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알 Dec 01. 2022

코로나와 몸살의 언저리

코는 (면봉으로) 쑤시고, 몸은 (근육통에) 쑤시고

벌써 세 번째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나더니, 마라톤을 한 다음날처럼 팔다리가 무겁고 아픈 것이.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된 적 없어서인지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자연스레 코로나 바이러스를 의심하게 된다. 찝찝함을 잠재우는 건, 자가진단 키트. 미리 준비해 둔 키트를  챙겨 화장실로 향한다.


처음 키트를 사용했을  사용법을 몰라 한참을 헤맸다. 아픈 와중에도 진지하게 설명서를 정독했다. 이것도 반복학습이라고, 여전히 긴장은 되지만, 신중함은 사라졌다. 샤워  귀에  넣는 면봉처럼 테스터기(면봉) 손에 익었다. 키트 안에 밀봉된 비닐을 뜯고 면봉을 꺼낸다. 하얀 솜뭉치로 감싸진 면봉의 머리를 콧속에 넣는다. 살살, 조금씩 조금씩, 안으로 안으로 돌린다. 그렇게 10 . 면봉에 불쾌한 체액을 묻으면 시액이 들어있는 튜브에 넣고 휘휘 젖는다. 면봉을   손으로 튜브를   눌러 시약이  섞이도록 한다.

▲자주 애용하고 있는 자가진단 키트

목은 아프지 않다. 주위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 대부분은 '인후통' 심했다고 했다. 침을 삼키는 것도,  쉬는 것도 불편하지 않은  보면 '코로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모르지. 무증상 환자도 있다 하니 눈을 질끔 감고 결과를 기다린다. 선명한 빨간 줄이  , 그리고 멈췄다. 다행히  번째 줄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무실에 돌아와 진통제 하나를 입에 넣는다.  시간, 약기운이  법도 한데 좀처럼 열이 내려가지 않는다. 숨도 가쁘고 머리도 묵직하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풀린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메신저 창이 깜박인다.

"자기 코는 무서워서 제대로  찌르게 되더라고. 병원 가서 제대로 검사받아봐."

동료가 말을 건다. 혹시 코로나 일지 모르니 가까이 오진 않겠단다. (후훗) 그래, 조심해서 나쁠  없지. 무거운 몸으로 회사 근처 병원에 간다.


 ‘콜록콜록여기저기서 기침하는 사람들이 병원 로비의 의자에  줄로 앉아있다.

“어떻게 아파요?”
“아, 저… 어젯밤부터 몸이 무겁고 오한이 나기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부터는 두통에 열이 많이 났어요. 그리고 근육통이 너무 심해요. 독감처럼."
“혹시 코로나 걸린 적 있어요?”
“아니요.”
“그럼 검사부터 해봐야겠네. 자 일단 거기서 기다려요.”

반말과 존칭어 어디쯤에서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태도가 언짢지만, 대꾸할 힘도 없다. 나를 포함해 신속항원검사를 받는 사람은 .  칸씩 빈자리를 두고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차례대로 이름을 부르면 검사실에 다시 들어가 의사로부터 결과를 듣는다. 앞서 검사를 마친  사람이 연달아 확진 판정을 받는다.


두 사람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것이 왔네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반색한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탓인지, 남자의 목소리가 큰 건지 검사실 안의 대화가 그대로 전달된다. 남자는 바로 회사에 전화를 건다.

“과장님! 저 양성이랍니다. 드디어!”

남자는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확진을 통보한다. 기다렸던 아내의 임신 소식이라도 전하는 듯 남자는 들뜬 눈치다.

다음은 20대로 보이는 여자.

"000님도 양성이네요."

양성이요? 정말 확실한 거죠?”

놀란 동그래진 눈을 깜박이지 않고 여자는 쉴 새 없이 질문을 한다.

“근데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제가 부모님이랑 사는데 두 분 다 연세가 많으세요. 아빠는 폐도 안 좋은데… 저 격리해야 할까요? 어떡하지? 저 오늘 집에 안 가는 게 낫겠죠? 약은 효과가 있어요? 괜찮아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물음표를 쏟아내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다음 23번 000님, 여기로 오세요.”

내가 스물세 번째구나. 앞서 두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라 괜히 긴장이 된다.

음성이에요! 요즘 너무 무리했나 봐요? 몸에 발진도 올라오고 열도 많이 나고, 오한도 있었다고 했죠? 몸살인  같으니 일단 주사 맞고 약을 먹어봐야   같아요. 열이 많이 높으니 열부터 떨어뜨려야   같은데, 지금 시간 괜찮아요?”

