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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Nov 28. 2022

눈치 대신 밥을 먹자고요

점심시간 관찰기

등 뒤가 텅 빈 듯하다.

적막한 공기. 전화 통화 소리도,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도 멈췄다. 이렇게 싸한 기분이 든다면 틀림없는 그 시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점심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밑 작은 선반에 올려둔 가방을 주섬주섬 꺼낸다.

불과 몇 개월 사이, 나의 점심시간은 퍽 달라졌다. 학교에 있을 땐 딱히 정해진 시간 없이 강의 사이의 틈을 이용해 식사를 했다. 물론, 강의가 없는 날에는 집이나 카페에서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했다. 베이글을 굽고, 커피를 내려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ママ、早く早く!マスクも忘れないでね。엄마 빨리빨리! 마스크 잊지 마!”

옆집 꼬마 녀석들이 엄마를 재촉하며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전봇대 위에서 부산한 참새들의 지저귐은 매일 들어도 지겹지 않았다. 지난봄까지 누렸던  소박한 풍경은  이상 즐길  없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쌀국수는 집에서 먹는 단골 점심메뉴였다.
아침의 시작은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뜨거운 커피이다.
집에서 먹는 파스타의 장점은 좋아하는 야채를 몽땅 넣을 수 있다는 점

정오부터 오후 1시. 이 한 시간이 직장인으로 돌아온 나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이다. 더도 덜도 아닌 60분! 종일 일에 치여 사는 월급쟁이에게 이 얼마나 소중한 한 시간이란 말인가. 이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이름 그대로 식사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낮잠을 자거나 운동을 하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다. 나의 경우, 9할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보낸다.

돌아온 후 첫 달 동안은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웬만하면 점심 약속은 만들지 않았다. 사실 회사에 돌아가면 홀로 즐기는 점심시간은 포기해야겠지 싶었다. 다시 집단에 소속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런데 예상과 달리, 회사의 12시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오늘 약속 있는 분 있으세요?”

코로나 이전, 11시 즈음이 되면 슬슬 사무실의 막내 직원이 묻곤 했다. 미리 식당을 예약하기 위한 확인 절차였다. 약속이 없는 직원들은 부서장을 포함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 점심을 먹었다. 어느 부서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당연한 조직문화처럼 계속되던 일이 코로나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듣자 하니, 방역지침이 일부 직원들에겐 단체 식사를 피할 좋은 구실이 되었던 것 같다. 불편하고 달갑지 않은 식사자리에서 벗어나게 된 걸 반기는 직원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코로나라는 엄청난 존재의 등장은 회사의 문화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함께 하는 식사 대신 '홀로'하는 식사가 주류를 이뤘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직급이 높든 낮든, 누구나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리고 소위 ‘혼밥’이라 불리는 식사 유형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유형 하나, 구내식당에서 혼밥 하기


첫 번째는 구내식당에서 먹기이다. 12시가 되면 식당 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배식구부터 시작된 줄은 출입문을 거쳐 1층의 건물 로비까지 이어진다. 대충 보아도 칠팔십 명은 거뜬히 넘어 보인다. 먹기 위한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 줄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누구든 예외 없이 식비를 지불해야 한다. 식당 입구에 설치된 단말기에 미리 충전한 신분증을 가까이 댄다.

“정상 결제되었습니다!”

단말기의 기계음이 ‘꿀꺽’ 돈을 잘 삼켰다고 알린다. 동시에 식사비만큼의 돈이 재빠르게 차감되고 남은 금액이 화면에 표시된다. 단말기 옆에 서서 결제를 제대로 하는지 진지한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하얀 유니폼을 입은 직원. 영양사로 보이는 그녀는 배식대와 조리실도 틈틈이 번갈아보며,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결제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QR코드로 방문 기록까지 해야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밥 달라고 요동쳤을 수많은 뱃속 아우성을 상상한다. ‘꼬르륵꼬르륵’, ‘꾸륵꾸륵’. 가만 생각해보니 뱃속의 호소는 식당과 잘 어울리는 듯하다. 배식 철판과 숟가락 젓가락, 밥과 반찬을 담은 거대한 철판이 옮겨지고 부딪힌다. 마스크와 위생모를 쓴 조리사 분들의 말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둔탁한 장화의 발자국 소리, ‘쨍그랑’ 조리실 타일 바닥 위로 무언가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 빠르게 천천히, 크게 작게, 속도와 높이는 다르지만, 한 시간 동안 식당은 멈추지 않는 연주가 계속된다. 한 번도 같지 않은 연주 가운데 주린 자들의 뱃속 요동은 들릴 듯 말 듯, 베이스를 깔며 합주를 완성한다.

