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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ug 19. 2016

서점과 책의 미래, 우리는 어디쯤 왔을까

더 다양한 목소리와 풍부한 공간을 위해

    

  주택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골목길. 한가로운 걸음으로 이 곳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작은 책방들을 만날 수 있다.


  작은 간판보다 산뜻한 푸른 문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여행책방 ‘일단멈춤’은, 책방 이름처럼 여행서적들만 취급한다. 그렇다고 대형 서점의 판매대에 놓인 흔한 여행정보서들을 진열해 놓은 곳은 아니다. 서점주가 마음을 기울여 고른 책들은 인문학 서적부터 에세이와 사진집, 잡지까지 다양한데, 모두가 여행과 관련된 책들이다. 특히나 다른 곳에서는 만나 보기 어려운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들이 일반서적과 섞여 진열되어 있는 것이 매력이다.


여행책방 일단멈춤 ⓒ김지연

    빽빽하지 않고 조금 느슨하게 마련된 서가는, 책의 등보다는 각기 다르게 예쁜 전면 표지를 고루 보여주며,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더불어 마음 속에 여유를 생성한다. 누구든 이 서점을 방문하면, 삶을 일단 멈추고 여행에 대해 잠시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아래 골목에도 무심한 듯 문을 열어 놓은 책방이 하나 있다. 간판이 잘 눈에 띄지 않는 이 가게 앞에는 술병이 진열되어 있어 언뜻 보기에 작은 술집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면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나도 책을 읽는 중이니, 알아서 책을 읽다 가시라는 듯한 모습. 이것은 어쩌면 독서가에게는 어서 오라는 우렁찬 인사보다 더 반가운 무언의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퇴근길 책한잔 ⓒ김지연

  이곳은 SNS에서 잘 알려진 ‘퇴근길 책한잔’, 술이나 커피를 한 잔 하며 책을 읽고 나누는 공간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립출판물들을 판매하고 있기에 상당히 보기 드문 주제나 형태의 책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책방의 안쪽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이 곳에서 독서모임이나 영화상영 등 재미있는 행사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여행책방 일단멈춤'과 '퇴근길 책한잔', 염리동의 이 두 책방은 공간은 작지만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적지 않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책방들의 근처에 '초원서점'이라는 음악전문서점도 문을 열었다. 번화가인 신촌, 이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염리동 골목길, 그 곳에서 사소한 변화가 꿈틀대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줄줄이 폐업하며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서점의 위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어 왔다. 그런데 염리동에서는 최근들어 벌써 3개째의 작은 서점이 문을 열고 있다. 이곳만이 아니다. 연남동, 서촌, 대학로, 해방촌 등 문화·예술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작지만 개성 있는 서점들이 영업 중이고, 염리동과 같은 주거밀집지역이나 지방 도시에도 색다른 소규모 서점들이 문을 열고 있다. 이들은 예전에 동네에 있었던 단순히 크기가 작은 서점이 아니라, ‘독립서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존재들이다.

 

  독립서점이란, 고유의 기준과 개성을 가지고 입고 도서를 선정하여 진열 및 판매하며, 독립출판물들을 함께 취급하는 서점을 말한다. 홍대의 ‘땡스북스’나 '유어마인드', 서촌의 ‘더북소사이어티’, 연남동의 ‘헬로인디북스’, 가수 요조가 직접 책방 주인으로 나서 화제가 되었던 원서동의 ‘책방 무사’ 등이 그러한 곳들이다.


  한편 독립출판물은 출판사에서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출판한 도서가 아니라, 개인이 직접 제작하여 인쇄·유통·판매까지 도맡아 하는 책이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ISSN(International Standard Serial Number: 국제표준연속간행물번호)나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표준도서번호)를 발급받지 않고, 적은 자본으로 소량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제작자가 본인의 창작물 - 글이나 그림, 사진 등 - 을 출판하는데, 누구나 제한없이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주제나 내용, 형식이 매우 자유롭고 실험적이다.


  독립출판물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이나, 일반적인 동네 서점에는 입고되지 않으므로, 제작자가 온라인, 아트마켓 등을 이용해 직접 판매하거나 독립서점에서 위탁판매를 하고 있다. 용산의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북스토어 인덱스’에 따르면, 2016년 4월 기준으로,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은 서울 내에 53개, 전국적으로는 88개가 있다고 한다. (참조:'스토리지북앤필름'블로그)


땡스북스


  이러한 소규모 독립서점들은 각자의 특색과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점의 테마, 서점 주인의 확고한 기준이나 취향에 따른 입고도서 선정 및 디스플레이를 지향한다. 때문에 대형서점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책,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책을 만날 여지가 많다.

