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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Feb 07. 2023

칠천 원짜리 떡볶이와 육천 원짜리 커피

다시 점심시간이다. 어느새 다들 나간 건지, 사무실엔 그녀와 나 둘 뿐이다.


“도시락 싸 오셨어요?”

“아니요. 약속 없으시면 같이 밥 먹을까요?”

“좋아요. 모처럼 밖으로 나갈까요?”


입춘을 하루 앞두고 날씨가 조금 풀린 듯하다. 1층 로비 문을 열고 나오니 햇살이 제법 따뜻하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우린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


“이쪽? 아님 저기?”


잠시 좌우를 살피다 일단 길을 건넌다. 그리고는 평소에는 자주 가지 않는 건물의 지하로 내려간다. 추어탕, 쌈밥, 짬뽕, 샐러드, 김밥, 백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식당을 차례대로 훑고 지나간다.


그러다 어디선가 진한 깻잎 향이 난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ㅇㅇ이네 즉석떡볶이’. 간판에는 큼지막하게 가게 이름만 쓰여 있고, 주방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벽은 지문 하나 없이 깨끗하다.


“즉떡 먹을까요?”

“좋아요!”


홀린 듯 우리는 떡볶이집으로 들어간다. 텅 빈 홀에는 아직 손님이 많지 않다. 남자 셋이 주황색 앞치마를 입고 먼저 앉아 있다. 앞치마 밖으로 보이는 하얀 셔츠와 남은 의자 하나에 겹겹이 벗어놓은 코트. 한눈에 보아도 근처의 직장인들이다.


“아니 그래서 과장님이 화를 낸 거 아니야. 다 이유가 있다니까. “

“그렇다고 사람들 다 있는데서 몰아세우는 건 아니지.”

”저 같으면 들이받았을 거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 참아요. “

”참아야지. 별 수 있어? 우리가 뭔데! “

”우리요? 뷰우웅~신!“


박장대소하며 웃는 세 사람. 테이블 한가운데서 보글보글 떡볶이 냄비가 끓어오르고, 그들의 이야기도 닳아 오르는 중이다.


“여기 즉석 떡볶이 2인분이요.”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한창 요리 중이다. 주문, 요리, 계산까지 모두 홀로 대응하는 듯 분주함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주문한 지 5분이 지났을까. 떡볶이 냄비가 도착한다. 빨간 국물 속에 담긴 건 떡뿐만이 아니다. 쫄면과 라면 사리, 야끼만두로 불리는 바삭바삭한 구운 만두와 삶은 계란 두 개, 송송 썬 양파와 양배추, 그 위에 아주 곱게 채 썰어진 깻잎이 듬뿍 올려져 있다.


”익으면 쫄면부터 드세요. “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떡볶이가 들썩거리며 요란을 떠니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불을 약하게 줄인다.


“어? 기대 이상인데요? 맛있어요!”


한 접시, 두 접 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은 남은 떡볶이 국물에 볶아 먹는 밥. 밥까지 먹고 나니 배가 제법 부르다.


우리가 먹은 떡볶이 2인 세트는 14,000원. 볶음밥 1,000원까지 더하면 15,000원에 두 사람이 식사를 해결한 셈이다. 먹거리 물가가 몇 년 동안 무섭게 오르고 있는 요즘, 만오천 원은 실로 착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진짜 잘 먹은 것 같지 않아요? “

”그러게요. 게다가 맛있게! “


떡볶이로 배가 부른 두 여자는 신이 나서 짧은 산책을 시작한다. 배도 부르니 좀 걷기로 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추운 줄도 모르고 걷다 보니 어느새 블록을 반 바퀴 돌아있다.


”우리 여기서 커피 한 잔 사갈까요?”


얼마 전 둘이 간 적 있는 카페 앞에서 긍정의 고개를 끄덕이며, 우린 카페에 들어간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여유가 있다. 차를 마시고 들어가기로 하고, 통창 바로 옆 자리에 앉는다.


매콤한 떡볶이를 먹어서일까. 달달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 ‘솔트캐러멜크림라테’ 단짠의 조합이라는 걸까. 딱 보아도 칼로리 폭탄일 듯 하지만, 이미 두 눈은 다른 메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중이다.


“어머! 여기 가격 좀 보세요. 우리 7천 원짜리 떡볶이 먹었다고 얼마 전까지 좋아하던 사람들 맞아요? “

”꺄아아! 정말이네요? 커피 가격이! “


밥 값에 버금가는 음료를 한 잔씩 홀짝이며 우리의 이야기는 또다시 이어진다. 물가, 건강, 지인의 이야기, 회사 분위기. 서로 공감하는 직장인의 넋두리까지.


회사에서 책정한 특근매식비로는 다른 토핑 없이 기본 떡볶이만 간신히 먹을 수 있겠다며 웃는다.


”볶음밥은 욕심이에요. 안 돼 안 돼!”

“그건 자부담으로!”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니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예쁜 잔에 담긴 비싼 커피를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평일 한낮의 짧은 외출을 마무리한다.



사진 속 커피는 맛이 깊고 진하다. 너무 달지 않은 고소함에 입이 즐겁다. 살살 뿌려진 시나몬 파우더 향도 좋고. 무엇보다 잔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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