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십춘기 방랑기 # 4. 미인을 찾아서 우크라이나

2rd 국가: 우크라이나 3th 장소:키이우(2017.3.24-3.27)

by GTS

현재까지의 여정

한국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베리아 횡단 열차) → 러시아 모스크바 → 우크라이나 키이우



사십춘기 방랑기 D+15일(2017.3.24)


비행기 시간이 10시였고, 내가 가야하는 쥬콥스키 공항은 모스크바에 있는 4개의 공항 중, 가장 작고 제일 외곽에 있는 곳이었다 보니, 아침 5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그 이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어서 새삼 놀랐다. 내가 부표처럼 떠도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상 속에서 철저하게 성실하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사실이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던 결과로 공항에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특별히 낭비했던 것은 아니지만, 첫여행지였기에 떨리는 마음에 환전을 많이 했고, 워낙 계획없이 살아가는 성격이다보니, 러시아에서 예산을 제법 사용한 셈이 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사이가 안좋아서 그런지, 한번에 가는 항공편이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임에도 자연스럽게 경유를 하게 되었는데, 경유지가 벨라루스의 '민스크'였다. 예정에 없는 '벨라루스'입국... 채 1시간 30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우여곡절이 심했다. 경유지임에도 입국심사를 다시 받아야했고, 그 과정에서 러시아에서 무사통과되었던 로션을 압수당했으며, 입국심사 중에는 러시아 입국카드가 없다고 한참을 조사받았다. 한국처럼 미소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고압적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다그치고, 사람들은 내 뒤로 계속 늘어서 있고, 환승해야 하는 비행기 탑승 시간은 다가 오다 보니, 나는 멘붕에 빠져서 '플리즈'만 연발했다. 다행히 입국심사하던 군인이 더 고참 군인인 듯한 사람을 불러서 둘이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무서운 표정으로 내게 뭔가 주의를 준 후 들여보내줘서 겨우 겨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마음을 상한 채로 우크라이나를 향하다 보니, 비행기 안에서 3박 4일간의 우크라이나 생활에서 초긴축 재정으로 지내겠다는 다짐을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키이우 공항에 도착한 뒤로, 환전은 일부러 조금만 했다. 다음 여정이었던 산토리니에서 어차피 초과 지출을 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정한 기준이, 3박 4일간 50달러. 이렇게 되면 여행이 아니라 생존이 될 듯했으나, 그냥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50달러로 3박 4일간의 숙소비와 교통비, 식대까지 처리해보자. 그래서 유심을 사지 않았다. 길찾기는 구글지도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믿었던 구글지도가 공항부터 먹통이었다. 구글 지도가 작동을 하려면, 현지 인터넷과 한번은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냥 근처 식당에 가서 간단한 요기거리를 시키고,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구글지도를 오프라인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방법을 몰랐었다. 한참을 공항을 헤매다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 내 숙소 주소를 보여주고, 도와달라고 했는데, 이 남자가 영어로 대답했다. 러시아 권에서 이렇게 유창한 영어는 처음이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그를 보고 오히려 내게 당황했다. 그에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그냥 택시타는 게 낫다고 했다. 나는 거지다, 가난한 여행자라고 걱정하며, 얼마냐고 물었더니, 요금이 안들어간다고 했다. 왜냐고 했더니, "내가 너를 데려다 줄 거니까."라는 대답. 와, 여자였으면, 그대로 사랑에 빠졌을 거 같다. 우크라이나에는 장기적출이 없을 거라고 믿으며, 그가 호출한 택시(우버 같은데..)에 함께 탔다.

'니키타'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귀엽게 생겼다. 자기는 러시아인인데, 자기 여자친구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어서 2주간 함께 지내기 위해 왔다고 했다. 나이는 18살. 학생이었으며, 4년전 여자친구를 만났고, 2주간 판타스틱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며,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로 숙소 앞까지 데려다줬다. 이방인이 나에게 이렇듯 친절하게 대해준 그가 고맙다. 벨라루스 공항에서 상했던 마음이 다 풀어졌다.