코로나 확산세가 한창이었을 때에는 외부 식당으로 가는 걸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구내식당으로 몰렸다. 외부 식당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접촉과 바이러스 노출에 대한 걱정과 염려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나는, 높은 줄 모르고 자꾸만 치솟는 물가였다. 국수 한 그릇도 1만 원이 되어버린 회사 주변의 밥값은 스스로 더욱 주머니를 단속하게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즐길 수 있는 여유였다.

“난 군대도 안 갔다 왔는데, 왜 군인들이 전투적으로 밥을 먹는 기분을 알 것 같지?”

라던 동료의 말처럼, 구내식당에서 짧게는 10분도 채 안되어 밥을 먹고 자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30분에서 40분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은 구내식당을 찾는 커다란 매력이다.

투명 칸막이가 설치된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혼자만의 식사를 즐긴다. 처음에는 너도 나도 어색해 멋쩍어했다 한다. 투명한 칸막이 사이로 낯 선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침묵의 오물거림.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내려다보거나, 아예 커다란 헤드폰을 귀에 대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이들이 많다. 어색함도 잠시, 거리두기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모르는 사람에 둘러싸여 아무 말 없이 밥을 먹는 구내식당에 익숙해졌다.

코로나 초창기 때부터 다니던 학교는 일본의 어떤 기관보다 엄격한 방역지침을 마련했다. 재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지침을 여러 방법으로 알리고 철저하게 지킬 것을 끊임없이 강요했다. 덕분에 알코올 티슈와 스프레이를 수시로 꺼내 책상과 의자를 닦는 건,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의 의식처럼 내 몸에 익숙해졌다. 학교 식당 구석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으며 휴대폰 기사를 보는 것이 편했던 터라, 회사에 돌아와 구내식당에서 이어지는 혼밥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유형 둘, 식당에서 씩씩하게 즐기는 혼밥


또 다른 유형은 매일 회사 근처의 적당한 식당을 찾아 홀로 밥을 먹는 부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금이야 동료들과 맛집을 탐방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우리 밥 먹을까?"라며 약속을 잡는 것을 다달 조심스러워했다. 자칫 개념 없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인식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모두가 심각한 코로나 확산세를 염려하며 방역지침을 따르고자 애썼다. 그중 하나가 다수가 한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지침을 지켰다. 당연히 식당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늘었고, 함께 식사를 하더라도 테이블에 놓인 가림막을 두고 앉아 밥을 먹었다.

구내식당만큼 철저하게 테이블 간 거리를 유지하고 가림막을 설치한 채 밥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식당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나름대로 최선의 방역지침을 마련해 손님을 맞고 있었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난 어려서부터 학생 시절에도 분식집에서 김밥을 즐겨 먹곤 했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회사를 다닌 지 얼마 안 되었던 즈음, 자연스럽게 혼자 식사를 하고 싶었다. 간단한 디저트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카페를 찾았고 밖이 내다보이는 구석진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맛있게 식사를 마쳤는데도 30분이 남아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책도 읽었다. 그리고 아주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돌아온 사무실. 좋은 에너지로 가득 충전된 것 같은 기분으로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그때 조용히 다가온 동료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왜 혼자 밥을 먹고 그래."
"네? 고민 없는데?"
"아니 옆에 과에 누가 그러더라. 자기 혼자 밥 먹더라고. 사무실에서 무슨 갈등 있는 거 아니냐고."  

그만큼 조직에 몸담고 있는 회사원이라면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던 터라,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별종(?)처럼 눈에 띄었고 이상하게 여겨지곤 했다. 혼자 밥 먹는 게 편하다고 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걸까, 성격에 문제가 있나, 저렇게 개별행동하려면 프리랜서 직업을 가졌어야지!' 등등 갖가지 추측과 야유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덕분이라 해야 할까.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한 중년의 선배 동료들도 이젠 혼자 식당에 앉아 주문을 하고 밥을 먹는데 적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설령 부하 직원을 같은 식당에서 만나게 되어도 합석을 하거나, 아는 체하며 말을 걸고 떠들어도 안되었다. 방역지침 따윈 유념하고 있지 않는 눈치 없고 개념 없는 꼰대 선배로 낙인찍히는 길을 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혼밥을 당당하게 즐길 수 있게 된 젊은 직장인들은 더 이상 먹기 싫은 메뉴를 억지로 고르지 않아도 된다. 김치가 싫고 곰탕이 싫고, 생선구이도 싫어하는 후배 여직원은 매일 회사 근처 맛집 투어를 하느라 신이 나있다. 웬만한 식당의 이름만 대면 메뉴를 꿰차고 있고, 골목 구석구석 식당의 위치며 혼잡한 시간대까지 알고 조언을 할 정도다.

