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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Oct 31. 2024

프로이직러이지만 비로소 정착할 수 있을 듯

10.  아마도

15년이 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웃을 일도 울일도 많았네.

아빠는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나 원망도 했었는데, 술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던 사회였음을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혼 후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니, 나는 술대신 매일 속으로 울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문득 남편벌이로 생활하며 일하지 않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자존심 다칠 일도 없을 테니까.(물론 그들만의 고충도 있을테지만)






어제 딸이 7살 때 찍은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무티티한 얼굴. 시선은 티비를 고정한 채 딸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한 아줌마.

초점 나간 눈으로 연신 티비에 나온 음식을 보며 맛있겠다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때는 자기계발이라고는 1도 몰랐던, 그저 약국에서 주는 월급으로 악착같이 아끼며 살았던 시기였다.

커피 한잔 사 마시는 것도 아까워했던... 지금 생각하니 코끝이 시린 시절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책을 읽기로 결심한다. 그 후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블로그를 시작했고,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머니파이프라인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월급의 몇 배의 부수입을 만들었고, 그 돈으로 일주일 뒤 나는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네.



문득 5년전이 생각났다.

나는 7시퇴근.

유치원 다니는 딸은 5시 하원.

맡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6살 무렵부터 다닌 피아노학원.

11살이 된 지금까지 각종 콩쿨에서 대상과 준대상을 받으며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있는 우리 스몰구슬.

그동안 얻어온 전자피아노로 집에서 연습을 해왔다.

소리가 잘 나지 않는 건반을 누르며 진짜 피아노를 사달라고 했지만 엄마가 돈 많이 벌면 사줄게라고 하며 미뤄왔었다.


사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5년 후 바로 오늘

비로소 그 꿈이 이루어졌다.

스몰구슬이 말한 진짜 피아노가

아파트 입주하는 날 선물처럼 배송이 된다.

피아노 결제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붕어빵 하나 사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몇 년 전 내가 떠올라 코끝이 시렸다.


프로이직러.

살기 위해 선택했던 수많은 직장에서 악착같이 아끼고 모으고 공부하며 오늘의 내가 되었구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지만 이제는 쉬어가며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지금 일하는 이곳은 100살까지 일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이곳은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환자가 없으면 게임을 해도 된다고 하시는 원장님.

다음 달 입주를 한다고 하니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시는 원장님.

쓰레기 버리고 퇴근하겠다고 하니 본인이 버리겠다는 원장님.

이런 분은 처음 봤다. 진짜 100살까지 이곳에서 일해야지하고 매일 다짐한다.


곳은 창원의 어느 번화가에 있는 한의원인데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한다.

여기서 일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거의 매일 봬서 그런지 정이 너무나도 많이 들었다.


눈이 잘 안보이시는 아빠 같은 분은 제로페이로 결제를 하시는데 핸드폰이 잘 보이지 않아 비밀번호를 알려주셨고 매일 내가 대신 결제를 해드린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거 마냥 기분이 좋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께 나로 인해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사를 지으시는 한 분은 오늘 나에게 물으셨다.

"호박죽 먹을 줄 압니꺼?!"


"호박죽요? 너~무 좋아하죠~"

라고 했더니,

내일 호박죽을 만들어서 들고 오신다고 한다.



80세임에도 불구하고 학교급식소 청소일을 하시는 분은 주말빼고 매일 치료받으러 오시는데,

어느날 학교에서 검은콩 두유가 나왔다며 나에게 두유를 내밀며 한마디 하신다.

선생님이랑 정이 많이 들었다!





프로이직러 답게 많은 곳에서 일하면서 내 성격도 변했다.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 불만이 생기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았던 예전의 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동안의 이직이 헛되지 않았네



그래서 결론은,

이 한의원에서 100살까지 일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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