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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pr 19. 2021

내 몫의 일

어쩔 수 없지만 또 우리는,

혼자 일하는 외로움, 이라는 말에 친구는 눈물이 살짝 터졌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일하는 외로움이라기보단 일하는 와중에 혼자 가질 수밖에 없는 외로움. 우리가 아는 그것.

오늘은 갑자기 친구를 둘이나 만났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의, 혹은 그 이상의 일을 잘 해내고 있는 나의 멋있는 친구들. 오늘 몫의 공부와 오늘 몫의 술밖에 없었던 우리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서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저 일의 즐거움에 빠졌다가, 언젠가는 혼자 일한단 생각에 외로웠다, 최근에는 혼자이지만 혼자 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든든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은 여전히 외롭다. 아, 설명하기 어려운데, 정말 좋고 재밌으면서도 외롭고 쓸쓸하고 어렵다. 마감을 마친 뒤의 안도 반 불안 반, 혹은 오늘은 도저히 안될 듯해 적당히 작업을 마무리할 때 느끼는 그런 어려움을 나눌 동료가 없어 외롭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혼자 일해서가 아니라 사실 어디서 어떤 일을 해도 가질 수밖에 없는 외로움이었다.

미드 <보스턴 리갈>을 엄청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들이 일을 마치고 테라스에 앉아 위스키 한 잔 마시는 엔딩이 좋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건, 그들은 나란히 앉았어도 각자 짊어질 외로움이 있었을 거라는 것. 함께 앉아서 시선의 교환 없이 멍하니 앞을 보는 찰나는 그런 것이었겠지. 한 사람의 몫을 책임진다는 건 그런 거니까.


자기 몫의 일을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런 외로움, 혹은 고독이 있다. 그건 어떤 방향으로 보아도 온전히 내 몫이며, 누구도 대신하지 못할뿐더러 가까운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누구를 만나도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만 그럴까, 삶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친구의 고민도, 일 얘기도, 그저 듣는다. 해결이나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법을 공부하고 비평을 수행하며 오히려 깨달았던 건, 세상에 그런 규칙을 적용해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드물단 거였다.


사람의 삶은 너무도 다양해서 세상의 규칙이 제 속도로 따라가기 어렵다. 내 삶에 대해 친구들이 그렇듯 나 역시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을 뿐, 무엇도 제시하지 못한다.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며, 내 친구들은 그것을 알아서 잘 판단하고 버텨내고 또 책임질 것을 알기에. 나는 그들이 버티는 중에 혹은 후에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걸 꺼내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에.

그러니까 삶이든 일이든 결국 혼자 버텨야 하는 외로운 몫이 있다. 다만 그 외로움과 고독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이며 온전히 감당하고, 손댈 수 없는 것은 흘러가도록 두는 게 어른의 삶이다. 흘러가다가 도착한 곳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라도 그 나름의 의미와 즐거움이 있다 생각한다. 나와 친구들도, 알아서 판단하고 책임지면서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되도록 과정 동안 자신을 아끼면서 끝에는 가장 행복한 길을 찾는다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여기 있을 거라고 5년이나 10년 전에 상상이나 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최근에 어떤 질문들에, 나는 목표가 없다고 대답하는 건 그런 이유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을 지금과 같이 살겠지만 과도한 목표를 정해두고 나를 채찍질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아도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단 것을 이미 알아버렸으므로.


꿈은 중요하지만, 미리 정한 꿈의 형태에 나를 옭아매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시간과 삶은 파도와 같고 우리는 거기 떠다니는 작은 해초와 같은 존재이므로, 나 혼자 정하고 움직이는 범위엔 한계가 있다.

모두에겐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각자의 몫이 있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그의 고통과 외로움을 내가 해결해줄 수는 없다. 다만 곁에서 함께 버텨준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타인의 삶을 온전히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른인 우리는 각자 내 몫의 일을 해결하고 감내하고, 삶의 나머지 부분을 나눌 뿐이다.

그렇기에, 내 몫을 알아서 견딘 후에 나의 나머지 시간을 누군가와 나눈다면 최대한 다정한 사람이라면 좋겠다. 나의 친구들처럼 그냥 어른의 삶에 그런 외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 자기 몫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 타인의 외로운 전쟁터도 아는 사람, 그래서 더 다정한 태도로 사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또한 내 친구들 역시,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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