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일생을 살다 가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잘 알게 된다. '뼈저리게 느껴진다'라고 고백하고 싶을 만큼인데, 아마도 그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만큼 귀하고도 귀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인생이란 결국 "시간을 살다가는 존재로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그중에 으뜸은 사람을 통해 얻는 경험이기에 하는 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라고 말할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라는 의미이기가 쉽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에 쓰고 있는 '좋은 사람'은 나와 친분을 쌓은 '좋은 친구'이거나, 혹은 나와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없지만 노무현처럼 모두가 아는 '좋은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대한민국에서 '좋은 사람'을 한 명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란다. 며칠 전 만기 출소한 안희정의 성폭행 사건을 다시 검색하다가, 그 사건에 대해 2018년 '교수신문'에 밝힌 최성호 교수의 생각을 우연히 읽고 나서 단박에 나는 그가 좋아졌다.
그러니까 나는 대한민국의 필부필부로서 안희정을 잃고 최성호를 얻은 셈이며, 정치에 대한 희망 대신 학문에 대한 희망을 다시 얻은 셈이라고 위로하는 중이다.
뉴스에서 안희정의 출소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석연치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김지은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안희정이 왜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는지는 내가 남자 신체를 갖지는 않았어도 선명하고 재빠르게 이해가 되지만, 김지은이 왜 갑자기 피해자 신분이 되어 온 국민 앞에 서야만 했는지는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하다. 명쾌한 것을 선호하고 행동하는 내 관점에서는, 안희정의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부적합했다고 보지 않는다.
남녀상열지사에 관해서라면 전문가적 식견을 두루 갖춘 듯한 김건희의 지적대로 "보수는 돈을 주고 해야"는데 지불해야 할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탓 때문이 아니라, 안희정이 김지은에게 지불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김지은에게 안희정은 그녀의 마음에 든 "좋은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기가 상대의 노리개에 불과했다는 마음이 들 때 눈깔이 뒤집어진다. 여자의 복잡하고 교활한 마음 안에 숨어있는 일종의 "원한 감정"을 누군가 '톡'하고 건드려서 그들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2심 재판부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던 "성인지 감수성"만이 여성의 내면 전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성으로서 나는 몹시 서운할 것 같다. 여성은 지구 상의 존재자들 중에 가장 오묘하고 신비한 걸작이다.
김건희의 표현대로 민주당이 "지그들 내부에서 싸워서 안희정을 내친" 것인지 아닌지 그건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지금의 대통령을 모시고 나라를 걱정한다. 김건희의 아저씨(미스터 프레지던트)는 김건희에겐 인생 최고의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겠지만, 우리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그것이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