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
* 이 작품은 계명대 영문과 김종환 교수가 번역한 지만지드라마 판본으로 읽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후사가 없이 돌아가자 그녀를 마지막으로 튜더 왕조는 끝이 나고,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아들인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자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통치하는 국왕이 되면서 스튜어트 왕가의 문을 열었다. 그 시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앙숙처럼 서로 싸우다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까지 겸하게 되자 잉글랜드 내의 정치적 반발이 만만치 않게 벌어졌다. 이 작품은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돌아가고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된 다음 해에 공연된 작품이다.
김종환 교수의 해설을 보니 “⟪자에는 자로 (Measure for Measure)⟫는 1604년에 제임스 1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왕 극단’이 궁정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연극성’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는 군주의 모습을 재현한 정치극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연극성’이란 있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는 ‘가장’을 내포하는 개념인 동시에 있는 것을 과장하거나 미화해 드러내는 연극적 성질”을 의미하는데, 당시의 “잉글랜드 왕인 제임스 1세는 자신이 백성들의 응시 대상이란 점을 의식하면서 ‘연극성’을 군주의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작품 속 배경은 빈이지만 실제는 17세기 초반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1603년과 1604년 중반까지 런던에는 역병이 창궐하고 역모가 일어났으며 경기는 침체했다. 또 1603년 런던 외곽의 사창가를 모두 폐쇄하는 조치가 떨어진 시절이었다. 그래서 작품 속에도 유곽을 운영하는 포주와 그 포주의 심부름꾼 폼피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목 ⟪자에는 자로 (Measure for Measure)⟫의 의미
우선 제목 ⟪자에는 자로 (Measure for Measure)⟫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1막 2장에 보면 이 작품의 주요 인물 중 한사람인 클로디오가 하는 대사가 있다.
신처럼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분께서
우리 죄를 저울에 달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어.
“자비를 베풀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아니 베풀 자에게는 아니 베푼다”는
하느님 말씀은 언제나 공명정대하지.
“자비를 베풀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아니 베풀 자에게는 아니 베푼다”는 이 부분에 대한 주석을 읽어 보니 ⟪로마서⟫ 9장 15절에 나오는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기리라”는 부분을 반영한 대사라고 한다. “자에는 자로” 또는 “죄에는 죄로”라는 이 작품의 제목 또한 여기에 연유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줄거리
이 작품 안에는 빈 공국을 배경으로 무엇이 올바른 통치이며 권력자는 어떻게 비리를 저지르는지, 또 법의 공정한 적용과 남용, 또는 권력자의 자기 비호와 관련하여 여러 층위의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그 중 가장 큰 줄거리인 음란죄와 관련한 한 사건을 위주로 하여 적어 보겠다.
빈의 공작인 빈센티오는 폴란드를 여행하는 동안 그를 대신할 대리인으로 앤젤로를 지명한다. 앤젤로는 대단히 강직하고 법을 바르게 쓰는 사람으로 설령 그의 가족이 범행을 저지른다해도 법대로 처벌할 사람이다. 그만큼 통치와 법의 적용에 있어서 믿을만한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공작은 앤젤로를 지명한 후 급히 나라를 떠난다.
그러나 폴란드를 여행한다는 것은 공작이 은밀하게 계획한 일을 실행하기 위한 핑계였다. 공작은 오랫동안 공국을 잘 통치했지만 지나치게 너그럽게 통치하는 바람에 사회에는 방종과 해이, 법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갑자기 공작이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법 적용을 완고하게 하면 백성들에게 원성을 살 것이 뻔해 그가 잠적해 있는 동안 그것을 바로 잡아줄 앤젤로를 이용하여 나라의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카톨릭 수사로 변장하여 앤젤로의 통치를 숨어서 지켜보면서 동시에 공국 백성들의 민심과, 자기에 대한 공국민의 평가를 살핀다.
앤젤로는 공작의 기대대로 공국의 질서를 바로 세워 나간다. 유곽이 만연해 있던 그 시절, 앤젤로는 음란죄 처벌을 강화한다. 마침 관련한 사건이 터졌다. 클로이드라는 신사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애인을 임신시킨 것이다. 사실 클로이드와 애인 줄리엣은 결혼을 한 사이지만 공개적으로 공표를 하지 않아 이런 곤혹을 치르게 되었다. 앤젤로는 14년간 묵혀있던 음란죄와 관련한 법조항을 찾아내어 법 조항대로 완고하게 판결을 내린 후 그를 감옥에 가두고 곧 처형할 예정이다. 그러자 오빠를 구해내기 위해 여동생 이사벨라가 발벗고 나선다. 이사벨라는 수녀가 되려고 수녀원에 들어가 있지만 아직 수습수녀로 정식 수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오빠 소식을 듣고 그를 구하려 잠시 수녀원을 나와 구명활동을 시작한다.
