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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Apr 20. 2023

에버랜드에서 생긴 꿈

너의 꿈을 언제나 응원할게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대문자 J인 나와 남편에게는 몹시 파격적인 주말나들이었다. 갑자기 호랑이가 보고 싶다는 유진이의 말 한마디에, 무려 주말 에버랜드를 도전해 보기로 전날 밤 결정한 것이다. 연애 때 가보고는 감히 도전할 생각조차 못해본 주말의 에버랜드. 까짓 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정말로 호랑이만 보고 나오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한 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으로 에버랜드를 갔다.


결론적으로는 이번 눈치게임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꿀 같은 날씨에 사람들이 다른 야외로 많이 분산되었는지,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유진이의 목적이었던 동물들도 다 봤고 현진이가 목표로 한 놀이기구 세 개 타기도 초과달성했으니, 그만하면 주말 에버랜드 나들이는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길 잘했다고 느꼈던 것은 현진이 때문이었다. 현진이는 에버랜드를 걸어 다니는 내내 이곳은 누가 지었는지, 짓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저런 놀이기구는 어떻게 생각해 낸 것인지, 그간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오늘따라 수없이 쏟아냈다. 물론 대부분의 질문에 나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성심껏 나눈 대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현진이는 쉬지 않고 종알종알 떠들어댔다.


그리고 과학자에서 가수로 바뀌었던 꿈이 에버랜드에서 또 한 번 바뀌었다. 건축가. 멋진 건축가가 되어 에버랜드처럼 넓고 재밌고 신나는 곳을 만들어보고 싶단다. 건축가가 되려면 무얼 해야 하냐고 묻는 현진이에게 나름 열심히 대답을 해줬다.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해야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대충대충 하는 습관을 없애야 하고, 건물들을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상상해봐야 한다고 했다. 현진이는 당장 글씨를 대충 쓰습관부터 없애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설계도를 그리고 발명품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커다란 계획을 무려 '스스로' 세웠다.




내 아들이지만 이렇게 멋있을 수가. 단순히 무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을 넘어서, 그 꿈을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그에 맞는 계획까지 세운다는 게, 실천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언제 현진이처럼 구체적인 꿈을 상상하고 계획해 봤을까. 까마득하다.


따지고 보면 아직 인생의 반도 안 살았는데, 무언가를 해내고 이뤄보겠단 꿈을 꿔 본 지 오래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단 바람을 갖고 쓰기 시작한 일기마저 빨라진 현진이의 하교시간에 밀려 제대로 해나가지도 못하는 게 현실인데. 실을 도피처 삼아 다시 꿈을 세우고 계획을 세워 실천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소심하고도 실행력 부족한 내 모습이, 현진이를 보니 민망하까지 하다. 어떤 면에선 이미 현진이가 나보다 나은 것도 같지만, 그래도 현진이가 나보다는 훨씬 나은 어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오래오래 꿈꾸는 멋진 어른.


늘 바뀌지만, 그럴 때마다 체계적이고 확신에 찬 현진이의 모든 꿈을 응원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현진이처럼만 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진이의 꿈을 나는 언제나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꿈은 아니지만 실천해 봐야겠다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앞으로는 대문자 J의 습성을 조금만 버리고 무언가를 얻거나 배우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계획하는 나들이는 조금 줄여봐야겠다는 것. 목적의식이 확고한 외출에서 많이 배워 돌아오는 것도 뿌듯하고 좋지만, 기대 없는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얻으면 더 크고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다. 무작정 마냥 놀자고 온 에버랜드에서 현진이의 새로운 꿈을 얻은 것처럼. 조금만 더 뜬금없이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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