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만나 알게 된 후배들에게 "선배님처럼 늙어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가끔 듣곤 했었다. 내게 사회적 지위와 부와 명성이 있었더라면, 나를 가리켜 그녀들의 '롤모델'이라는 말 대신에 '워너비'라는 말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불현듯 그런 썩 내키지 않는 찬사가 떠오른 것은, 며칠 전부터 뒷목과 머리가 아파서 오늘은 기어이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나가려고 할 때였다. 늙어간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서고 결코 썩 내키는 일이 아니기에, 그녀들의 칭찬 역시 내게는 썩 내키지 않은 찬사와 다를 게 없다.
내 살아온 이력이 다른 여인들에 비해서 우여곡절이 조금 더 많은 굽이진 인생이었기에, 이 나이 먹어서 어느 한 곳이라도 아프지 않다면 그거야말로 심각한 반칙이며 비생태주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나이쯤 되면 어느 한 곳이든 다 아프기 마련이다. "나 이런 병들을 가지고 있고, 이만큼이나 늙었소."하고 떠벌리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기에, 내게 어떠한 병증이 있는지는 구태여 나열하지 않겠다. 그냥 요즘은 뒷목과 머리가 많이 아플 뿐이라고만 심플하게 말하련다.
나의 오래 묵은 화병과 무관할 수 없는 이러한 증상은 간혹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아마도 요즘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업이 은연중에 스트레스로 작용했던 것 같다. 게다가 휴대폰으로 아무렇게나 구부리고 글을 쓰는 자세가 목에 나쁜 영향을 주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무거운 머리 때문에 며칠 잠을 못 잔 탓으로 컨디션마저 엉망이어서 간단하게 겉옷만 입고 집을 나서려던 그때, 나처럼 늙어가고 싶다던 후배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눈썹을 그리고 눈동자에 힘을 주어 본다. 가뜩이나 늙어가는 것도 심술 나는데, 아프다고 만만하게 보이면 더 쪽 팔리는 일이다. 나는 결혼 후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연약해 보이는 캐릭터였던 적이 없었다.
많이 아파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적이 있던 친구가 말했었다. "병원에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냥 다 환자일 뿐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난 생각했었다. '병원에는 가급적 가지 말아야지.'
하지만 내가 굳세게 맘먹는다고 병원에 안 가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운동하고 관리한다고 해도 쓸 만큼 쓴 기계의 유한한 생명력은 거스를 수가 없는 것 같다. 노화를 질병이라고 보는 새로운 의학계의 입장에선, 늙어가는 내 몸을 세월에 녹슬고 부식된 기계에 비유하는 자체를 유약한 자들의 논리라고 반박하겠지만, 생계를 위해 살아온 대다수의 민중들의 몸은 세월에 부식되어가는 기계의 신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목소리 낼 자리에선 목소리도 내고 저항도 하고 살았는데, 그것도 다 몸에 기운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가 보다. 후배들의 롤모델 자리는 다른 이에게 양도할지언정, 작년까지만 해도 내 몸에 남아있던 에너지를 다시 찾아와야겠다.
그래서 독자님들께 양해를 구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거의 매일 글을 쓰며 살았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은 강물처럼 흐르는데, 정작 그 말들을 뱉어낼 몸의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젠 매일 글쓰기를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쓰고 싶을 때 글을 쓰는 패턴으로 바꾸려고 한다.
신체와 정신이 어느 것 하나 우위에 있지 않고, 서로 동등한 자리에서 함께 내 삶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또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겨우 6개월도 채 못된 초보 작가는, 정신의 놀라운 상상력을 키우기보다 늙어가는 몸을 더 신중하게 보살피고 영양을 보충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