앤젤로를 찾아가 오빠를 용서해달라, 법에도 인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호소하지만 꼬장꼬장한 앤젤로는 들어주지 않는다. 그런 옥신각신 끝에 그만 앤젤로가 영민한 이사벨라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흑심을 품는다. 이사벨라가 자기와 하룻밤을 보낸다면 오빠를 석방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설령 오빠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렇게 오빠를 살린들 오빠 역시 명예롭지 못한 목숨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도 죄를 저지르면 다른 사람과 똑같이 처벌할 것이고 설령 자기가 죄를 짓더라도 똑같이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누누히 말하며 음란죄를 처벌중이던 앤젤로가 똑같은 음란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어떤 마음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그의 권력을 이용하여 여인의 정조를 뺏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꼬장꼬장하던 잣대는 자기에 관한한 사라졌다. 수사로 변장하고 정세를 살피던 공작은 이 정황을 이미 알고 이사벨라에게 클로이드의 구제를 돕겠다고 암암리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마침내 공작은 이사벨라에게 하나의 해결책을 알려준다. 사실 앤젤로는 마리아나라는 약혼녀가 있다. 그런데 마리아나와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나의 오빠가 탄 배가 난파되어 오빠가 죽어버리자 지참금을 대 줄 사람이 사라졌다. 그러자 앤젤로는 그녀를 냉대하며 결혼을 미루고 있다. 그걸 알고 있던 공작은 앤젤로의 약혼녀인 마리아나를 이용하기로 한다. 앤젤로에게 하룻밤 동침하기로 한 날 실내를 어둡게 하고 한마디의 말도 없이 빨리 동침을 하고 이사벨라는 돌아가는 조건을 내건 다음 이사벨라 대신 마리아나를 들여보내 앤젤로와 동침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이사벨라도 몸을 지키고 마리아나의 결혼도 돕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마리아나도 이 제안에 찬성을 했다.
그 작전은 성공을 했다. 앤젤로는 자기가 동침한 여인이 이사벨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댓가로 그는 이사벨라의 오빠를 석방해 주어야 하지만 석방하기로 약속한 시간 보다 일찍 그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려 놓은 상태였다. 그의 올곧음은 사실 동정심이라고는 없는 비정함에서 나온 것이었고, 남의 사랑은 음란죄로 강력하게 다스리면서도 지참금을 가져올 수 없다고 약혼녀와의 결혼날짜을 연기하며 그녀를 냉대하면서 정작 그는 다른 여인의 몸을 탐하는 음란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공작이 돌아온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그리고 앤젤로와 원로 신하에게 자기가 도착하는 공국의 경계선까지 마중나오라고 명령한다. 공작은 그 공개된 장소에 이번 일과 관련한 사람들 모두를 소집해 놓은 상태이다. 앤젤로는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장소에 나가 돌아오는 공작을 환영한다.
공작은 그곳에서 앤젤로와 이사벨라, 마리아나를 모두 대질시킨 다음 앤젤로와 이사벨라와 관련한 사건을 추궁한다. 앞 뒤 정황을 모두 알고 있는 공작은 정작 이 사건을 모르는 척 앤젤로에게 그 스스로 이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라고 한다. 앤젤로는 처음에 이사벨라가 자기를 유혹했으며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고 그녀에게 죄를 덮어씌운다. 그러나 서서히 그의 만행은 드러나고 만다.
공작은 앤젤로의 처단을 판결한다. 그러나 그 전에 앤젤로에게 마리아나와 바로 결혼할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그를 죽이라고 명한다. 왜냐하면 결혼하지 않고 동침한 마리아나가 처녀의 몸으로 혼자 살아가면서 받을 괄시를 미연에 방지해 주기 위해 결혼을 시킨 다음 앤젤로를 죽이면 유부녀인 마리아나가 남편과 동침을 한 것이되니 명예에 흠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벨라도 마리아나도 공작에게 그를 용서해 주기를 간청하고 마침내 앤젤로는 공작으로 부터 마리아나를 위하면서 잘 살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죽은줄 알았던 이사벨라의 오빠도 앤젤로가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공작의 사전 조치로 죽지 않고 살아 있었고, 공작은 현명한 이사벨라에게 반했는지 그녀에게 청혼을 하는 것으로 극이 끝난다.
권력자의 변모
이 작품 안에는 정치와 정치인에 관련한 신랄한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공작이 하는 말 중에 권력을 가지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고 싶다는 대사가 나온다. 과연 강직하고 올곧은 앤젤로가 지존의 권력을 가지고도 그 바름을 유지할지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입으로 설령 자기도 죄를 지으면 법에서 명한 처벌을 똑같이 받을 것이라고 자주 말하던 그이지만 정말로 그럴 것인가?
