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반 되 마셨다, 남편하고 상당집(상당산성 그 집)에서 나 혼자 마셨다. 남편은 술을 못한다. 타고난 체질이다. 이른 저녁식사로 남편은 청국장을 먹고, 나는 파전에 막걸리를 먹었다.
술 못하는 남편이 좋을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난 어디서든 땡기면 술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땡기면 먹을 수 있는 술맛도 술맛 나름이란 게 있다. 과연 대한민국 몇 프로의 아줌마가 남편과 단 둘이 마시는 술맛에 후한 점수를 줄는지, 그런 건 리서치 전문 회사에서 조사할 일이므로, 나는 전혀 모르겠다.
무심천에 벚꽃이 피었다 진 적이 언젠데, 상당산성 언저리엔 철 모르고 피어있는 벚꽃이 몇 그루 있었다, 나는 그렇게 계획성 없이 한참 늦게 피어난 꽃들이 너무 좋다. 세상이 정해놓은 시간의 법칙 속에서, 시간의 계획을 벗어나 뒤늦은 때에도 일말의 희망이라든가 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을 것처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위적인 의미를 나 혼자 부여한다고 해서, 지구 활동에 아무런 지장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드물게 꽃잎을 지탱하고 있는 벚나무들 사이로 짙게 붉은 태양이 서쪽으로 모습을 내려뜨린다. 도로 위를 오고 가는 차들 사이에서, 이제는 턱밑으로 주름이 늘어지는 나이 든 남편이 운전을 한다.
수도 없이 생각했던 각자의 인생길이 있었건만, 나는 여전히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어쩌다 우리가 인연이 되어 지금 이 시간 속에 함께 있는 것인지, 나는 더 이상 며칠 피었다 지는 봄 꽃잎에게조차 묻지 않는다. 알 수도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 세상에 결혼뿐이겠는가...
낮에 먹은 올갱이국밥집 사장 아주머니의 대책 없는 불친절을 함께 욕하면서, 오늘 우리는 또 그렇게 가족으로 연대하였다. 그저 흔한 봄날의 어느 하루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봄날 하루를 남편과 또 함께 살았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묻는 연인이 없어도, 봄날은 저절로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다.
(2020년 4월 26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