  또한 이 공간들은 서점의 테마나 책과 관련된 각종 모임 및 강의를 열기도 하는 등 책을 판매하는 동시에 책과 관계 맺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도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던 ‘일단멈춤’은 때때로 손님에게 작업공간을 내어 주기도 하고, 책을 편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인디자인' 강좌를 열기도 한다. 또 ‘퇴근길책한잔’은 영화 상영회나 재미있는 게임, ‘책 소개팅’과 같은 아이디어 넘치는 행사를 진행하며, ‘더북소사이어티’에서는 직접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는 워크샵을 진행한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서점과 고객과의 관계를 좁히고 있으며, 일부 서점들은 함께 뜻을 모아 독립출판물 마켓이나 페스티벌을 열기도 한다.   


더 북소사이어티

 한편, 이들이 소개하는 독립출판물들은 더욱 흥미롭다.


  출판시장의 오랜 불황 덕분에 출판사들은 수익성 낮은 콘텐츠들의 출판을 꺼리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여전히 작지만 알찬 소재, 흥미로운 기획을 선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출판사들도 많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다양한 목소리가 소리낼 수 있는 기회가 자본의 논리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아쉬운 경우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증가한 이 독립서점들과 독립출판물 제작자들, 독자의 삼각관계가 선순환하며, 작지만 개성있는 목소리들을 들어 볼 수 있는 자리가 조금씩 더 늘어나고 있다.


  독립서점의 매대에 가지런히 놓인 책들은 직접 쓴 소설이나 시집은 물론, 기성 출판물에서 다루지 않는 독특하지만 재미있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잡지들, 조금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들, 심지어 책의 형태나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꾼 것들까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물론 이 중에는 수준 미달인 책들도 있고, 난해한 책들도 있으며, 정말 보석같은 책들도 있다. 백이면 백 다른 느낌을 가진 이 책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독립서점과 같은 공간이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양한 생각과 표현을 가진 개인의 목소리로서도 흥미로우며, 한 창작자의 도전으로서도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독자와 다른 출판종사자들에게 있어 신선한 영감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러한 독립출판물들을 소개하고 판매함으로써 지속적인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독립서점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단지 출판사와 독자 간의 중개소나 책이라는 상품의 소매점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모든 문화가 모이고, 주인의 취향과 손님의 취향을 공유하며, 누군가의 영감을 일깨우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 아름답고 멋진 일이다. 그러나 이들 독립서점은 소규모 자본으로 운영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적은 수익으로 어렵게 운영되는 곳이 많다는 어두운 그늘도 존재한다. 그 때문에 책 판매라는 본업 외에 소품이나 문구를 함께 판매하거나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수익을 보전하며 서점을 꾸려가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북스토어 인덱스’에 폐업하는 서점이 꽤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츠타야 서점, 하코다테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동시대의 대형서점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최근에 100인이 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과 독서 공간들을 마련하며 변화를 시도한 교보문고나, 커피를 마시며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홍보 중인 알라딘 중고서점 합정점의 모습에서, 서점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변화를 시도한 일본 츠타야 서점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츠타야는 원래 음반과 DVD 대여 체인으로 알려진 일본 대기업이다. 이 회사는, 서점이 책을 단순히 판매하는 공간에서 고객에게 책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서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방식의 도서 배치와 최대한 여유있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고, 최근 츠타야 서점 하코다테점에서 그 꿈을 이루었다.

