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다니는 도로를 제외하곤 사방이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어느덧 우리를 태운 센터 차가 어느 작은 농막 앞으로 들어섰다.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 가운데 몇몇은 여기를 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농막의 주인처럼 짐짓 아는 체를 하는 녀석도 있었다.
근처에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 길을 따라 산책을 하던 센터장님이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신비로운 숲길과 그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에 살고 있는 다슬기들이 오늘 나들이의 발단이었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과 신기하고 재밌는 생태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센터장님은 센터 차 한가득 아동들과 선생님들을 태우고 시골길을 달렸다. 휘파람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운전을 하는 그녀의 등 뒤에선 무음으로 소거된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센터장님이 운전하는 12인승 승합차를 타고, 도시와 시골을 오고 가며 그녀가 남편과 함께 일군 텃밭 옆에 앉아있는 작은 농막으로 봄날 오후 나들이를 갔다. 센터의 아이들은 모두 스물여섯 명, 승합차에는 센터장님 포함 어른 4명이 함께 타야 해서 오늘은 느린 학습자 아동들과 그 외 몇몇 아동들만 데리고 체험 활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슬기 잡는 활동 준비를 한 아이들은 샌들과 갈아입을 옷 등을 챙겨 오느라 작은 가방이나 봉지를 하나씩 들고 차에 탔다. 센터에서 아이들이 먹을 김밥을 직접 말아서 포장을 하고 물과 음료와 컵라면 등을 준비한 까닭에, 농막까지 가는 길에 승합차 안은 더욱 꽉 차게 느껴졌다.
소독약과 사람들로 가득 찬 워터파크에선 볼 수 없는 벌레들과 누군가 버리고 간 듯한 썩은 사과, 지난해 가을 계곡 옆 수풀에서 떨어진 밤알들이 계곡의 얕은 물속에 보물처럼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덜 자란 다슬기들과 서늘한 응달 지역에서 겨우 깨어난 올챙이들을 손으로 잡아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에는 저희들 손안에 잡혀있던 생명들을 다시 계곡에 풀어주고 왔지만, 아이들의 빈 손에는 오늘 잡은 다슬기의 개수들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남편이 더 자주 보살폈을 게 분명해 보이는 텃밭에서 센터장님은 상추와 야채를 한 소쿠리 뜯어서 인솔한 어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농막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재미를 실컷 즐기고 배부르게 식사까지 마치고, 우리는 다시 센터장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센터로 돌아왔다.
센터의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 돌아가고, 공부방 안에는 체험 활동을 다녀온 아이들의 학교 가방만 남아 있었다.
가방을 챙기던 영지가 동생에게 물었다. " 그 봉지 어디 있어?" 아까 차 안에서 영지의 동생이 들고 있던 검은색 비닐봉지가 생각난 내가 영지에게 물었다. "검은색 비닐봉지 찾는 거니, 영지야?" 영지가 대답했다. "네, 그게 있어야 샌들을 담을 수 있어요."
나는 차로 가서 등받이 수납주머니에 끼워져 있는 검은색 비닐봉지 하나를 챙겨서 영지에게 가져다주었다. 영지가 비닐봉지 안에 물에 젖은 샌들을 집어넣고 인사를 하고 동생과 나란히 센터 문을 나섰다.
미니 캐리어를 들고 온 민수가 캐리어 안에서 짜 먹는 요플레를 꺼내 먹다가 바닥과 의자 위에 요플레를 흘리고 있었다. 다자녀 일반가정의 아동인 민수는 밥을 잘 먹지 않아서, 민수 할머니가 봄날 오후 나들이 떠나는 손주의 캐리어 안에 간식거리를 넣어두셨나 보다.
바닥에 흘린 흔적들까지 말끔하게 닦아내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지금 지역아동센터에서 하고 있는 사회복지 실습도 다음 주에 끝이 난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찾고 있던 평화를, 아이들이 계곡 아래에서 다슬기를 찾아내듯이 조금 찾아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찾던 평화는 부스럭거리는 검정 봉지 안에 담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은색 비닐봉지와 작은 종이가방, 혹은 귀여운 캐리어가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인 어느 봄날의 오후가 평화롭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