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분 전만 해도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괜스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자랜드 직원을 대했었지만, 두 번째로 전재랜드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사태는 어느새 역전되어 있었다. 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아까 우리를 상대했던 덩치 큰 남자 직원과 다시 마주 섰다.
"아까 조회 부탁드렸던 그 텔레비전요, cctv 확인했더니 전자랜드에서 배송 온 게 맞다는데요. 혹시 판매할 때 다른 경로가 있는 건가요?"
그러자 8월 구매자 가운데 그런 이름이 없다고 했던 전자랜드 직원이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떨어져 있는 다른 테이블로 분주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가 십분 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노트북과는 다른 노트북을 열더니, 큰언니의 이름을 금세 찾아내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다시 내게 큰언니의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혹시 이 분이 맞나요? 주소가 같은지 확인해보세요."
이름 가운데 글자가 (0)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분명히 큰 언니 이름의 앞 뒤 글자와 집주소가 일치하였다.
"휴대폰이 없는 고객님들은 따로 관리를 하고 있어서, 아까는 조회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십분 전에도 그 직원에게 큰언니의 이름으로 된 휴대폰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처럼 신속하게 확인을 해주는 게 귀찮았던 모양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큰언니가 텔레비전을 구매한 날짜와 배송 날짜 및 구매 금액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남편과 함께 전자랜드 문을 나섰다. 자기 방 책상에 올려놓고 보려고 언니는 작고 가벼운 중국산 텔레비전을 이십 사만 구천 원에 구입했던 것이다.
큰언니가 새 텔레비전을 구매한 것은 사실이며 나쁜 사람들에게 돈을 갈취당하거나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님이 밝혀지자, 어머니의 문갑 속에서 사라진 백만 원에 대한 궁금증마저 해소되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사고 남은 나머지 칠십 오만 천 원을 언니가 가지고 있거나 다 써버렸다고 해도, 우리는 더 이상 그 돈의 행방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하였다. 누가 봐도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 환자를 둔 가족들은, 환자가 돈을 잃어버리고 오는 게 분한 것이 아니다. 그런 환자를 상대로 너무 쉽게 사기를 치는 세상의 비정한 마음에 화가 나는 것이다. 친정집의 생활비를 20년 동안 감당하고 있는 오빠도 돈 백만 원을 찾으려고 청주를 내려온 게 아니었다.
오빠는 운전 중에 블루투스로 통화를 하면서, 기운 빠진 너털웃음을 흘려보냈다. 어머니의 오해로 빚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오빠와 나는 불상의 피혐의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또 한 번의 공조 수사를 감행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문갑 속에서 백만 원을 꺼낸 사람은 필시 작은 언니가 분명할 거라고 오빠는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돈을 둘이서 나누어 가졌든, 누나 혼자서 다 써버렸든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너도 잊어버려. 그래도 나쁜 놈들한테 당한 게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니. 이번 참에 둘이 약 좀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지."
소심한 큰언니가 대범하게 어머니 문갑을 뒤져서 백만 원을 꺼냈을 리는 없다. 평소에는 잔돈푼마저 아끼는 작은 언니가 요즘 병증이 극심해져서, 어머니 문갑 속에서 돈을 꺼내 돈 쓰기 좋아하는 큰언니에게 건네주었을 확률이 높긴 하다. 집에서 사라진 백만 원은 결국 두 명의 조현병 환자의 공동 범행으로 우리는 결론을 지었지만, 이후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큰언니가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손에 종이가방이 자주 들려 있다고 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