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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pr 22. 2021

봄밤

새롭게 피어나는 마음들

자주 하는 얘기지만,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많은 부분은 타이밍과 운이라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고, 그러므로 잘된 일이 전부 내 공이 아니듯, 잘되지 않는 일도 전부 내 탓은 아니라고. 그냥 전부 동등한 날들이다. 그 퍼즐 조각들을 전부 맞춰 봐야 마침내 전체의 맥락을 알 수 있다. 조각 하나에 너무 흔들릴 필요는 없다.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서 자주 힘겨루기가 일어난다. 온전히 기뻐하려는 마음은 내 안의 어디선가 슬며시 끌어내리고, 절망하려는 날에는 괜찮으니 일어나라고 등을 떠민다. 순진하게 기뻐하고 절망하고 싶은 마음과 크게 기뻐하지 않는 대신 크게 슬퍼하지도 않도록 중간을 지키려는 마음이 동시에 다툰다. 내 마음은 언제나 일희일비하는 마음과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그 어디쯤에 머문다.

순진한 마음은 상처 입기 쉬운 것을 안다. 그래서 외부를 바라볼 때는 솔직하고 순진한 시선을 지키려 하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엔 자꾸 아니라고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라고, 또는 그렇게 절망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고, 한 번 더 의심하라고. 그래서 어떤 날은 가끔 내가 지키고 있는 마음이 진짜가 아닌 것 같아서 낯설다. 어떤 마음이든 가뿐히 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노력도 배반하던 시기를 지나, 최근에는 내 공이 아닌데도 잘 풀리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물론 생각보다 더딘 일들도 여전히 많지만 이 정도면 고맙다. 다행히도 몇 년 전의 선택이 무사히 잘 흘러가고 있는 걸 보면서, 소식을 전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없는 이들. 뭔가 잘 되는 날의 기쁜 마음 뒤엔 그걸 전할 수 없어 울컥하는 마음도 따라온다. 봄밤이라 괜히 더. 하지만 나는 그 마음도 살짝 눌러 가라앉혀 본다.

봄에 태어나 선지 봄이 가장 좋아서, 나의 봄은 삼월의 첫날부터 오월의 마지막 날까지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때까지 봄을 잡아끌며 질척이는데, 이상하게도 매년 봄의 날들은 짧다. 너무 좋은 것은 좋아서 그렇게 짧고 또 아깝다.

아까운 봄의 날은 오래오래 온전히 다 누리려고 하면서, 어째서 내 마음은 마냥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까. 어쩌면 겁이 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다가 갑자기 넘어진 순간을, 슬퍼하다가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다 쓰지 못한 마음도 결국 아까워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애썼던 지지난해의 봄과, 일희일비하지도 절망에 빠지지도 않으려 혼자서 가만히 걸었던 지난해의 봄을 생각한다. 그땐 마음을 다 쓸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구석구석 봄이 오는 순간들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느리게 걸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의 구석진 곳에도 봄볕이 조금씩 들었다. 느린 걸음인 줄 알았는데, 일 년 만에 참 멀리까지 왔다. 그동안의 나를 꼭 안고 토닥여주고 싶은 밤이다.

괜한 생각들이 고개를 드는 봄밤을 지나며, 지금 가진 마음들을 돌이켜본다. 조심한다고 자꾸 진정시키진 않았는지, 겁이 나서 그만 멈추게 하진 않았는지, 자꾸 쓰지 않다가 아깝게 낡아 버리는 날이 오진 않을지. 이번 봄에는 어쩐지 작년보다 좀 더 나 자신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피어나는 마음을 막아서지 않는, 봄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흐린 날인데도 감당할 수 없을 마음들이 자꾸 자라는 걸 보니 봄이 속도를 내어 오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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