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미술에 미친 아시아 미술의 영향
내가 사는 오하이오주의 북동부 지역은 지난 며칠간 대기질이 좋지 않았다. 캐나다 산불이 장기화 되면서 날씨앱에 대기질을 알려주는 목록이 하나 더 생겼다. 아니면 그동안 있었는데도 내가 알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기온 뿐 아니라 대기질도 확인해 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지난 며칠간은 "건강에 매우 유해하니 가급적 집에 머물라"는 고지가 계속되어서 아침 운동을 며칠 간 걸렀다. 다행히 어제 부터는 대기질이 돌아와서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어제 저녁 미국 여성들에게 미국 미술사를 강의하였다. 나와 같이 토요여성클럽 멤버인 로럴이 자택에서 예술 관련 여성들 몇 분을 초대할테니 스피치를 해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던 터이다. 로럴은 화가라서 토요 모임에서 만나면 자주 미술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내가 다음에 낼 책의 주제에 대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다음 책의 주제가 무엇이냐 묻길래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본 미국 현대미술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했더니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왜 안그럴까.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종주국이 된 미국의 미술을 아시아인이 비평을 하다니! 나라도 궁금하겠다. 로럴은 내내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했다. 마침 자기가 관계맺고 있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아트그룹이 있는데 그들도 초대해서 소략하게 자리를 만들어볼테니 내 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던 참이다.
사실 한국인인 내가 미국사람들에게 미국 미술사를 강의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것도 단순한 강의가 아니라 미국 미술을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너네가 아시아에서 이런 부분을 영향을 받은거야' 하며 자칫 그들의 자부심을 꺾는 발언을 할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나타난 현대미술은 아시아 미술의 영향관계를 모르고는 해독이 안되는 분야라서 아시아인의 눈으로 본 미국 추상미술, 특히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한번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강의의 서두를 꺼냈다. 나는 미국의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 대단히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미국 현대미술의 논리전개가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이 나왔는지, 왜 갑자기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의 색면추상이 나왔는지, 좀체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국 학자들과 비평가들이 쓴 미국 미술사를 읽어봐도 무언가 언변은 화려한데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는 것 같았다. 왜 잭슨 폴락은 갑자기 액션 페인팅을 했으며, 왜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은 색면 추상을 창안했는지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미국 미술사가 이해가 안되던 이유가 무엇인지 미술사를 공부하고 나서도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2009년의 한 전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미국의 현대미술이 아시아 미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전시가 열렸던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장 미국적인 미술로 알고 있었던 액션 페인팅과 색면 추상 등 미국의 현대미술이 아시아미술의 영향이었다고? 이미 19세기 부터 유럽은 아시아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고, 20세기 초의 미국 예술가들도 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미국적인 미술이라는 잭슨 폴락을 비롯한 현대 미술가들도 아시아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니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미술이 줄줄이 해독이 되었다.
당시 구겐하임에서 열렸던 전시 도록 ⟪The Third Mind : American Artists Contemplate Asia, 1860–1989⟫ 을 보고 나는 정말로 놀랐다. 당시는 아직 내가 한국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미국에 이 책을 주문하여 받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페인팅 분야 뿐 아니라 조각 분야도 예외 없이 아시아 영향이 대단했다. 이 도록안에 잭슨 폴락이 화선지에 수채화 물감으로 물감을 떨어뜨리며 연습했던 작품 하나가 실려 있다. 이미 그 안에 폴락의 액션 페인팅의 전조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국은 계획적으로 은폐해 왔던 것이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유럽이 폐허가 되는 동안 미국은 오히려 강대해지고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예술 분야에서는 유럽에 비해 여전히 후진국이었다. 그들의 욕망은 예술에서도 세계 최강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가 주도하에 CIA가 가장 미국적인 예술가들을 비밀리에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처음 띈 사람이 바로 잭슨 폴락이었다. 그의 미술은 서양 미술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예술제작 과정과 결과물이었다. 이젤에 캔버스를 세워놓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거대한 캔버스 천을 깔아놓고 그 위를 걸어다니거나 몸을 구부려 작업을 하고, 붓을 사선으로 들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세워서 그렸다. 물감을 듬뿍 찍으면 물감은 중력에 의해 자동으로 줄줄이 떨어진다. 몸이 움직인 괘적이 캔버스에 그대로 흔적으로 남는다. 그의 제작 과정은 동양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그대로 닮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바로 이런 폴락의 아시아적인 예술행위에 대해 미국은 철저히 은폐했던 것이다.
그러니 미술 연구가들이나 비평가들은 폴락의 예술 형식에 대해 대단히 새롭고 미국적이라며 호들갑스러운 평가를 쏟아냈지만 창작이라는 것이 영감의 원천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미국은 이렇게 발굴한 화가의 삶과 작품을 신화화하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펼쳤던 것이다. 예술가가 영향을 받은 원천이 무엇인지 은폐해 버렸으니 학자인들, 비평가인들 그의 예술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었을까. 내가 아무리 미국 미술사를 읽어도 왜 갑자기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예술 형식이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미국 여성들에게 들려주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모든 여성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네? CIA요?" 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모르셨어요?' 했더니 일제히 "몰랐어요."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샌디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하더니 "정말이네요" 라고 하며, 잠깐 이분들에게 읽어줘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검색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모두 일제히 놀라는 모습에 나는 오히려 더 놀랐다. 미국 사람들이 모르는구나! 미술사에 관심이 없으면 모를수도 있지만 1960년대 중반경 당시 대학생이던 샌디는 미술사 강의를 들었다 하고, 화가인 로럴도, 예술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여성 두 분도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침 내가 ⟪The Third Mind⟫를 로럴에게 빌려주어 그 책이 로럴 댁에 있었던 덕분에 여성들이 모두 그 책을 돌려보고 나서 내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모두 새로운 것을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서 내가 오히려 머쓱할 정도였다.
나는 미국미술에 끼친 아시아 미술의 영향을 설명하되 아시아 예술의 제작 과정과 형식에 영향을 받은 화가 그룹과 아시아 철학에 영향을 받은 화가 그룹의 두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잭슨 폴락과 헬렌 프란켄탈러와 같은 화가들은 동양화의 제작 방식에서 받은 영향을 중심으로 설명하였고,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에 대해서는 동양의 기철학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토록 추상에 집착했는지는 당대의 평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추상표현주의 다음에 일어난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는 그린버그와 잭슨 폴락, 마크 로스크, 바넷 뉴먼과 같은 추상주의를 알고 나면 당연한 귀결로 나온 것이고, 미니멀리즘으로 회화가 캔버스를 벗어나 실제 공간으로 들어간 다음 부터는 대지미술로 까지 확산되며 마침내 미술은 설치, 연극, 무용 등 폭넓은 장르를 수용하는 미술이 되었다. 그러나 캔버스를 벗어났던 회화는 다시 팝 아트로, 그리고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돌아왔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하며 강의를 마쳤다.
강의를 마치고 잠깐 대담의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 대단히 재미있었고 유익했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며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한 여성은 남편이 일본인인데, 시댁에 가면 집안 곳곳에 동양화가 걸려있는데 그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강의 중에 잠깐 동양화의 특징과 동양 철학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이제서야 시댁에 걸려있는 그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고 했다.
안그래도 엉성한 영어로 미국 사람들에게 미국 미술사를 강의하다니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의만 하면 말이 빨라지는 내 특성이 영어로 강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말로야 강의를 많이 했었지만 영어 강의는 처음해 본 셈인데 이래저래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