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옛날 말이지만, 나도 가끔은 곱상한 여자처럼 보이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한창 꽃다운 20대 대학시절에도 보이지 않던 곱상함이 뜬금없이 언제 적에 발현되었다는 것이냐, 대학시절의 나를 보았던 분이라면 당연히 그런 의문을 품고도 남을 거다.
시내버스에서 나를 따라 내렸던 20대 중반의 복학생 남자가 대학 4년 동안 나에게 말을 건넨 첫 번째 이성이었다는 것과, 현재 그 남자가 아직도 주민등록상의 가족으로 버젓이 같이 살고 있다는 내 개인의 단출한 역사가, 나의 곱상함을 증명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곱상함의 발견은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나서, 30대 후반에 프리랜서 작가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디고 나서였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 작가이지, 그다지 좋은 기사나 글을 써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동진 선배처럼 잘 나가던 기자 시절이 있던 것도 아니요, 규상 선배처럼 신춘문예에 당당하게 등단하여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허울 좋게 여기저기 쬐끔씩 글 쓰고 돈까지 받아먹고 어떤 때는 글 값을 흥정까지 한 적도 있었으니, 나도 가만히 앉아서 굶어 죽을 년은 아닌가 보다.
성질이 칼칼하고 할 말은 제법 하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그 성질머리랑은 별개로 나를 곱상한 아낙으로 잘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시선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자고 그때의 나는 거친 카리스마를 흉내 내고 싶었던 것인지, 지금 회상해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성이 곱상한 여성으로 보일 수 있는 것도 다 한때일 뿐일 텐데 말이다.
이제 나는 오십이 넘었다. 나는 더 이상 곱상하지도 않고 돈을 받고 글을 쓰지도 않는다. 아니 돈 되는 글을 쓸 재주가 없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피해자를 대신해서 탄원서를 쓰고, 아파트 동대표와 입주민들을 설득하느라고 글을 쓰고, 여기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적는다.
하지만 돈 되는 글이 아니라고 내 피가 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심각한 오산이다. 돈 되는 글은 써야만 하는 당위성에 직면하여 쓰는 글이라면, 오히려 돈 안 되는 글은 피가 끓어서 쓰고 싶어 안달 나서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5월의 어느 하루, 오십 넘은 나는 다른 이의 탄원서를 대신 쓰고 있다. 물론 나의 소속과 이름은
분명하게 밝힌다. 그녀의 부탁도 있었지만, 재판을 지켜보다가 또다시 피가 끓어서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펼친다.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것이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과 몇 줄의 글뿐이지만,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도 행복한 사람이다.
비도 내리고, 피는 끓고, 법원에서 오는 길에 막걸리 한 병 사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비 오는 금요일 오후 4시다.
(2020년 5월 15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