특히 20대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샌드위치와 샐러드

그렇게 각자의 점심시간을 즐기는 기간이 쌓여 몇 달, 한 계절, 그리고 한 해, 두 해 지나자 이젠 당연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단순히 밥을 먹는 모습이 달라진 것에 그치지 않고 동료를 대하는 처세(?)에도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 50대의 상사가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 사실 점심시간에 약속이 많지 않아. 대부분은 혼자 먹어. 거리 두기고 해제되어서 이젠 다 같이 밥을 먹어도 되는데, 젊은 직원들은 나이 든 상사랑 같이 밥 먹는 게 싫은 것 같더라고. 점심시간이 되면 다들 말없이 각자 사무실을 나가버려서 혼자 사무실에 남을 때가 많아. 혹시라도 밥 같이 먹자고 하면, 그것도 갑질이라 할까 봐, 꼰대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쿨한 척 못 본 척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거지. 혹시라도 누가 밥 먹으러 안 가냐고 물으면, 약속이 있다고 하거나, 입맛이 없다고 하거나, 식당 붐비는 때 좀 피하려고 조한다고 하거나. 그렇게 거짓 대답을 하며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지. 내가 진짜 꼰댄가? 같이 밥 먹자고 하는 게 갑질인 거야?”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젊은 날, 직장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시절부터 20년이 넘게 줄곧 부서원들과 함께 먹는 점심에 익숙해져 버린 이들에게 갑자기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으라고 한다면 어색하고 불편함은 당연한 일이다. 스무 해 넘게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사방이 뚫린 벌판에서 용변을 봐야 하는 기분인 걸까? 비유가 너무 심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어색하고 긴장되는 식사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유형 셋, 나만을 위한 도시락


마지막은 구내식당도 바깥 식당도 아닌, 집밥을 그대로 먹는 이들이다. 바로 도시락! 몇 달 전까지 구내식당에 출몰하던 내가 최근 점심을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지 두 달째 접어들 무렵이다.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음식 냄새가 강해지고 슬슬 출출함이 느껴졌다. 커피 외에 아직 탄수화물 한 입 넣지 않은 터라, 시장기가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식판에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젓가락질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식판 위의 반찬과 밥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따뜻한 밥과 국, 거기에 좋아하는 해파리 무침도 있었다. 한 번도 빠짐없는 깍두기와 김치, 비싼 물가 때문인지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고춧가루에 버무린 노란 단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양파와 양배추가 들어간 빨간 국물까지. 성인 여성의 점심으로 전혀 부족하지 않은 한 끼였다. 헌데, 왜……. 열심히 일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 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커다란 솥에 털털 털어 넣는 양념들과 삽처럼 거대한 도구들로 휙휙 저으며 만들어내는 요리들이 슬퍼졌다. 마치 농장에 갇혀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는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치에 밥 한 공기를 먹더라도 마음이 담긴 식사가 그리워졌다.

도시락을 싸야겠다.

부엌 찬장 안쪽 깊숙이 넣어 둔 도시락을 꺼냈다. 일본에서 쓴 이후로는 사용해 본 적이 없는 터라, 엄마의 옷장 안에 한동안 보관했던 교복을 꺼내는 기분이었다.

사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덕분에 학생용 가방뿐 아니라, 여성들의 백에도 쏙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의 도시락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크기의 다양함은 물론이고 디자인과 컬러도 가지각색인데, 패션에 민감한 젊은 층을 겨냥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도시락도 많다. 도시락을 넣은 가방도 아무 데나 들고 다녀도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세련된 디자인이다. 예쁜 도시락을 몇 개 돌려가며 지루함을 더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도시락은 자꾸 예쁜 걸 찾게 된다.
나물, 주먹밥, 과일, 볶음, 현미밥.


