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한낮에 눈이 날리고 약속한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의 전화가 기다려진다. 아파트 주방 창 밖으로 나를 향해 달려들듯이 날아오르는 눈을 바라보며, 밖에 나갈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점심을 먹고도 눈이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성인 아들놈들 점심밥을 차려주고 그 사이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후배로부터 톡이 와있었다.
큰아들이 추천한 제빵소 카페가 내부수리 중이라고 닫혀 있어서, 그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어제 오후 두 시에 그녀와 마주 앉았다. 눈이 오는 날 하필이면 연락할 사람이 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눈 오는 날 여자끼리 어울리는 건 서로에게 썩 좋을 건 없다고 내가 말했다.
나처럼 기혼녀도 아니요 늙은 여자도 아닌 삼십 대의 미혼 여성이 눈 오는 날 불러준다고 덥석 나간 내가 주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핑계를 대고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혼자서 서점이라도 기웃거리다가 같은 처지의 남성의 눈에 띄어 둘이서 눈빛이라도 교환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세상의 모든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
어느 순복음교회 청년부에서 그녀를 섭외하고 있는 중인지, 뜬금없이 그녀가 교회 이야기를 한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인류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고 로마가 점령한 유럽 각지에 기독교를 전파했는지, 그 정치적인 이유와 배경을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니체의 지적처럼 기독교는 단적으로 노예 도덕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유일신에 대한 순종과 헌신, 타인에 대한 희생과 사랑을 강요하는 기독교의 정신은 통치자들이 민중을 다스리기에 매우 적합하고 효율적인 장치였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역사 선생도 아닌 내가 뭘 좀 아는 것처럼 말했다.
나의 특별한 벗이었던 고인 유초하 교수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딱 두 가지만은 인생에서 하지 말라 당부했노라고 했었다. 그 두 가지란 바로 종교(기독교)와 마약이다. 일찍이 종교를 아편이라고 지적했던 마르크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과 예술을 흠모하여 그대로 모방해서 베낀 로마인들이 욕망에 물들어 흥청거릴 때,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에로티시즘의 향연 대신에 속국의 민중들에겐 유대민족에서 파생된 기독교적 "사랑"이라는 가치관을 전파하였다.
민중과 노예들에게는 사후 천국과 구원의 논리를 주입하여 복종과 희생정신에 기반한 숭고한 사랑을 가르치는 동안, 로마인들은 사후 천국 따위 관심조차 없이 이승에서의 에로티시즘을 만끽하며 인생을 즐겼다.
눈이 오는 날 세 시간 동안 미혼의 한 여성에게 기독교적 의미로서의 숭고한 사랑 말고 차라리 로마인처럼 인생을 사랑하라고 설파하던 아줌마는, 휴대폰에 남겨져있는 남편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빨리 가서 저녁밥을 안칠 시간이 되었다.
밖에는 사람들이 거리를 오고 가고 그 거리 위에 하늘에서는 아직도 눈이 날리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 늙은 여자가 장바구니 두 개 들고 가까운 마트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