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알 Mar 26. 2024

쫄보의 용기

주사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수술은 최후의 선택지로 생각하기로 했다.

약물이든 교정이든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시도하며 버텨보기로.

5,6번 경추 사이로 탈출한 추간판(디스크)을 다스릴 첫 치료법으로 의사 선생님은 신경차단술(nerve block)을 제안했다. 이름만 듣고 '신경에 직접 주사를 놔서 통증을 차단한다는 걸까?' 생각했다. 삐져나온 추간판으로 인해 눌려있는 신경 가까이에 바늘을 놓고 약물을 직접 주사하는 시술이었다. 쓰는 약물과 주사하는 위치에 따라 여러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처음이라 긴장한 듯 보였을까. 선생님은 최대한 천천히 쉽게 설명해 주시려는 듯했다.



'신경 주사치료 시에는 보통 국소마취제와 항염증제, 유착박리제를 혼합하여 사용하게 된다. (중략) 추간판탈출증이나 척추관협착증에 의해 척추신경이 압박을 받게 되면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부종이 생기며 신경으로 가는 혈액 순환이 저하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경 가까이에 바늘을 위치시킨 후 항염증제로 염증을 감소시키고 유착을 풀어주는 약물인 유착박리제를 주입해 신경에 생긴 염증과 부종을 가라앉히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킨다. 즉 통증의 원인을 그대로 놔두고 아프지만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유발되는 원인을 치료함으로써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통증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적인 치료로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며 통증으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질병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의학신문(http://www.bosa.co.kr)

▲ 신경차단술 [출처] 바른신경외과 홈페이지 https://barun-medi.com/?p=14768


"일단 오늘은 신경차단술을 해보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죠. 시술 후에 약도 처방해 드릴 테니, 약국에서 약 받아 가시구요. 복용 후에 나른해질 수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하실 수도 없을 것 같지만. 운전은 하지 마시구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어색한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와 복도 끝에 있는 비수술센터로 향했다. 많은 의사들의 이름이 적힌 방을 지났다. 방 앞에 차례대로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규모는 가늠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유행이던 몇 해 전과 달리 보호자 동행이 가능해지니 병원은 어딜 가나 인파로 북적인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등 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젊은 사람도 저렇게 몸을 못 써서 어쩐댜. (쯧쯧쯧)"

"아잇! 엄마! 쉿! 다 들려!"

딸인듯한 중년의 여성이 할머니를 말리는 듯했지만, 사실 난 아무렇지 않았다. 어떤 말도 지금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어서 '신경차단술'이라는 주사시술을 마무리하고 이 고통이 덜해지기만을 바랄 뿐.


비수술센터에 들어와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신경외과에서 적어준 종이를 들고 간호사에게 건넸다. 시술을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복용하고 있는 약이나 알레르기의 유무, 임신 가능성 등을 물어본 후 간호사는 등받이가 있는 동그란 의자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

"아흐흑. 아아...."

바로 앞 순서였던 여자가 갑자기 바르르 몸을 떨더니 이윽고 소리 내서 울었다. 엄마를 잃고 두려움에 가득 찬 아이처럼 큰 소리로 엉엉.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녀는 누가 봐도 잔뜩 긴장한 듯했다.

"○○○님, 괜찮아요. 괜찮으실 거예요. 잠시만 앉아서 더 쉬시겠어요?"

"아.. 아니요... 저... 저 정말 못할 것 같아요. 잘못해서 마비되면 어떡해요. 주삿바늘로 신경을 잘못 찌르기라고 하면요. 잘못되면요! 그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여기 서명하라는 거잖아요."


그녀가 말하는 서명은 나 역시 조금 전에 한 뒤였다. 신경차단술에 사용되는 약물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비급여성 약물이다 보니 관련 내용을 잘 읽고 서명해 달라는 간호사의 설명에 따라 서명했다. '근데 마비가 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던가?' 너무 아파 태블릿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를 자세히 읽어볼 여유가 없었기도 했고, 의료진을 믿고 싶었던 탓에 거기에 무슨 말이 적혀있는지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헌데 그녀는 나와 달랐다.

"아니에요 ○○○님. 다른 분들도 씩씩하게 잘하시잖아요.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원치 않으시면 시술은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원장님과도 말씀 나누셨겠지만, 지금 환자분의 허리 상태에서 수술 대신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에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간호사는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술까지 바르르 떨며 울먹이던 그녀가 양쪽 렌즈까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안경을 만지며 간호사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요? 괜찮은 거 맞아요?"

