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라다크 앓이
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난 몇 년 동안 유독 생각나던 곳이 있다. 히말라야 라다크. 대체 그곳이 뭐라고 잊을만하면 주절주절 이야기를 꺼내느냐 하는 이도 있겠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라다크는 지구상에서 손에 꼽을 만큼 맑고 깨끗한 곳 중 하나이다.
그대로의 파랑, 그대로의 초록이 있는 곳.
여름이 되면 라다크는 달큼한 향을 뿜어낸다. 거침없이 내리쬐는 고산의 태양과 미지근함이라고는 없이 낮과 밤의 극단의 기온을 견디며 잘 여문 노란 살구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마을 어디를 가든 살구가 주렁주렁 열린 풍경이 펼쳐진다. 먼지가 날리는 비포장 도로 한켠, 작은 마을의 어귀, 상가와 호텔이 있는 시내 곳곳에서 살구를 파는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낡은 저울에 인심 좋게 올린 살구를 신문지로 만든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손가락으로 숫자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만족스러운 거래를 한다.
“줄레~”
그 자리에서 살구 하나를 입에 넣고 엄지를 번쩍 치켜세운다. 누가 보아도 맛있다는 신호. 수줍음 많은 여인은 살구처럼 웃는 웃는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 저 멀리 산 아래의 번잡한 도시와 떨어져 태곳적 모습 그대로 늘 건재할 것 같지만, 사실 라다크는 수십 년째 끊임없이 변화고 있다. 어느 사회보다 빠르게, 채찍질당하는 말처럼. 이 무자비한 속도의 물결을 타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소외되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는 라다크의 관광자원화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이전에는 아찔한 낭떠러지를 끼고 좁고 거친 비포장길을 며칠씩 달려야 라다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고불고불한 히말라야 산길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 길을 닦고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구간은 아스팔트가 덮였다. 덕분에 라다크에 가는 길이 덜 고생스럽게 되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아찔한 길을 그것도 며칠 동안 승차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차를 타고 가야 했던 곳. 하지만 그 수고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할 만큼 라다크는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거칠고 깊은 협곡, 끝을 모르고 내달리는 히말라야 산맥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 가슴이 뛰고 눈이 시리다.
봄이 오고 있다. 곧 눈이 녹고 육지길이 열리겠지. 콸콸 쏟아내리는 빙하의 물이 대지를 적시고 잠자던 동토를 깨우겠지. 기다렸다는 듯 초록 잎이 돋고 푸성귀도 쑥쑥 자라겠지.
눈을 감는다. 살구향이 날아온다.
“나마스떼~”
“줄레~”