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여전히 미궁이고 정체도 모르는 범인에 대한 분노는 같은 질량인데도, 오빠가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기분은 밝아졌다. 무슨 사태에 맞닥뜨리든 합리적으로 해결할 줄 아는 능력자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은 사기가 꺾여있던 팀원들을 다시 의기충천하게 만든다.
오빠 차를 뒤따라서 남편과 나는 친정집 아파트의 뒤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잠복하듯이 대기하였다. 오빠는 작은언니의 무시무시한 어둠의 기세와 큰언니의 제어할 수 없는 생떼를 한 방에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무지에 가까운 자식 사랑에 대한 고집만은 오빠도 어찌하지 못한다.
오빠가 친정집에 들어간 뒤 이십여 분 뒤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오빠의 지령대로 남편을 시켜서 친정집에 들어가 큰언니 방에 있는 문제의 텔레비전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였다. 증거물을 확보해 두기 위함이었다.
"어, 이거 새 텔레비전 같은데? LED티브이는 가볍다고 들었어. 이거 LED티브이가 맞다면 새 제품일 확률이 높아."
증거물 티브이를 들고 나와서 차에 티브이를 실어놓던 남편이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언니가 걸어서 갈 수 있는 전자랜드가 가장 유력한데 말이죠."
"옛날에는 정식 절차가 아닌 야매로 제품을 팔기도 했었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청소부 옷을 입은 사람들이거나 다른 옷차림을 한 남자 둘이 움직였다고 해도, 전자랜드 뒤편 제품 입고하는 출입구 쪽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을지도 모르지. 우선 전자랜드 가서 확인해봅시다~"
어라, 요즘 우리 남편이 조금 변한 것도 같다. 예전에는 들입다 성질부터 내며 이성적 사유의 절차를 밟는 습관이 없었는데, 이제는 제법 침착하게 사건에 대해서 생각할 줄을 안다. 나는 휴대폰으로 모델명을 검색해서 판매되고 있는 사이트와 가격부터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티브이 뒷면에 붙어있는 라벨을 폰으로 찍어서 전자랜드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나요?"라고 묻는 덩치가 좋은 한 남자 직원의 물음에, 남편은 티브이 모델명을 보여주며 여기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인지를 확인하였다.
"예, 이 제품 저희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금 매장에 전시된 건 없고요, 주문하시면 원하시는 날짜에 배송해드리겠습니다."
"그럼 8월에 구매한 고객들 가운데 000 씨라고 있는지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고객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구매자 가운데 그런 이름은 없다고 했다. 일단 전자랜드 매장에서 나온 우리가 오분 거리에 있는 하이마트 주차장에 막 도착할 때, 오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CCTV 확인해봤어. 전자랜드에서 온 직원들이 맞아. 전자랜드 차 들어오는 게 10시 43분에 찍혔더구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서는 것까지 다 확인했어. 그런데 구매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고? 어허, 걔네들 그거 크게 문제 될 수 있는데.. 다시 가서 조사해봐. 오늘 오빠가 언니들 단단히 윽박지르고 왔어. 약 제대로 먹지 않으면 오빠가 다시 내려와서 강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혼쭐을 내고 왔으니까 당분간 지켜보자. 오빠는 일단 서울로 올라갈게."
구순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이제 곧 육십을 바라보는 누이 두 명을 삼십 년 간 거두느라 일 년 삼백사십일을 일하고 산 오빠가 지친 음성으로 전화를 끊었다. 피혐의자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게 되면서 남편과 나는 조금 개운해진 마음으로 다시 전자랜드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