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여자는 모교였던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다. 참새같이 쫑알거리는 여자애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쉬는 시간이라도 되면, 여자중학교는 삽시간에 잔치집처럼 시끌벅적했다.
영어과 담당 교사는 머리가 벗어진 남자였다. 그녀가 이 학교를 다닐 적에 계셨던 은사님들은 한분도 보이질 않았다. 사립학교가 아닌 탓이다.
실습 첫날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신없는 하루였다. 이튿날 중학교로 출근하는 아침이었다. 구두를 신고 가는 길이라 어색했다. 서둘러 대문을 닫고 집을 나서는데, 그 남자가 동네 앞에 서있었다. 당황하는 여자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남자는 자전거 뒷자리에 타라고 한다. 구두 신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려면 힘들 거라면서, 자전거를 내 앞으로 바짝 끌어왔다.
대책 없는 이 남자와 바쁜 아침에 말다툼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러다 지각이라도 하면 큰일이다. 여자는 두 번을 사양하다가 하는 수 없이 자전거 뒤에 앉았다. 그날도 예외 없이 긴치마를 입은 그녀는, 자전거 뒷자리에서 옆으로 돌아앉았다.
남자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손잡이 같은 게 없으니까, 제 허리라도 꽉 잡으세요, 안 그러면 떨어질 수도 있어요~"
여자는 조심스럽게 그 남자 허리를 감싸 안았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친 자전거는 그 여자의 모교 중학교 근처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길에, 그녀는 중학교 이름을 말한 적이 없다. 그 남자는 지난번 커피숍에서 몇 마디 나누었던 여자의 신상 정보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가 태워 준 자전거에서 내리는 모습을, 혹시 지나가는 선생들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여자는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학생들도 지나가는 어른들도 두 사람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았다.
"태워다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빨리 왔네요. 안녕히 가세요~"
휘리릭 돌아서는 그녀 뒤에서 남자가 무언가 말하는 것도 같았지만, 여자는 못 들은 척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교생실습 점수도 있는데, 공연히 행실이 어떻다느니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오후에 퇴근할 때도 저 남자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중학교에는 교문이 두 개가 있었다. 아까 자전거에서 내릴 때는 정문 근처였다. 학생들 무리에 섞여 후문으로 재빨리 나가면, 그와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의 실습 준비도 해야 하는데, 거추장스러운 고민이 또 하나 생긴 셈이었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여자는 학교 수업 준비를 핑계로 일찍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 남자는 없었다. 버스정류장까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냥, 구두 신은 그녀의 걸음이 빨랐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실습 두 번째 주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날도 조금 이른 시간에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자전거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화가 나서 참을성이 없어진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지난번에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댁하고 친구하고 싶지 않아요. 제발 두 번 다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남자는 귀가 멀었는지 여자의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저 여기까지 오느라 새벽에 일어났어요.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서 기운 없으니까, 얼른 태워다 드리기만 할게요~"
그의 얼굴이 불쌍해 보였다. 화가 났던 여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여자는 골목길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남자에게 건넸다. 그 남자가 빵을 먹으며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이 불편한 시간에서 도망칠 방법이 여자의 머리에선 떠오르지 않았다. 여행자의 겉옷을 벗게 한 건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었다. 이 남자의 마음을 돌리려면, 따뜻하게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침, 여자는 자전거로 두 번째 출근을 했다.
"제가 토요일에 중학교 여자애들 빵 사줬어요~애들이 귀엽던 걸요. 영어 교생 선생님 어느 문으로 다니시느냐 물어보는데, 애들이 먼저 빵 사주면 알려주겠다고 해서요."
진짜 별 짓을 다 하고 있구나 싶었다. 여자는 순간 이 남자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뭔가 잘못 걸려든 기분이었다.
"애들이 교생 선생님과 무슨 사이냐, 어떻게 만났느냐, 꼬치꼬치 묻더라구요,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이라구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학교 안에 소문이 다 날 판이었다. 이 남자가 키 크고 잘 생기고 멋져보였다면, 여학생들은 더 난리를 피웠을 지도 모른다. 여자는 막막한 심경으로 학교를 들어섰다. 학생들에게선 별다른 시선이나 수군거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가 담당한 학년은 2학년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랑 학교 앞 빵집을 갔던 아이들은 1학년이었다고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훗날 여자는 그 남자의 가족들을 만났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자전거는 남자의 조카 거였단다. 새벽마다 외삼촌이 조카 몰래 타고 나가서 자전거가 사라진 날엔, 조카는 고등학교까지 30분을 걸어갔다고 했다.
(2021년 9월 17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