그러나 강직하여 법대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줄 알았던 앤젤로는 사실 남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르고 문자 그대로 법을 실행하는 냉혈한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속성이 내면에 숨어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권력이 주어지자 그는 바로 그의 숨겨져 있던 어두운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었던 것이다. 권력이 쥐어지자 그는 무소불위로 행동하는 여느 권력자와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잣대가 달라진다. 흔히 하는 말로 “네가 하면 불륜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듯 같은 사안을 두고도 권력자의 잣대는 자기를 향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촘촘해진다. 앤젤로 역시 이 궤적을 벗어나지 못한 소인배였을 뿐이다.
공작의 행동은 정당한가
이 작품을 해설한 김종환 교수는 공작의 연극성에 대해 비판한다. 이 작품의 도입부에 공작이 잠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길래 나는 조선시대 왕들이 종종 민심을 살피기 위해 잠행하던 그런 류의 잠행을 떠올렸다. 그러나 공작의 잠행은 조선의 왕들의 잠행과는 성격이 달랐다. 조선의 왕들은 정말로 민생과 민심을 살피러 잠행을 나갔다. 그리고 자기의 정치가 바른지 그른지를 민생을 보고 살폈다.
그런데 공작은 자기가 해야할 일을 백성의 욕을 먹을까봐 하지 못하고 자기가 잠행간 동안 대리인 앤젤로가 공작의 일을 대리하며 사회의 분위기를 쇄신시켜 주기를 바란다. 공작 자신은 백성에게 좋은 말만 듣고 싶고, 나쁜 말은 앤젤로에게 돌아가게 하여 나라의 통치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리고는 숨어서 앤젤로의 통치를 지켜보며 그의 권력남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뒤에서 돕는다. 이래저래 공작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권력자로서의 권력을 쓰며 좋은 일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짠하고 나타나서 공개된 장소에서 최고의 판결자로서 앤젤로를 벌하고 이사벨라와 오빠를 구해준다. 그리고 수녀가 되려던 이사벨라에게 청혼한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과연 공작과 앤젤로의 차이가 무엇인가? 앤젤로도 처음에 이사벨라의 영리함에 매료되어 그녀를 품기 위해 점차 음험한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그런데 공작은 최고 권력자로서 비록 이사벨라에게 의향을 묻기는 하지만 수녀가 되려던 이사벨라에게 청혼을 함으로써 그녀가 수녀가 되려고 했던 계획을 무산시킨다. 만약 이사벨라가 수녀원으로 돌아가 수녀가 되겠다고 한다면 공작은 그러라고 보내줄까? 앤젤로도 처음에 이사벨라에게 품었던 것은 연정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드러내자 그녀는 거부했고, 앤젤로는 거부당하자 최고 권력자의 대리인이란 직위를 이용하여 그녀를 정복하려고 했다. 만약 이사벨라가 공작의 청혼도 거부한다면 공작은 앤젤로와 다르게 행동할까? 수사로 변장하여 이사벨라를 돕는 내내 이사벨라가 오빠를 구원하려고 잠시 수녀원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꿈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 아닌가.
난 이 작품이 아주 재미있었다. 정치와 권력의 생리에 대해서, 또 권력을 가지면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품 곳곳에 나오는 권력에 대한 통찰력이 깃든 대사들에 줄을 긋다보니 너무 많아서 책이 노란색으로 뒤덮일 지경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모습이나 지금까지 동서고금에서 벌어진 권력과 관련한 수많은 사건들이 이 작품 속의 정황과 다르지 않다. 이런 보편성을 담고 있어서 고전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살이는 수천년 전이나,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법은 최후의 수단
앤젤로는 사람이 권력을 쥐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만약 내가 죄를 짓는다면 나도 여느 죄인처럼 똑같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정작 권력을 쥐어보니 자기는 법앞의 예외자인양 욕망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 앤젤로를 공작이 잘 알고 있었기에 앤젤로에게 그 스스로 자기의 죄를 재판하도록 했다. 앤젤로는 자기가 이사벨라에 대해 저지른 음란죄에 대해 다른 죄인들과 똑같은 형벌을 받는다면 자기도 처형되어야 마땅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작이 “처형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때 항거를 못한다. 자기 입으로 해온 말이 있으니까. 권력자가 되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입장에 서자 그는 중심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많은 권력자들처럼 법 위에 군림하며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 했다. 그러나 결국 자기가 말했던 대로 지은 죄에 대해 똑같은 형벌을 받게 되고 만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제목이 참으로 절묘하다. 다행히 그는 피해 여성들 - 이사벨라와 마리아나 - 의 용서로 살아나게 되니, 사람에 대한 공감력이 없는 앤젤로가 끝까지 법의 집행을 고집하며 이사벨라의 오빠를 죽이려던 것과는 달랐다. 이 두 여성은 그를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며 공작에게 살려줄 것을 청했다. 이 여성들은 법 보다 먼저가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라는 것, 그리고 용서와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지 법이 사람 위에 군림할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결말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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