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닭

by 도라지

나의 쌈닭 기질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묻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일 수도 있다. 기질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타고나는 것이라고 사주팔자 음양오행에서 익히 재단한 바 있지 않은가.


일례로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갓집에 아들이 없어서 차남이셨던 우리 아버지께서 아들을 하나 더 보실 경우, 우리 집에서 아들을 하나 종갓집인 큰집으로 입적시킬 뻔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오빠가 큰집 아들 아니고 여전히 우리 집 오빠인 것은, 내가 고추를 달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 시절 초음파 검사 같은 것을 상상도 못 하셨던 촌 아낙 우리 엄니가 나를 뱃속에서 열 달 키우시는 동안, 당연히 아들이겠거니 생각하시고 아버지는 사내아이 이름까지 지어 놓으셨다고 한다.

태중에서 하두 발길질을 심하게 해서, 아주 걸출한 사내놈으로 믿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엄니랑 아부지는 큰 아들인 오빠를 큰댁으로 보낼지,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막내아들(?)을 큰댁으로 보내야 할지 근심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엄니 탯줄을 따라 나온 놈이 사내아이가 아니고 계집아이였으니, 과연 실망하셨는지 아니면 기뻐하셨는지 그건 한 번도 들은 바가 없다.


나는 별로 요란스럽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그저 지극히 보통의 아이였다. 유치원이란 데는 가 본 적도 없이 일곱 살에 얼떨결에 국민학교 입학, 아부지한테 배운 글재주(글씨 재주)로 초등 2학년 때부터 교실에서 의자 위에 올라가 칠판 글씨 판서를 했던 기억이 난다. 꼬물거리는 그 손으로 써 내려간 칠판 글씨에 선생님은 대단히 흡족해하시면서, 어린 나의 노동력을 그렇게 착취하셨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에겐 고집 같은 건 없어 보였을 것이다. 오빠가 아부지랑 겸상을 하는 밥상에 있는 반찬 가짓수가 더 많아 보이고, 겨울이면 석유곤로를 혼자 차지하고 가래떡과 고구마를 구워 먹던 오빠의 권세가, 어린 나이에도 참 부럽고 이상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빠처럼 서서 소변을 보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해 봤지만, 빗속에서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의 절망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할 뿐이다.


나는 언젠가 오빠처럼 되고 싶었다, 아부지처럼 어른이 아닌데도 묘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오빠가, 어쩌면 내 인생 최초의 싸움 상대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오빠처럼 키가 크지도 못하고 돈도 많지도 않고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도 않지만, 여전히 내 속엔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오래된 싸움이 살아 있다.


이런 기질이 인생 구비구비마다 없었을까만은, 요즘 내가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동대표를 하면서, 쌈닭 기질이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맞고 있는 걸 실감한다.


나는 오늘도 피 터지는 싸움을 온종일 했다. 하나의 안건을 가지고 sns 동대표 단체 토론방에서 나 혼자 전열을 가다듬고 나팔을 불면서 전진하고 싸우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 동대표들을 상대로 말이다. 아파트 동대표가 되고 나서 그런 싸움이 몇 번 있었다. 이 아파트의 설립 과정과 주변 배경의 특징 상 불가피한 싸움이었다. 반대편에 서있는 쪽은 본인이 살고 있는 동의 편의와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편이고, 주로 나는 전체성에 입각하여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편이다.


이런 싸움에서 나는 굳이 '정의'를 거론하고 싶진 않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매일이 일종의 정의와 부정의의 대립이 아닐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의의 기준 또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 나의 이익과 한 점의 연관성이 없다면, 그것은 비교적 공공성에 가까울 수 있다고 말이다.


요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다시 읽는다. 현대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의 쟁점들은, 이미 고대 아테네에서 예견된 일들이었다. 인간사, 아주 오래된 옛날이나 인공지능 시대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나 혼자 어느 섬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늙어가면서 더 쌈닭이 되어간다. 삶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세상에 저항해야 할 것들과의 조우가 더 많아지는 까닭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나는 쌈닭의 가치를 전파한다.

누군가는 듣기 싫을 수도 있을 테고, 운이 좋으면 그 가운데 누군가는 나의 뜻을 이해하고 나보다 더 치열한 쌈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 잘 싸워준 나에게 위로의 막걸리 한 잔을 선물한다.


캬아~막걸리는 산 정상에서 먹는 맛보다, 전투를 마치고 난 뒤에 먹는 이 맛이 일품 아니겠는가. 싸울 때 벌렁거렸던 심장을 조용히 혼자서 막걸리 한잔에 달래 본다. 때마침 남편은 저녁 식사를 하고 온단다. 혼자 있어서 참 고마운 저녁이다.


(2020년 5월 1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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