  하코다테 츠타야는 넓지만 분리되어 아늑한 독서 공간과 편안한 의자, 벽난로 등을 제공하며, 어린이책 코너 옆에는 실내 공원을 운영하고, 카페와 식당은 물론 꽃집과 편의점, 요리와 요가교실까지 마련하였다. 이곳은 하코다테 사람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약속을 잡고, 책을 읽으며 토론을 하는 지역 커뮤니티이자 복합문화공간이 되었고, ‘서점의 미래’라고 불리며 일본 밖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참고: '서점의 미래로 불리는 하코다테 츠타야에 다녀오다.' (https://brunch.co.kr/@veloso/1))



  책을 읽고 즐기며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진화하고자 하는 서점의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과연 공간만 변화했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공간 변화를 시도한 교보문고의 경우, 눈에 잘 띄는 곳의 진열대는 여전히 베스트셀러나 대형출판사의 책들로 메워져 있다. 또한 서점 내 독서 공간의 확장으로 오히려 진열대의 수가 줄어, 신간 매대 외에는 책을 홍보할 방법이 거의 없는 소규모 출판사들의 책들이 예전보다 더 외면 받는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한편 알라딘 중고서점의 헌책 매매 역시 혁신적인 시도였고, 카페와 독서공간의 확충 역시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빽빽한 서가를 둘러보다가 의외의 책을 발견하곤 했던 소규모 헌책방의 낭만은 그 안에 없다. 오프라인 중고서점 역시 온라인 알라딘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간과 베스트셀러, 잘 팔리는 책 위주로 고객에게 노출시키는 이 방식은, 결국 그러한 도서 위주로 활발한 매매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이러한 변화는 당장에 서점을 친근하게 드나들며 책을 가까이 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더 나은 독서문화의 발달을 통해 서점과 출판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그 가까이 할 ‘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불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책은 몇 종류의 유명한 책이기 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오만가지의 목소리가 충실하게 담긴 각각의 책들이다. 또한 그 수많은 사람이 원하는 책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좋은 안내자 역시 필요할 것이다.


괴산 숲속작은책방

 

  괴산의 ‘숲속작은책방’은 정말로 숲속에 있는 작은 서점인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곳에서는 오는 손님을 무조건 받지 않으며, 서점주인과의 면담을 통과한 사람만 머물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고, 책과 함께 조용히 휴식하고 갈 사람에게만 방을 내어주겠다는 뜻이다. 이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부부는 손님이 머무는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관심사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데, 손님들은 추천 받은 책을 꼭 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마 다른 독립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자기가 판매하는 종류의 책들에 관심이 많고 잘 아는 사람이, 마치 전시회에서 그림을 배치하듯 책을 진열하고, 손님의 취향에 관심을 갖고 책을 제안하는 것 말이다. 좋은 책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좋은 책을 소개하고 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북큐레이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프랑스 남부 시골마을 바농에 위치한 서점 '르 블뤼에'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곳은 농가를 개조한 작은 서점이었지만, 최대한 다양한 책을 갖추고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대형 서점들처럼 광고비를 받고 잘 보이는 매대를 내어 주는 것이이 아니라, 규모가 작은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각 섹션마다 전문가를 따로 배치하고, 특화된 북큐레이션을 추구했다. 그 결과 남부 지역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온 지식인들이 이 곳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서점은 점차 유명해졌다. 결국 '르 블뤼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 중 하나가 되었다.

  덧붙이자면, 프랑스의 경우 독립서점을 장려하기 위해 아마존의 무료배송이나 마케팅 등에 제재를 가하는 ‘반아마존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 또한 장기적으로 독립서점과 다양한 출판물들이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여행책방 일단멈춤 ⓒ김지연

 

  변화는 언제나 위에서부터, 큰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독립 서점들과 용기 있는 개인 제작자들, 그리고 여기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응원할 줄 아는 독자들이 모여,  좁은 골목길에서부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문화라는 것은,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일부 제품이 승리하고 시장을 독식하는 종류의 상품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더 나은 열매가 열릴 수 있다. 서점과 책의 미래를 한 발 먼저 고민하고 제시하는 작은 서점들과 독립출판물들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하다.


  물론 대형서점들의 변신은 희망적이지만, 아직은 ‘서점의 미래’를 논하기엔 부족하다. 수익이 목적인 상업 서점에게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점과 책과 독자가 다함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점이 자본의 논리로만 운영되는 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서점은 단순한 '상품' 거래소가 아니라, 작가와 출판사를 거쳐 만들어진 책이라는 '문화'가 독자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되고, 이 모든 주체들이 상호 교류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어떤 철학을 가지고 독자에게 책을 제공할 것인지, 더 다양하고 풍부한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 참고서적

북노마드 편집부, <우리, 독립책방>, 북노마드, 2015

땡스북스, 퍼니플랜,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알마, 2016


**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5월호에 기고한 것을 일부 수정 및 생략하였음을 밝힙니다. 지면에 게재된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www.ilemonde.com을 방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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