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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an 09. 2024

밤길

소한(小寒) 다음 날, 존경하는 선배의 어머니가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양쪽 귓바퀴와 코끝에 외부의 기를 매달고 후배들이 속속 장례식장의 입구에 들어섰다. 어느 집 초상이나 생겨야 장례식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한편 고맙기도 했다.


조의금 봉투를 함에 집어넣고 방명록에 이름을 작성하는 일을 거르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후배 한 녀석은 봉투만 넣을 뿐 방명록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매번 그러했던 것 같다. 자신의 이름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조문 온  선배를 부추겨 후배들과 근처에 있는 치킨집으로 향했다.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화제가 떨어질 때쯤, 내가 서둘러 한 선배의 뒷담화를 시작했다. 술자리에선 자고로 희생제물 한 사람쯤은 준비돼있어야 한다. 적당히 선을 넘지 않을 만큼 그의 뒷담화를 하는 것 또한 인간관계의 줄 타는 묘미다.


하지만 뒷담화를 시작할 땐 반드시 목표점이 있어야 다. 어제 내가 도마에 올린 선배는 여기저기에서 그에 대한 평판이 비슷한 방향으로 일관된 구석이 있었다. 그런 그가 정치에 대한 야망을 탑재하고 행보를 이어가고 있음을 주위에 알리는 게 나의 목표였던 것도 같다.


물론 내가 먼저 알리지 않아도 언젠가 그 스스로 만천하에 아바타 부캐를 홍보하고 다닐 때가 곧 올 것이긴 하겠지만, 일단 재밌는 안주거리를 고이 감추어둘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그를 미리 홍보해 주는 꼴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자연만물의 되어가는 이치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개인이란 존재할 수가 없기에 술자리에서 재밌게 씹어보는 걸로 나는 족했다.


먹다 남은 치킨을 포장해서 싸들고, 나는 춥고 어두운 밤길을 혼자서 걸었다. 버스를 타면 족히 십분 내로 집에 도착할 거리를 이십여분 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앵클부츠 속에 신은 검정색 스타킹이 발의 감각을 조금씩 굳게 하는 것 같았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발의 기였다.


발의 냉기처럼 잊혀간 그 감각들 속에서 남들은 퇴직을 준비 중인 나이에, 나는 요즘 들어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을 키우고 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며칠 전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요가명상원을 차려보기를 권유했었다. 그리고 어제 후배는 백석 시에 등장할 법한 작은 카페 이야기를 꺼냈다.


카페가 열다섯 평이면 되겠느냐고 묻는 나에게 그것도 크다고 후배는 대답했다.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 손님이 건네는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야 가슴이 시린 영혼들의 진정한 친구로 오래 남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요가수행을 해도 좋고 마음 시린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제법 늙은 마담이 되어도 좋은 차가운 밤이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길이 음울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신기한 밤이었다. 그 밤을 혼자 걸으며, 나는 그대로 시시껄렁하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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