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나왔다. 하늘에 붙어있던 커다란 맨홀 뚜껑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며칠 동안 비를 쏟아붓더니, 오늘 아침엔 다시 나온 햇살이 뜨겁고도 찬란했다. 이틀 동안 돌리지 못했던 세탁기를 부리나케 돌리고, 일분도 아까워서 빨랫줄에 얼른얼른 빨래들을 널었다. 며칠 전만 해도 정수리를 다 태울 듯이 덤벼들던 한낮의 태양을 피하느라 계곡으로 숨어들기 바빴는데, 지난 이틀은 폭우 속에 갇혀 지내며 불볕더위의 날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바깥에는 무시무시하게 비가 내리는데, 그 와중에도 택배는 꼬박꼬박 배달되었다. 아들이 독립해서 나가는 게 급선무라고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엄마와는 다르게, 본인이 번 돈이라고 큰아들은 자꾸만 이 집안으로 뭘 사들인다. 나는 그게 너무 못마땅해서 심기가 편치 않은데, 친정에선 큰 언니가 저지른 일을 수습해달라고 늙은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비가 크게 와서 당장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당신 말씀만 하시는 양반에게 "경찰에 알려라"라고 말해도 알아듣질 못하신다. 기어이 내가 친정의 관할 구역 동사무소 사회복지팀과 통화를 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특별 보호 조치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선, 조현병 환자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으로 전가된다. 삼십 년을 친정의 해결사로, 남편과 아이들의 해결사로 살아온 나는 이제 너무 많이 지쳤다. 폭우로 떠내려가는 어느 축사의 늙은 가축 한 마리처럼 무력한 존재가 된 지 꽤 된 것 같다. 머리카락은 염색약으로 검정 물을 들이고 다닌다지만, 인생의 무게에 지쳐버린 갱년기 아줌마의 마음을 생명으로 다시 물들일 "의욕"이라는 염색약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갱년기는 나의 인생을 새롭게 정비해 보라고 자연이 권고하는 시절인 것도 같다. 신체의 호르몬이 바뀌면서 생각도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껏 살아온 나의 인생을 반추해 볼 때, 나를 괴롭히고 짐만 얹어주는 가족들로부터 벗어나서 오롯이 '나로서' 남은 인생을 살도록 갱년기는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만 해도 버거운데,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상관할 수 있겠는가. 결국 갱년기는 자연 속의 하나의 존재일 뿐인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나는 매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고 있다. 그것은 인생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것이 아니다. 고통과 괴로움에 짓눌려 딱 하루만큼씩만 버티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인생과 맞짱 뜨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을 기독교 버전으로 한다면,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면서 축복을 줄 때까지 절대 놓지 않겠다고 떼를 썼던 구약성경 속 야곱의 심정과 약간 비슷할 수도 있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옭아매고 내 어깨 위에 내 등 뒤에 얹혀서 살던 모든 타인들로부터 이제 나는 해방되고 싶다. 쏟아지던 폭우도 그치고, 하늘엔 다시 태양이 강렬하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나의 삶과 나뿐이다. 아침부터 거래처에 돌릴 명절 선물 가격 비교를 꼼꼼히 해서 주문을 하고 자식 놈들 밥상을 또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다르게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