"그럼요. 지금 여기 계신 이 분도 오늘 처음으로 시술하시는 걸요.“

바로 곁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간호사의 눈빛은 간절히 나의 반응을 구하는 듯했다. 통증으로 목과 어깨는 물론 팔까지 자유롭지 못한 터라 목을 끄덕이는 대신 씩씩하게 답했다.

"저도 오늘 신경차단술 해요. 시간이 좀 필요하시면 제가 먼저 할까요?"


간호사는 안심한 듯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한 팀이라도 되는 듯. 조금 전까지 울먹이던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경을 벗으니 더욱 크고 동그란 눈이 꽤 예뻤다. 간호사는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냉큼 내 앞으로 왔다.

"어머나, 그러시겠어요? 그럼요. 되고 말고요. 일단 환자복으로 갈아입으시고요."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상태가 아닌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간호사는 웃으며 다가왔다. 8번 침대의 칸막이 커튼을 '드르륵' 치고는 검은색 고무줄을 건넸다.

"이걸로 머리는 묶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아... 아니요."

"네네. 괜찮으시면 제가 머리 묶는 거랑 환복 하시는 거 도와드려도 될까요?"

익숙한 듯 간호사는 자신보다 키가 큰 내 뒤에서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살짝 높게 묶었다.

"조금 있다 헤어캡을 쓰시긴 할 텐데, 이렇게 해야 머리카락이 몸에 닿지 않아서요."

이번에는 헐렁한 긴소매 셔츠를 능숙하게 벗기더니, XL사이즈의 커다란 환자복 상의를 내 머리 위로 쑥 집어넣었다. 단추가 뒤로 가는 빳빳하고 큰 파란색 옷에는 병원 이름이 새겨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머리카락부터 온몸을 맡기고 있는 기분이 묘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유아기의 내가 된 것 같았다.


'주삿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은 절대 눈을 뜨고 보지 못하는 내가 주사를 먼저 맞겠다고 자진하다니. 덜 아팠네. 덜 아팠어.'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환복을 마치니 간호사는 내 팔을 부축하며 주사실로 이끌었다. 가기 싫은 곳에 끌려가는 사람의 걸음이 가벼울 리 만무했다. 그렇지 않아도 큰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도착한 주사실은 무척 밝았다. 한 치의 오차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천장의 조명과 의료 도구와 장치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눈이 부셨다.

내가 올라야 할 침대는 꽤 높았다. 키 큰 성인이라도 걸터앉을 수 없는 높이인 터라, 침대 바로 밑에는 3층의 작은 이동식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 침대에 엎드려 누우니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님, 긴장 푸세요. 힘 빼시고 편안하게 호흡하세요."

내가 누운 침대를 둘러싸고 4명의 의료진의 기척이 느껴졌다. 영상장치를 만지는 사람, 주사와 약물을 트레이에 옮겨 온 사람, 머리에 일회용 캡을 씌운 후 시술을 집도할 의사를 부르는 사람, 그리고 내 몸에 바늘을 찌르기 위해 마침내 등장한 의사.

'삐~삐~' 영상장치의 기계음과 함께 의사는 바늘을 찌를 부위를 확인했고 시술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침대에 세로로 놓인 베개를 가슴 아래에 놓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왠지 처량했다. 시술을 마치고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8번 침대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눈물을 그치지 못한 채 훌쩍이고 있던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괜찮았어요."

약물로 어지럽고 몸에 힘이 없는데 무슨 의무감인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다행이다. 감사해요."

어느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안경 쓴 여자는 바로 주사실로 들어갔다.

시술 후 5분 이상을 누워있으라고 했지만, 일어나니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휘이잉'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다리가 풀려 침대 모서리를 꼭 잡았다. 놀란 간호사가 뛰어와 몸을 부축했다.

"급할 것 없어요. 더 누워계셔도 되니까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나오세요. 다른 환자분들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괜히 일찍 나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셨죠?"

아니, 이곳 간호사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다 친절한 건지. 사실 복도에 주욱 늘어서 있는 다른 환자들이 생각 나  5분이 지나면 옷을 갈아입고 어서 자리를 비워줘야겠다 생각했다. 다들 얼마나 아플까. 조금이라도 빨리,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진료를 받았으면 했다. 그런데, 누가 누구 걱정을...

결국 20분 가까이 침대에 누워있은 후에야 다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었다. 외투까지 야무지게 입혀준 후 간호사는 말했다.


"아주 자~~ 알 하셨어요."    




* 제목 배경 이미지 출처: http://www.ppuricj.co.kr/nonsurgery/new_nonsurgery01_09.html

매거진의 이전글 웃음을 빚진 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