그(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다'를 깨달은 것이다.이상의 단편만을 쫓기엔 현실은 치열한 장편이므로
#04. 그래서 정말 사랑에 눈이 멀까요?
몇 커플들은 결혼식까지 가지만 결혼식이 끝날 때 까지도 결혼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포트에서의 기간까지 합쳐 겨우 4주 만에 결혼 결정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례사의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건가요? 아니면 영원히 남이 될 건가요?" 의 질문에 끝내 우물쭈물 맹세를 답하지 못하는 참가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 아니다.
영원히 사랑할 건가요? 아니면 영원히 남이 될 건가요.
내가 블라인드 러브를 보고 느낀 개인적인 생각은 오히려 지독히 현실적으로 시작해야 사랑에 눈이 멀기 쉬울 것 같다는 것. 분명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상대의 외모가 어느 순간 눈에 밟히기 시작하거나 이것저것 경제력을 재던 마음의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또는 완강히 생각해오던 내 가치관이 상대와 달라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나 그 사람의 허물과 단점을 돋보기로 봐도 보이지 않을 때 등 지독히 현실적인 생각들을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없을 때비로소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눈이 멀기 위해선 먼저 봐야 한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이 세상엔 분명 서로의 현실이 아닌 내면만으로 이어가는 눈먼 사랑들도 있을 것이다. ( 또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 한 번쯤 누구나 생각해봤던 이상과 현실의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우리는 정말 사랑에 눈이 멀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