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제 다녀가셨던 할머니시네요. 어제 집 가서 텔레비전 있는 거 제가 확인했는데요~"
젊은 경찰관이 늙은 어머니를 알아보고 대꾸하였다.
"그런데 사기 사건이라니요? 사기 사건 접수는 여기서 하는 게 아니고요, 관할 경찰서 가서 하셔야 합니다."
그때였다. 지구대 문이 열리면서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마스크 너머로 높이 소리를 질러대며 거침없이 들어왔다. 다짜고짜 경찰들을 향하여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또 다른 젊은 경찰관이 나를 붙들고 지구대 사무실 밖에 나와서 대화를 이어갔다. 지구대 안에선 작은 딸의 무례하고 높은 언성을 꾸짖기라고 하듯이 늙은 어머니가 작은 언니와 맞붙어서 고함을 치셨다. 난장판이었다. 막내 사위가 간신히 늙은 어머니를 진정시켜 의자에 앉혀놓고 뒤따라 나오는데, 나이가 지긋한 경찰이 함께 나오면서 "저 여자분을 안다"라고 말하며 "오늘은 어머니 모시고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다"라고 하였다.
작은 언니의 등장으로 우리는 한바탕 지구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공연히 죄지은 모양새를 하며 소득 없이 친정으로 돌아갔다. 친정에 오기 전 남편과 둘이서 산성 아래 생태공원이라도 한 바퀴 걸어보려고 나섰던 마음도 사라지고, 정체도 모르는 "나쁜 놈들 두 명"에 대한 분노와 미궁의 사건 전말에 대한 궁금함과 언니들에 대한 "대책 없는 대책" 마련에 대한 고민으로 나는 또 "반 환자"가 되어 내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걱정과 고민과 분노로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식구들 밥을 챙기고 남편과 다시 어제 방문했던 지구대로 향했다.
"정신병 환자를 속여서 돈을 빼앗고 속이 빈 텔레비전을 가져다 놓은 거라면, 너무 악하잖아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아파트 cctv를 조사해서 도대체 누가 그 텔레비전을 갖다 놓은 건지만 찾아주시면, 제가 특정된 사진 출력해서 분리수거 업체에 직접 방문이라도 해서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요."
"무슨 사정인지는 알겠는데요, 개인적으로 수사하시는 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을 찾았다고 한들 그 사람들이 돈 받은 적 없다고 하면 사건 성립이 될 수도 없어요. 증거가 없잖아요. "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아마도 범인들은 아파트와 계약을 맺은 외부 분리수거 업체의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입주민인 아버지를 설득해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cctv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지만, 이미 동네 사람들과 아파트 관리소 측에 면목이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가 직접 나서 주실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경찰관 두 명이 아파트 관리사무실과 통화를 하고 출동 준비를 하면서, "입주민이 아닌 분은 동행해서 함께 볼 수는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사건 당일 어머니와 통화 시간을 기반하여, 사건의 발생 시간대를 8월 11일 오전 10시~12시 20분으로 전달하였다.
cctv를 확인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이 얼마 후 지구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텔레비전 정도 크기의 물건을 배송하는 수상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cctv에는 찍히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나의 설명이 미흡했음을 깨달았다.
"그 텔레비전은 속이 빈 껍데기뿐이라 종잇장처럼 가벼워서, 3층까지 구태여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공동현관 출입구에 설치된 cctv를 다시 조사해주시면 안 될까요?"
까다롭게 주문하는 내 요청에 두 경찰관이 다시 출동했으나, 오전 11시~12시까지 확인한 결과 아무것도 없다는 통보가 전화로 걸려왔다. 나머지 시간대는 입주민이 직접 확인해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사건 접수를 원하면, 사건 당사자인 큰언니의 주민번호와 집에 와있는 텔레비전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아뿔싸, 늘 아무 데서나 소란을 피우는 작은 언니의 주민번호는 외우면서, 누가 봐도 행동이 어눌하고 비정상으로 보이지만 작은 언니에 비한다면 비교적 태도가 조용한 큰언니 주민번호는 외우기는커녕 휴대폰에 적어놓지도 않았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폭우가 내리면 물난리가 나는 지대에 위치해 있는 오빠의 공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물을 퍼내야 했었다. 물난리를 치르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을 오빠에게 하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건 접수를 위해서 큰언니의 주민번호가 필요한데 오빠는 적어놓은 게 있느냐 물었더니, 오빠도 지금 밖이라서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큰언니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 아니면 딸들의 보호자인 아버지께 여쭈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단조롭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순조로운 환자들이라면 부모님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이 이렇게 고통 속에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난폭한 작은언니 때문에 우리는 친정집에 드나드는 것조차 언제나 비장한 각오를 해야만 한다. 전화선이 빠져있는 건 예사로운 일이고, 부모님을 감시하고 부모님의 통화를 엿듣거나 방해하는 건 통상적인 일이다.
그날도 별 소득 없이 궁금증만 증폭시킨 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도 이틀 전 늙은 어머니가 혼자 지구대를 찾아갔다가 허투루 돌아왔을 때와, 어제 우리가 지구대에 우르르 몰려갔다가 사건에 대한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허무하게 돌아와야만 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은 경찰이 두 번이나 출동하여 cctv를 확인해주었고 사건 접수까지 시켜주었지 않은가. 그래도 풀리지 않은 억울한 마음 때문에 그날도 역시 깊은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시 날이 밝자,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일요일이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서울에서 오빠가 내려왔다. 친정집에 들르기 전에 오빠와 나와 남편이 긴급하게 회동을 하였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말들을 기반하여 추측한 사건 시나리오를 오빠에게 들려주며,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단지 어머니의 말을 근거로 했을 뿐이다."라고 단호하게 전달하였다. 머리가 비상한 오빠는 후미에 서술한 나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세 알아들었다. 목격자도 아닌 제삼자(어머니)의 증언의 신빙성을 우리가 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