정말로 니키타는 내 숙소 앞에 나를 내려줬다. 키이우에서 가장 싼 숙소였을 그곳은 시설이 매우 별로였다. 12인이 쓰는 혼성 도미토리였고, 건물 외관은 매우 허름했고, 엘리베이터는 작동하다가 언제든 망가질 거 같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내부는 의외로 청결했고, 생각보다 교통의 요지에 있어서, '키이우'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수월했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외출을 했다. 왜 '우크라이나'를 왔을까?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 다음의 여정을 고민하던 중, 전지현이 농사짓고, 김태희가 서빙을 하는 나라 '우크라이나'라는 우스개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나중에 우크라이나를 올 기회는 따로 없을 거 같으니, 이왕 근처에 옮김에 들려서 확인해보자는 농담반 진담반의 생각이 우크라이나에 오게 된 계기였다. 메인스트리트를 향해 걸어가며, 주위를 연신 살폈다. 정말로 김태희가 농사짓고, 서빙을 하고 있을까? 2시간 가까이 헤맸지만, 글쎄다. 눈에 띄는 미인이 있지는 않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16일 (2017.3.25) 우크라이나 둘째날


해외 여행을 시작한지, 2주를 넘어서서 3주째의 초입에 이르는 날! 드디어 몸살이 왔다. 자리에 누워 늦장을 부리다가 11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낯선 느낌이 확 느껴졌다. 키이우 시내를 거닐며, 불편함을 한가득 느꼈다.


키이우는 모스크바처럼 관광하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모스크바는 그 매연과 차막힘만 제외하면 참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걸어서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 모스크바였다. 그에 반해 키이우는 풍경도 그렇고, 길도 그렇고 쭉 뻗은 길이 없이 여기저기 얽혀있는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김태희가 밭을 메고, 전지현이 서빙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괜한 기대를 했던 것인지, 오가는 길에 스쳐가는 사람들은 김태희, 전지현이라고 결코 볼 수 없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여초인 우크라이나에서는 외모는 경쟁력이기에 김태희와 전지현들은 모델을 하기 위해 서방으로 진출했다고 한다. 그러니 괜한 기대로 우크라이나를 찾지 말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우크라이나에 익숙해지 기 시작하면서 키이우의 좋은 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물가가 참 착했다. 3박 4일간의 생활을 위해서 딱 50달러만 환전을 했다. 이걸로 숙소비, 교통비, 식사비까지 처리해야 했다. 일단 숙소비 3박 4일을 머누는데, 총 450브리흐나(22,500원)였다. 보통 식사비는 아주 고급식당이 아닌 이상 70브리흐나(3,500원)를 넘기지 않았다. 생필품(샴푸, 칫솔, 로션, 치약)을 보충했는데, 120브리흐나(6,500원)였고, 전화와 인터넷이 되는 유심은 90브리흐나(4,500원)였다. 유심이 싸서, 그냥 샀다. 그러다보니 50달러로 3박 4일 생활이 충분히 가능했다.


또한 나는 막눈인지라, 어디 유명한 건물이나 풍경을 보아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법은 그저 도시를 걷는 것이다. 유심을 장착하고 나니,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면서 스쳐가는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도시를 관통하며 드네프르강이 흐르고 있기에, 그 강을 보기 위해 계속 걸어갔다. 드네프르강이 내려다 보이는 공원에 이르러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여권을 맡기고 흥정하여 자전거를 빌렸다. 2시간을 빌렸는데, 100브리흐나(5,000원)였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 강 중앙에 있는 섬에 도착하니,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 자전거를 탔다. 상쾌한 공기에 정신이 맑아졌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 엄청나게 큰 성당은 아니었지만,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당 옆에는 무료급식소가 있었고, 수녀님들이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수녀님들의 모습이 거룩해보였다. 성단 안에 들어서자, 성당에 가득차 있는 각종 그림들과 십자가, 금종과 촛불로 정신이 없었다. 의자가 없는데 미사는 어떻게 드릴지 궁금했다. 성당 안에서 30분을 있으면서, 사람들이 예배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예배시간이 아님에도 이렇게 찾아와서 각자 예배하며,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보기 좋았다. 어느 순간 그레고리안 성가같은 노래가 들렸고, 성당에 있던 사람들이 가운데로 모이면서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미사의 형식을 모르지만, 그곳에 있고 싶었다. 동방정교회의 예배 형식은 낯설었지만, 개신교처럼 목사님의 설교가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어서, 이방인이 내가 참여하는 것이 마냥 어렵지는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성당 앞의 사제에게 길게 줄을 늘어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내게, 한 수녀님이 다가와서 웃으며 무어라 말씀하신다. 손동작으로 보니, 너도 줄서서 축복을 받으라는 거 같았다. 그래서 졸지에 사람들 틈에 섰다. 사람들은 낯선 동양인이 자기들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니, 흐뭇했는지 내게 연신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줄을 서 있다가, 나보다 5명 앞서 서 있던 한 여인을 봤다. 아... 내가 여태까지 실물로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예뻤다. 오... 이것이 축복인가. 사람이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겁니까? 그 여인이 사제에게 축복받는 것을 지켜본 후,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자, 성당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내게 쏠리는게 느껴졌다. 나를 보며 사제는 놀라며,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인지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무언가 축사같은 것을 하면서 붓으 로 내 이마에 십자가를 2번 그었다. 나는 보통 이런 예식이 어색했는데, 그 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축복을 받고, 성당을 나오며, 그 여인을 찾았으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 같이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사십춘기 방랑기 D+17일(2017.3.26) 우크라이나 셋째날


