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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건 Jan 21. 2024

[오늘의 밥상 #5] 히레카츠

약 11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분이 있다. 내가 대학교 졸업반이던 시절, 학교를 한 학기 휴학하고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의 팀장님이다.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내가 서울에 올라오고 난 이후 약 1년에 한 번 정도씩 가끔 만나 안부를 묻곤 한다. 물론 팀장님도 나도 바쁘다 보니 간간히 안부인사를 하다가 어떤 때는 1년이 훌쩍 넘어서야 얼굴을 보기도 한다.


이번이 그랬다. 약 1년 반 만에 팀장님을 만났다. 시간은 무색하게 빠르게 지났지만 오랜만에 뵌 팀장님은 1년 반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사실 10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진 것은 모르겠다.) 우리의 약속 장소는 카츠 전문점이었다. 팀장님이 맛있다고 추천해 주신 곳이었고, 직접 웨이팅을 걸어주셔서 나는 도착 후 잠시만 기다리다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우리는 이곳의 베스트 메뉴인 히레카츠(안심카츠)를 주문했다. 선분홍빛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히레카츠는 내가 그동안 먹었던 카츠들 중 가장 맛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났다. 테이블에 있는 안내문에는 '처음에는 소금에만 찍어 먹기', '두 번째로는 와사비와 곁들여 먹기', '세 번째로는 트러플오일을 뿌려 소금에 찍어 먹기', '마지막으로는 카츠 소스를 찍어 먹기' 등의 식사 방법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시원한 병맥주 한 잔을 곁들였고 맛있는 식사로 인해 오랜만의 만남은 즐거웠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 년에 한 번 정도씩만 만나다 보니, 식사를 하면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주로 그동안 있었던 소식들을 전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잊고 있었던 나의 안부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 맞다, 제가 이거 말씀 안 드렸죠? 제가 ~~ 한 일이 있었는데..". 약 1년 여간의 나의 일상들을 회고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난번 만남에서는 어떤 소식을 공유했었는지 되짚어 보게 되고, 마치 일기장을 더듬어 보듯이 만남의 역사를 차곡차곡 되짚어보게 된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하며 남은 이야기들을 교류하다 보면 어느새 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다음 만남은 또 최소 1년 후가 될 것이다.


자주 만나며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도 의미가 있지만, 잊을만할 때쯤 만나 안부를 공유하는 관계도 있다. 지금은 직책이 팀장님이 아니시지만 나는 여전히 팀장님을 '팀장님'이라고 부르고, 팀장님은 여전히 나를 'OO 씨'라고 부른다. 가끔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보니 둘 사이의 관계가 많이 진척되지 않지만,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답보로 있는 이 관계는 나를 예전 대학생 시절로 돌려놓은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음번의 만남에서는 이 맛있었던 카츠 식사를 떠올리며 또다시 즐겁게 안부를 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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