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6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내가 생각하는 군대의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일’과 ‘휴식’의 분리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아무리 일이 힘들고 상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친구, 가족들과 함께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며 어느 정도의 치유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군대는 생활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과 중 만났던 선임, 후임들과 얼굴을 맞대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는데 옆집에 사는 직장 상사를 편의점 가는 길에 자꾸 마주친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주칠 때마다 이어지는 사람 간의 대화는 자연스레 일로 연결되고 일과 휴식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대부분의 군부대에서 ‘동기생활관’이라는 제도를 운영하여 비슷한 기수의 장병들끼리 같은 방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병장, 상병, 일병이 고루 섞여 있는 수직적인 방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방문을 열면 수많은 선후임들의 얼굴이 비치지만 방문 뒤로는 우리만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만의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넘어야 하는 벽이 하나 있다.
생활관 건물의 방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이 부대로 전입 온 신병들만을 위한 빈 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방을 떠나야 빈자리가 생기고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 이때, 방을 비우는 과정과 채워지는 과정 간에 겹치는 기간이 있다. 즉, 가장 전역과 가까운 최고참 병사들이 하나둘 전역하고 있는 방에 새롭게 들어온 신병이 들어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간을 잘 버텨내는 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다.
우리의 경우, 해당 기간 중 2명의 선임과 함께 살아야 했다. 그중 1명은 우리가 생활관에 들어서고 3일 정도 후에 전역을 알리는 구타식을 거행했고 다른 하나는 끈질기도록 짐을 빼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휴가 사용이 원활하지 않았던 만큼 휴가를 오래도록 나가지 못한 장병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복귀 휴가, 즉 조기 전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많이도 휴가를 나갔나 보다. 동기들이 다 집으로 돌아갔는데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다행히도 이 선임은 매사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 우리의 생활을 대놓고 제한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의 존재는 게임 속 몬스터보다는 토템 같아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데미지를 주지는 않았으나 꾸준히 디버프를 걸곤 했다. 전화를 할 때 밖으로 나가거나 TV 소리를 키우지 않는 등 우리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전화에 관한 부분은 반박 의견이 있을 듯한데 그를 제외한 우리 방 사람들은 방 안에서 전화하는 것에 있어 모두 동의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의 비인가 태블릿이 당직사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FM이라고 소문난 당직사관이 들어오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 위에 태블릿을 버젓이 눕혀 놓고 나갔으니 그도 아마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 본인 잘못이라 화낼 곳이 없으니 그냥 입만 꾹 닫고 쒸익쒸익 대는 것이다.
“야~ 그래도 네가 왕고(왕선임)라고 너희 방 분위기 싸해진 거 봐라!”
- 옆 방에 살고 있는 그의 동기
그렇다. 잘못도 없는 우리는 토템 선임이 내뿜는 강력한 디버프를 정통으로 맞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조용히 잠에 들며 생각했다.
‘아.. 빨리 좀 전역했으면 좋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때론 웃고 때론 눈치 보며 보내던 날의 끝. 열심히 달리던 그의 국방부 시계가 멈추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 밤, 여느 선임들과 같이 그의 전역을 반기는 이들이 우리 방으로 찾아왔고 불이 꺼지고 울린 파찰음은 그가 군생활 동안 쌓은 업보의 양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우리 방의 빈자리가 하나 늘었다. 그는 야속하게도 모든 짐을 자리에 두고 갔기에 우리가 그것을 분류해서 폐기해야 했으나 아무튼 그는 나갔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약 한 달의 시간을 버텨내고 드디어.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편히 나누고 고민, 걱정을 풀어낼 수 있는, 우리의 삶에서 거친 일과를 잠시 덜어내고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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