물론 나처럼 이른 아침 집에 있는 재료로 도시락을 싸오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다른 도시락을 먹는 이들도 있다. 사무실이 밀집한 회사 주변 건물의 지하상가에는 유난히 카페가 많은데, 대부분의 카페는 아침 일찍 만든 싱싱한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팔고 있다. 출근하는 길에 포장된 샐러드 등을 사서 점심으로 먹는 이들이 또 다른 도시락 유형이다.


미소시루(장국)와 낫또, 카레까지 도시락 메뉴에 제한은 없다.


도시락을 싸고 보니, 이전에는 관심 갖지 않던 몇몇 직원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그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그들은 작은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 말 없이 한 손에는 텀블러나 컵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어디론가 향한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휴게실과 소회의실, 다음으로는 각자의 사무실, 대부분 창가에 놓인 회의 테이블이다. 사무실에 풍길 음식 냄새를 염려해 창문을 활짝 열고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 홀로 식사를 시작한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사무실 옆의 작은 회의실이다. 크게 난 창이 있어 통풍도 잘되고, 회사 건너 거리는 물론 매일 달라지는 인왕산의 빛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노란 은행잎은 물들기가 무섭게 떨어진다. 곱고 짧은 가을날의 점심시간.

조용히 입 안에 넣은 현미밥을 씹고 있으면 창밖의 소리들이 들린다. 직원들이 나가고 없는 텅 빈 사무실과 복도에는 컴퓨터도 복사기도 모든 기계들도 고요하다. 그래서 집중할 수 있는 바깥세상. 빵빵거리는 자동차의 경적, 1층 어린이집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뭐가 그리 바쁜지 오늘도 정신없는 참새들, 그리고 끊임없이 부서지고 짓눌리는 입속의 음식이 씹히는 소리. 그렇게 사람의 말이 아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30여분의 혼밥을 즐긴다.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면 따뜻한 카페인이 없는 차를 마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양치질. 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화장실은 아직 여유롭다. 아직 이른 시각인 탓인지 한 두 명이 있거나, 아무도 없을 때가 많다. 도시락을 싼 이후로 화장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와 마찬가지로 도시락을 싸오는 이들인데, 이를 닦는 시간이 비슷해서인지 세면대 앞에서 종종 마주친다. 거품을 가득 문 얼굴로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양치질을 한다.

이 닦기까지 마치면 남은 시간 동안 낮잠을 자거나, 회산 근처를 산책한다. 혹은 나처럼 책을 읽거나 가까운 대형 서점에 가서 신간 도서 탐방을 한다.

무슨 반찬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매일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 때마다 소풍 나온 아이처럼 신이 난다. 나를 위한 한 끼. 맛있고 비싼 요리도 아닌 평범한 집밥이 옮겨진 도시락이지만, 오로지 나를 위한 밥과 반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점심시간까지 상사와 동료들에 둘러싸여 업무 이야기를 하거나, 회사에 떠도는 온갖 가십거리를 듣거나, 재미없는 농담, 습관처럼 내뱉는 넋두리,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귀와 마음을 내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도시락을 먹고 내 머릿속과 마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들이 모두 나와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도시락을 싸는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바라는 어떤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아니, 도시락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는 유난히 점심 약속이 많이 생겼다. 때문에 도시락을 싸는 날은 겨우 이틀이다. 11월의 마지막 주, 그리고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도시락을 쌀 날이 많아야 보름 남짓이나 되겠지.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도시락을 바꾼다. 완벽하진 않지만 찬 기운은 없을 정도의 보온 기능이 있는 도시락을 꺼낸다. 도시락을 씻어 부엌 창가에 잘 말리고 냉장고 문을 연다. 청경채를 볶을까? 아니면 버섯? 오랜만에 유부초밥을 할까? 그러고 보니 햇김에 싸서 멸치볶음과 무짠지와 먹은 꼬마김밥도 괜찮았었지? 즐거운 고민을 하며, 새로 시작하는 한 주의 첫 번째 도시락을 상상한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 온다 해도, 달라진 점심시간의 풍경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듯하다. “나 때는 말이야. 과장님과 직원들이 특별한 일 없으면 다 같이 나가서 밥을 먹고 그랬는데 말이야.” 새내기 직원들은 믿기 힘들다는 동그란 눈을 하며 들을 옛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

달라진 점심시간의 풍경이 어색하고 불편해도 부하직원 앞에서 "예전이 그립다"라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시대, 코로나를 정복한다 해도 우리는 이 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스스로 궁리하며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갈테지.

곧 12월, 앞으로 몇 번이나 도시락을 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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