일요일이다. 검색을 해보니, Kiev Korean Church라는 곳을 찾을수 있었고, 약간의 헤맴이 있었지만, 구글지도를 통해서 교회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모처럼 만나는 한국 사람의 무리.. 그리고 찬양과 예배.. 어제 동방정교회 성당에서의 미사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나의 정체성은 개신교 예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얼마만의 예배인가. 나는 서울에서도 근 2년 가까이 교회출석을 안 해왔었다. 그런데 세계 여행 중에 교회를 가고 싶었다.


처음 온 나에 대해 인사를 걸어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나는 낯을 가리고 쑥스러움을 탄다. 예배가 끝나고, 서둘러 교회를 나왔다. 처음에 외국어를 많이 하면, 외국인들과 친해지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말로 소통할 수 있어도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니 이번 방랑을 하면서, 소통의 문제를 외국어의 미흡함에 돌리지 않으련다. 나는 그냥 낯가림이 심하고, 혼자 있는 것에 능한 사람일 뿐이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숙소로 서둘러 돌아왔다. 내일 출발을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 누워서 3명의 러시안 친구들에게 영어로 감사 이메일을 보냈다. 파파고는 참 고맙다. 한잠 자고 있었났더니, 3명에게서 모두 답장이 와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룸메이트였던 도일랏은 흑해에서 기차 건설일을 시작했다고 하고, 첫 타즈키스탄 친구였던 소빌은 내 여행을 응원하였으며, 키예프에서 길을 잃은 나를 위해 택시를 태워준 니키타는 자기 여자친구 샤사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내일 만나자고 하였다. 니키타의 제안에 현지 여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설레었다가, 니키타가 말한 시간에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임을 알고, 실망했다. 니키타에게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못만난다고 답장을 보냈다. 아.. 혼자살 팔자로다.


우크라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김태희가 밭메고, 전지현이 서빙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성당언니가 있는 곳이었으며, 독서와 음악을 사람하는 사람들이 많고, 꽃가게가 많아 하루는 자신을 위해 꽃을 사고 싶은 곳이자, 마음이 편해지고 친절한 만남이 있는 물가가 저렴한 곳이었다. 50달러로 4일을 사는 도전은 가능했다. 어쩌면 내가 머물렀던 곳이, 내가 거닐었던 곳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파괴되었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이 참 낯설고, 어렵다.




사십춘기 방랑기 D+18일(2017.3.27) 우크라이나 넷째날


굳바이 우크라이나, 굳바이 키이우.

굳바이 김태희.. 굳바이 전지현..

굳바이 너무너무 예쁜 성당언니

이제 조르바를 만나러 그리스로 가보자..


공항가는 길.. 기차표는 우리돈 200원이니 좋구나.. 에스컬레이터가 갱도 수준으로 내려간다.

깊다.. 깊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십춘기 방랑기 # 3. 모스크바에서 제자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