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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Mar 03. 2022

거절할 줄 아는 용기

즐거움을 뺏기기 싫어요. 

처음으로 오래 달리기를 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했는데, 몇 바퀴를 뛰어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거친 숨을 내쉬는 친구들과 달리 나의 호흡은 퍽 편안했다. 학교와 집이 제법 떨어진 거리인 탓이었을까. 달리기는 초등학생 꼬맹이의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책가방 어깨끈을 양손으로 잡으면 준비 끝. 그다음엔 바람 소리, 참새 소리만 내 귀에 담을 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힘이 들면 걷는 건지, 달리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보폭으로 세상에는 없는 '자작 멜로디'에 맞춰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3년 동안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이 단련이 된 걸까. 

"으아악! 나 죽는다!" 

울상을 지으며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늘 앞서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달리기를 계속하던 어느 날, 선생님은 고학년 언니 오빠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오래 달리기를 하도록 했다. 아마도 운동회를 준비하던 봄날이었던 듯하다. 평소에도 오가며 인사를 하면 체육복 차림에 매서운 눈으로 대답도 없이 목례만 '까딱' 하던 체육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를 비롯해 여러 명의 아이들이 우리 반 대표로 달리기에 참여하게 됐다. 어른이 되어 찾아가 본 초등학교 운동장을 보고 그 작은 크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100명도 훨씬 넘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달리게 했던 건 위험하지 않았던가! 혹시나 모를 사고를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까치발을 들고 올려다보아야 할 고학년 언니 오빠들 사이로 섰다.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뛴 건지, '우두두두두' 경마장의 말발굽 소리에 일어난 진동에 놀라 뛴 건지 모르겠다.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몇 바퀴를 달리다 보니 무더기의 아이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이렇게 뒤처져 있었던 걸까? 아이들을 제치고 앞서 나갔다. 그런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우와아아아! 뛰어 나간다. 저것 좀 봐!"

"와아아아아!"

운동장 트랙 밖, 나무 그늘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벌떼처럼 몰려 달리는 아이들 사이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결승점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지만, 나는 언니 오빠들 전체 3등을 했다. 막판에 속력을 낸 고학년 오빠 두 명이 나란히 1,2등을 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놀라 소리를 친 건, 키도 작고 빼빼 마른 내가 언니 오빠들을 앞서 한 바퀴나 빨리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육상부 아이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경주에 참여하지 않았던 건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운동장 한쪽에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달릴 때보다 멈추고 나니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손으로 원을 그리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검은 그림자가 쑥 앞에 나타났다. 고개를 드니, 체육선생님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하얀 모자를 눌러쓴 선생님이 빤히 쳐다보더니 말을 걸었다.


“너 육상부 들어오지 않을래?”

"저... 저요?"

"그래, 달리기에 소질 있는 것 같으니까 육상부 한 번 해 보자!"


육상부라… 순간, 남녀 할 것 없이 짧은 커트 머리에 새까맣게 그을린 육상부원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늘 운동장에서 볼 수 있었다. 연습에는 열심인 듯했지만, 누구 하나 얼굴에는 웃음기 없이 지친 표정이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왠지 안쓰럽고 힘들어 보였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선생님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내일까지 부모님께 여쭤보고 와.”

선생님은 머뭇거리는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무거운 숙제를 내주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체육 선생님이 내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것 같대. 그래서 육상부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고 오래."

“근데 우리 꼬맹이 표정이 왜 그래? 하기 싫어?”

엄마는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말에 대답했다.

“그냥 달리는 건 좋은데, 경쟁하고 훈련하고 그러는 거 싫어서… 재미없어.”

“그래! 그럼 안 해도 돼.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 하기 싫은 걸 할 필요는 없어. 엄마가 선생님한테 얘기할게.”

휴…... 다행이다. 엄마의 깔끔한 정리에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학교에서 몇 번 마주친 적도 없는 선생님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적극적으로 권하는 탓에 부담감이 컸다. ‘하기 싫다’는 말을 선생님 앞에서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뒤, 왠지 용기가 생겼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엄마! 선생님께 전화 안 해도 괜찮아. 내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릴게. 육상부 안 한다고!”


다음 날, 교무실에 찾아가 체육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육상부는 하기 싫다고. 선생님의 반응은 의외로 쿨했다. 

"그래?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킬 순 없지. 알겠다."

왜 하기 싫냐고, 이유가 뭐냐고 꼬치꼬치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후련했다. 교무실 미닫이 문을 조심히 닫고 돌아 나오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났다. 마음 같아선 복도를 온 힘을 다해 내달리고 싶었지만, 당시에 복도에서 '쿵쿵' 울리며 걷는 건 선생님들께 혼이 나기 딱 좋은 행동 중 하나였던 터라 신나는 마음은 얼굴에만 담았다.




그렇게 육상부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달리기가 싫어진 건 아니었다.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일요 만화영화의 유혹을 뿌리치고 주일학교 시간에 맞춰 교회로 향할 때, 난 즐겁게 달렸다. 콧노래를 부르고 망아지처럼 촐랑대며. 


좋아하는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릴 때, 사람들은 흥미를 잃기 쉽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이렇게 까불대며 뛰어다닐 수 있는 건, 내가 달리고 싶을 때 언제든 달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나에게 주어진 삶,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길 바란다고 쉴 새 없이 말해 왔다. 하지만, 말과 달리 행동은 퍽 달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건 좋지만 더 이상 주체 없는 ‘Yes맨’, ‘네(yes)로봇’, ‘사과(apologize)맨’이 되지 않아야지.


그래서 오늘도 나의 의지에 따라, 속도에 따라,  걷고 달릴 거다.



▲ 마흔이 넘었지만 촐싹대며 달리는 건 언제나 신이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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