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생각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기아 K 8 광고음악이 거실 공기를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질 때마다, 달콤하면서도 웅장한 지미 폰타나의 목소리가 묘하게 나의 심장을 두드렸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멀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후배에게 보낸 톡 대화 중에 등장한 "슬로베니아로 넘어가는"이라는 그녀의 표현 때문이었을까.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으나 생소한 나라 이름 속에 그녀가 너무 쉽게 "들어가고" 있어서, 나는 그 순간 잠시 내 영혼이 경로를 이탈하는 경험을 했던 것도 같다.
슬로베니아 나라 이름이 등장하기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온통 '운동회' 게임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슬로베니아가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을 텐데,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동문회 선후배들 열명이 모여서 만든 모임의 구성원들을 데리고 춥기 전에 '운동회'를 개최해 보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오래된 일도 아니건만 마치 기억 속에선 오래전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올해 여름의 그 '지루한 뜨거움'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재차 우려먹어서 식상한 푸념이지만 대학 시절 선배들로부터 자판기 커피 한잔 얻어먹은 경험이 없는 공허한 청춘을 보냈던 내가 나이 사십 무렵에 시작한 대학 동문회 활동 덕분에, 나는 지금도 선배들로부터 커피뿐만 아니라 술과 고기까지 "얻어(?) 먹고" 다닌다. 물론 동문회비도 내고 경조사비도 내면서 다니지만 말이다.
총동문회를 통해 알고 지낸 열 명이 모여서 사사로운 조직 하나를 따로 결성하였고, 거기 총무 일을 내가 맡고 있다. 어디서든 '대가리(우두머리)' 역할에는 흥미가 없고 조직을 하나로 묶어서 잘 이끌어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다른 조직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들을 자발적으로 벌이곤 하는데, 이번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운동회'가 그것이 된 셈이었다.
운동회를 운운한다고 내가 역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나는 역동적인 운동은 별로 선호하지도 않을뿐더러 잘하지도 못하고 해 본 적도 없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내가 기획했던 운동회는 그야말로 아이들 소꿉놀이 정도의 시시껄렁한 신체 활동에 불과하다.
내가 기획한 운동회 게임들은 청백팀 양 팀 나누어서 축구공 드리블로 반환점 돌고 오기, 머리에 책 얹고 (책 위에 올려놓은 작은 물건이 떨어지면 안 됨) 반환점 돌고 오기 등의 팀별 릴레이 경기와 푸시업과 제자리멀리뛰기 등의 개인 점수를 팀별로 합산하는 게임, 토너먼트 방식의 신발 멀리 던지기 게임 등 이게 운동회일까 싶은 수준의 시시껄렁한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일찍이 이런 게임을 중년의 멤버들을 상대로 진행했던 나로서는 이런 시시한 게임이 어른들이 즐기기에 얼마나 안전하고 재밌는 경기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역동적인 운동보다는 산책과 요가를 즐기는 나에게 대부분 산책길의 파트너는 남편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남편과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내가 졸업한 학교로 산책을 나가고 있어서, 나는 학교의 변해가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남편이 졸업한 학교는 산 아래에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그쪽으로 산책을 간다.) 운동회 장소로 어디를 사용해야 할지, 나는 머릿속에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대학교 측과 전화 통화로 마당 사용 허가에 대한 안내를 받은 날 오후, 나는 남편을 데리고 '탈마당'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바람 빠진 축구공에 바람도 채워 넣었다.
탈마당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사용 신청이 끊이지 않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잡초가 조금씩 자라고는 있지만, 비교적 잘 정돈된 마당인 것만은 틀림없다. 아주 오래전(벌써 삼십 년도 훌쩍 뛰어넘는 옛날이야기이므로) 여기에서 탈춤과 택견을 시범보이던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있었는데, 공허한 대학 시절을 보냈던 내가 어찌 된 영문으로 그 무리를 기억하고 있는 건지 나로서도 모를 일이다.
중년의 멤버들이 게임을 진행할 곳이라서, 다시 한번 꼼꼼하게 마당의 상태와 화장실 이용 및 부대시설 등을 확인하였다. 탈마당엔 천막을 따로 치지 않아도 햇빛과 비를 가려줄 공연장 무대의 천장이 있어서 좋았다. 공연장 바닥이 깔끔해서 캠핑 테이블과 의자 등을 배치해 놓으면, 야외 카페처럼 커피는 물론이고 파전에 막걸리 맛집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나보다는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신발 멀리 던지는 방법을 전수해 주겠노라며 그날 스무 번이 넘는 시범을 몸소 보여주었다. 집에서는 남편에게 '할머니' 소리를 듣는 내가 남편의 신발을 주우러 스무 번을 넘게 마당을 뛰어다녔다. 내가 신발 멀리 던지기 차례가 되었을 때, 남편은 내 신발을 주우러 뛰어다니지 않았다. 내 신발이 낙하하는 지점쯤에 서있다가 내 신발이 마당에 떨어지면 그걸 주워서 내 편으로 다시 힘껏 집어던졌던 것이다. 그날 낡아도 너무 낡은 운동화를 신고 나갔던 것을 나는 크게 위로 삼았다.
탈마당 바닥은 흙과 풀이 어우러져 있어서 쿠션감도 나쁘지 않았다. 청춘 때 실력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중년들의 제자리멀리뛰기에도 안정적인 마당 상태로 여겨졌다. 남편은 나에게 더 멀리 뛰려면 위로 뛰어오르는 점핑력을 먼저 키워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별빛이 반짝이는 선선한 저녁에 중년의 부부가 깔깔거리며 마당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하현으로 가는 반달이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모임에서 운동회는 무산되었다. 회원들은 기획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나, 실제적으로 운동회가 무산되었다고 내가 위로받을 일은 하나도 없다. 그 재미난 운동회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시시하고 우스운' 것들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도리어 내가 그들을 위로하고 싶어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