다행히 음성이다. 그동안 몸을 혹사시킨 걸까. 몸살이 제대로 왔다. 게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알레르기까지…….

검사실에서 나오니 수납창구에서 이리오라는 듯 간호사가 손짓한다.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코 끝까지 내려온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건다.

“000님! 근데 정기적으로 우리 병원 오시네? 가을마다 병원 기록이 있어요. 신기하게 가을마다 아파.”

간호사는 묻지도 않은 주기(?)까지 알리며, 해열 효과가 있는 주사와 수액을 맞을 것을 권한다.

‘그래, 주사 핑계로라도 잠깐 쉬었다 가야겠다.’

팔에 링거 주삿바늘을 꽂고 커튼도 없는 창가 침대에 누운다. 열이 높아서일까!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몸에 힘이 빠진다. 쭈우욱! 똑, 똑, 혈관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액체를 바라본다. 간호사가 덮어준 이불속에서 다른  손은  위에 올린다. 햇살이 얼굴로 쏟아진다. 자외선에 약한 피부 인터라 평소 같으면 커튼을 치고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기운이 없다.

', 따뜻해.'

하얗다 못해 창백한 형광등 불빛을 빤히 바라본다. 반듯하게 이어진 정사각형의 타일 사이로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등은 부담스러울 만큼 눈이 부시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지이잉’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카톡 알림 진동에 놀라 눈을 뜬다. 얼마나 잤을까. 휴대폰을 보니 4시 20분. 40분이나 지났다. 예정보다 10분이나 지났다. 급해진 마음에 간호사를 부른다.

일어나셨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아… 더 나은 것 같아요. 근데... 저 이 바늘 좀…….”

바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호사는 슬리퍼를 끌며 천천히 걸어온다. 다그치진 못하고 링거병으로 이어진 바늘과 벽시계만 번갈아본다.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걸까? 빨간 뿔테 안경을 낀 간호사는 눈웃음만 지을 뿐 속도를 올리지 않는다. 자신의 리듬을 따르겠다는 듯이. 늘 해왔던 방식대로 익숙하게, 천천히 바늘을 빼고 소독약이 묻은 솜으로 팔을 쓱쓱 문지른다.

“귀엽죠?”

주사가 무서운 아이를 달래기라도 하는 듯 눈앞에서 동그란 밴드를 흔든다. ‘노는 게 제일 좋다’라고 노래 부르는 뽀로로가 그려진 밴드다.

“아… 네….”

주삿바늘 자국이 남은 팔에 뽀통령을 ‘툭’ 붙이고는 씩 웃는다.

천천히 일어나돼요. 서두르지 말고, 쉬었다가 나오세요. 어차피 지금 병원도 한가하니.”

그러고 보니 아까 병실에 들어왔을 때 먼저 누워있던 이들은 벌써 갔나 보다. 병실이 텅 비었다. 무거운 몸을 세우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만져보지 않아도 잔뜩 구겨진 셔츠의 촉감이 느껴진다. 납작하게 눌린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대충 빗고 신발을 신었다.

“아…!”

너무 급하게 일어난 걸까! 사방이 빙글빙글 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내쉰다. ‘후 우우…….’

병실을 나와 수납창구가 있는 로비로 나오니 여전히 환자들이 보인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사람, 배를 쓸며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젓는 사람, 휴대폰만 내려다보며 미동도 없는 사람. 약 기운 덕분일까. 그제야 병원 한쪽에 놓여있는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데도 잎은 빛이 나고 싱싱하다. 비실비실한 인간들만 보다 쨍한 초록을 보니 기운이 난다.

진료비를 내고 처방전을 받는다.

"카드 아요. ! 그럼, 가세요~!"

초록색 크록스 슬리퍼를 신은 팔자걸음의 간호사가 탕비실에 들어가며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뽀로로 밴드를 붙여주던 간호사다. 가만 보니 슬리퍼 색깔이며 뽀글뽀글 컬을 넣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네, 수고하세요."

여전히 그녀의 화법이 당황스럽지만 짧은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선다. 해열제 덕분인지,   자고  덕분인지 열도 어지러움도  시간 전보다 진정된 듯하다. 사흘 치의 약이 담긴 봉투를 본다. '000님의 쾌유를 빕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수칙은  먹고 충분히 자고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당부도 적혀있다. 너무  알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나이. 아플 때마다 상기시켜주는 소위 병원 나이.  살이나 빠진 숫자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살만 해졌나 보다. 웃는  보니.


한 시간의 외출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고 앞에서 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횡단보도를 하나, 또 하나. 코로나 생존자는 일터로 돌아간다.


 이겨내고 있어!


작가의 이전글 눈치 대신 밥을 먹자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