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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Jan 06. 2023

무의식의 힘

새해 들어 처음으로 햇살이 밝은 날이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23일에 영하 21도까지 떨어져 연말까지 혹독하게 춥더니 새해 들어서는 내내 비가 내렸다. 기온도 영상 18도까지 올라가는 봄 같은 날씨였다. 식물도 이 계절이 헷갈리는지 3~4월에 나와야할 새싹이 벌써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1, 2월이 남아있는데 이 예쁜 놈들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동사할까봐 반가움 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오늘 아침 화단에 핀 새싹을 보았다. 이 놈들 너무 일찍 나왔다. 어쩐다!




요즘 새해라 그런지 온라인에 새해 계획을 올리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새해가 되어도 새해라는 감흥이 별로 없다. 매일 해야할 일 조차 내일로 미루며 게으름 피우는 날이 많다보니 그날 그날 해야할 일이나 잘 하며 살자고 결심했다.


한때 별명이 "독일 병정"이었을 정도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듯 살았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며 점차 즉흥적으로 변한다. 점차 나의 이성이 내리는 지시는 행동력이 약해지고, 무의식이 보내는 순간 순간의 지시가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 나의 결정이 이성적 결정이라 생각했지만 지나놓고 보면 나의 무의식이 내린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한다.


나는 무의식의 힘을 믿는다. 어느 날 기분이 평소와 다르다 싶은 날은 특별한 일이 생긴다. 혹시 우리에게 어떤 예지력이 있어서 무의식이 나에게 미리 사인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지금은 기분이 좀 이상하다 싶은 날은 유심히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렇게 미리 마음을 가다듬고 대비하고 있다보면 올 것이 오지만 큰 무리없이 지나간다.


근래들어 무의식의 도움을 받은 일이 또 있다. 요즘 기존에 쓴 미술 관련 글들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던 당시에 참고했던 책들을 일일이 다 찾아볼 수도 없고, 내가 공부하며 터득한 통섭적 지식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오래 전이라 잊고 있었다. 그의 책을 읽는 도중에 내 생각이 올바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발견이 좋아서 글 수정은 미뤄두고 며칠 간 존 버거의 다른 책들도 몇 권 더 읽으며 내 생각을 다듬었다. 내가 무언가 필요할 때 나를 안내해 준 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무의식이었다.


나는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귀를 닫고 사는 것은 아니다. 들려오는 소식만 들어도 어떤 느낌이 있다. 내 유전자 안에는 인류의 총체적 경험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무의식에서 오는 감이 아닐까 한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도 주장하고 있지만 인류에게 문화사적으로 큰 변화가 생길 것만 같다. 변화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올 것은 오고야 말 것이다.


요즘 한국의 정세를 보고 있어도, 미국과 세계의 정세를 보고 있어도 인류가 가고 있는 길이 위태 위태해 보인다. 동물의 영역까지 침입해 들어간 인류에게 닥친 코로나, 그 코로나 중에도 자기 나라만 잘 살아보겠다고 일으킨 전쟁, 협업보다는 자국 위주의 이기적 외교정책들을 펴고 있는 세계 강국들을 보고 있으면 인류는 3년간의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하나도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기후 위기는 어떻게 풀 것인가? 극단까지 가고 나서야 되돌아 설 것인가? 기본부터 바뀌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인류가 생존하려면 현재 기초하고 있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럴 때 정치가도 아니고 기업가도 아닌 평범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바깥을 살피되 바깥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 내면을 수양하는데 시간을 쓰려고 한다. 원래도 시류에 휘둘리며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여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나를 탓하며 살았지만, 한참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점차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내가 했던 생각을 머리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마음에서 무의식으로까지 끌어내려 완전히 체화하려 한다. 또 무의식에서 어른거리는 지혜의 단편을 끌어올려 온전한 형태로 빚어보려 한다.무의식이야 말로 힘과 지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햇살이 든 밝은 날,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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